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전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6.15 남북합의 이후 민간통일운동 진영에서는 몇 차례 중요한 내부 논의가 있었다. 이 논쟁의 초점은 민간통일운동의 자주성이었다. 민간통일운동이 정부당국자의 통일사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민간통일운동이 정부 당국자간의 통일운동과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지점이었다. 이 논의는 6.15 납북합의에 대한 의미 부여, 남북합의 이행을 위한 민간통일운동의 역할 등에 집중되었다.

6.15 합의로 기존 동북아질서 재편이 불가피해 져

6.15 합의로 표현되는 남북관계의 변화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를 지배하여왔던 기존의 질서에 대한 재편이 불가피함을 의미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동북아질서는 동서냉전 구도가 지배하였으며 남한은 미국, 북은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 대립하는 구도