- 이라크 파병은 부쉬의 재선을 돕고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이재봉 (pbpm@chol.com 원광대학교 정치학/평화학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우리 전투 병력을 이라크에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 사회가 시끄럽다. 미국의 추악한 침략 전쟁과 부당한 파병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며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이라크 파병을 찬성해야 할 명분은 단 한 가지도 찾기 어렵고 반대해야 할 당위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크게 열 가지만 든다.

한나라당과 이른바 `조중동`마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전쟁

첫째,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은 명분도 없고 정당성도 없어서 온 세계가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이라크가 9.11을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했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하고 있으며, 침략의 구실을 대기 위해 미국과 영국이 정보를 조작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지 않았는가. 만에 하나 이라크가 테러를 지원하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할지라도 미국의 침략 전쟁이 정당성을 지닐 수는 없다. 전쟁은 문제 해결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나 고려해볼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경과나 결과를 보더라도 미국의 침략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 수 있다.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것을 전쟁의 구실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후세인은 찾지도 못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최소한 5, 6천명이나 죽이고 말았다. 미국의 침략 전쟁이 얼마나 명분이 없고 파병 요청이나 압력이 얼마나 부당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미국을 추종해온 한나라당과 이른바 `조중동`마저 선뜻 앞에 나서지 못한 채 정부가 먼저 결정한 뒤 의견을 밝히겠다고 미적거리거나 뒤에서 음흉하게 여론 조작을 하겠는가.

둘째, 이라크 파병은 부쉬의 재선을 돕는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까지 미군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200-300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른바 승전 또는 종전 선언을 하고도 끊임없이 전비가 들어가고 전사자가 생기자 부쉬의 인기가 떨어지고 재선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만만한 나라들에게 돈 좀 대주고 목숨까지 바쳐달라고 뻔뻔스럽게 부탁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그의 재선을 막아야 한다. 그가 집권하면서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협력이 방해받고 북미 갈등이 심화했으며 한미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세계 정세가 더욱 불안해졌다. 이에 따라 머지 않아 미국 안팎에서 부쉬 낙선 운동이 거세게 일어날텐데, 우리가 막대한 돈과 목숨까지 바쳐가며 그의 재선을 돕는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이겠는가.

셋째,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북한 폭격 및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자살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세기 내내 미국처럼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는 없다.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지금까지 거의 70번이나 다른 나라들을 폭격하거나 침략하였다. 미군들을 세계 구석구석 100개 국가 이상에 배치시켜 놓고, 해마다 한두 차례 폭격이나 침략을 해댄 셈이다. 21세기를 맞아서도 부쉬 정권은 중국, 러시아, 이라크, 북한, 이란, 리비아, 시리아 7개국에 대해서는 핵전쟁까지 준비하겠노라고 밝혔고, 이 가운데 이라크, 북한, 이란은 `악의 축`으로 꼽았다. 나아가 이라크에는 이미 쳐들어갔고 북한과 이란에는 시비를 걸고 있는 중이다.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이 너무 싱겁게 끝나버리자 주저없이 이라크를 침략했는데, 이라크와의 전쟁도 너무 쉽게 끝나버리면 전쟁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갖고 기고만장하여 다음엔 북한이나 이란을 폭격할 준비를 하지 않겠는가. 북한에 대한 폭격은 한반도 전쟁으로 이어지기 쉽고,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 사람들이든 남한 사람들이든 군인들이든 민간인들이든 수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돕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골탕을 먹을수록 부쉬를 비롯한 전쟁광들의 침략 의지는 줄어들고, 행정부나 의회 온건파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며, 전쟁 반대 여론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명분 없는 전쟁을 통해 빚을 갚는 것은 의리가 아니다

넷째, 우리가 미국 대신 막대한 돈까지 들여가며 우리 젊은이들이 이라크에서 미군들의 총받이로 개죽음을 당하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는 분명히 지난날 미국에 빚을 졌으며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다. 그 빚은 이미 충분히 갚았지만, 설사 다 갚지 못했을지라도, 명분 없는 전쟁을 통해 빚을 갚는 것은 의리가 아니며 우방으로서의 도리도 아니다. 잘못된 길을 걸으면 비판과 충고를 해주는 게 진정한 우방의 할 일이다. 한편 만에 하나 미국이 이라크나 다른 나라들로부터 먼저 침공을 받아 진짜 어려움에 처한다면, 우리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처한 곤란은 온 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의 석유를 빼앗기 위해 침략한 잘못에서 빚어진 것이다. 어려움과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우방국들과 이라크 민중 그리고 유엔의 권유대로 이라크에 빨리 자치 정부를 세워 정권을 넘겨주고 물러나면 된다.

다섯째, 이라크에 군대를 보냄으로써 아랍인들이나 회교도들의 보복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겼고 전쟁은 끝났다고 주장했지만, 이라크를 포함한 아랍 및 회교권의 저항 세력은 항복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전쟁` 중에 죽은 미군들보다 `전쟁`이 끝난 뒤 게릴라 공격과 테러에 의해 죽은 미군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만약 한국군들이 미군들 대신 이라크의 한 지역을 점령한다면 아랍 및 회교권의 저항 세력은 한국의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에 대해서도 테러를 하는 등 보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략으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의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졌듯이, 한국 군대의 이라크 점령으로 대한항공의 비행기나 서울의 63 빌딩이 폭파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여섯째, 우리는 요즘 엄청난 재해를 겪었다. 태풍으로 수 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는 조사 결과와 이를 복구하려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3천명 정도든 1만명 안팎이든 이라크에 보낼 여유 병력과 자금이 있다면 그 군인들과 경비를 모두 태풍 피해 지역으로 보내, 수재민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건네고 피해 복구 기간을 몇 달이라도 줄이기 바란다.

일곱째, 이라크 파병을 통해 석유 자원을 확보하고 건설 특수를 기대한다는 것은 위험하고 천박한 자본주의 속성을 드러내는 짓이다. 우리 젊은이들의 아까운 목숨을 내걸고 이라크 사람들의 무고한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미국에 빌붙어 더러운 전쟁의 떡고물을 챙기겠다는 발상이 너무 끔찍하면서도 천박하다. 귀중한 목숨과 막대한 주둔 경비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경제적 실리를 거둘지도 불투명하지만, 개인이든 기업이든 나라든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떳떳하게 쓸 수 있다. 빵 한 조각 더 먹자고 불의와 전쟁에 빠져들기보다는 밥 한 숟갈 덜 먹더라도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바르고 건전한 가치관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이라크 파병과 북한 핵문제는 관계가 없다

여덟째, 이라크 파병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 북한 핵문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풀릴 일이지 남한의 정책이 큰 영향을 끼칠 일이 아니란 뜻이다. 북미 사이의 문제가 3자 회담 및 6자 회담으로 옮겨졌지만, 남한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든 말든,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배짱과 미국의 오기가 타협을 이룰 일이다.

아홉째, 이라크 파병이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이전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 국방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에 대한 구조 조정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른바 `럼스펠드 구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다면 미국은 그 기간 동안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이전을 `일시적으로` 보류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계획을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게다가 북한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북미 불가침 조약이나 한반도 평화 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은 성격을 바꾸거나 물러가게 되어 있다.

열째, 이라크 파병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자주 국가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미국은 당장 주한미군과 한국에 대한 투자를 철수하거나 국가 신용 등급을 낮추겠다고 위협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앞으로 짧아도 20-30년 길면 40-50년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된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더 미국의 속국처럼 비굴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왔는데.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력을 자랑한다면서도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 말이다. 지구촌 200여 나라 가운데 세계 최강에만 빌붙어 아시아와 유럽 등으로부터 왕따 당하기보다는, 미국으로부터 다소 미움을 받더라도 수많은 다른 나라들과 떳떳하게 더불어 사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위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에 대한 찬성과 반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면, 이번에는 전투 부대를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함으로써 지난번 공병 부대와 의료 부대 파견 결정의 잘못을 만회하기 바란다. 물론 노 대통령이 재야나 국회에서 보여주었던 소신을 청와대에서는 펴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한다.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반대했던 사람들도, 진보층뿐만 아니라 보수층도, 배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번엔 파병 찬성파를 배려했으니 이번에는 파병 반대파를 배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노 대통령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의 정책 결정에 관계없이 줄기차게 싫어하지만,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의 소신 변경 때문에 끝까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파병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흔히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국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단기적인 국익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국익도 있으며 유형의 국익도 있고 무형의 국익도 있다. 노 대통령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되, 부쉬가 우리 외교부장관을 백악관으로 불러 환대를 하며 노 대통령에 대해 "내 친구 어떻게 지내느냐?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애교를 부린 속보이는 짓에 대해서는 조금도 부담갖지 말아야 한다.

꼭 파병해야 한다면 광복절에 서울시청 앞에서 미국 국기를 흔든 파병찬성론자들을 자원 봉사대로 보내라

둘째, 만약 우리 정부가 무슨 이유로든 미국의 파병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면, 파병의 효과를 거두면서도 반대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해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파병에 찬성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원 봉사대를 만들어 자비 부담으로 보내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1절과 광복절에 서울시청 앞에서 미국 국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거나 그들을 후원했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경제력 있는 사람들은 성금을 내고 건장한 사람들은 미제 전투 장비를 마련하여 미군복을 입고 성조기를 앞세워 이라크로 달려간다면 한국에 부담을 주지 않은 채 맘껏 친미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며 불의와 전쟁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그릇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미리 힘을 모아주기 바란다. 정부가 일단 결정을 하면 그게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뒤집기 어려운 법이다. 정부가 결정을 한 뒤에 우리가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는 것보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서명 운동이라도 펴는 것이 쉽고 효과적이란 뜻이다. 따라서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들에 호소한다. 지금부터 자신의 직장과 지역에서부터 이라크 파병 반대 서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자. 우리 정부에게는 고민을 덜어주고 미국에게는 부당한 압력을 포기하도록 이끄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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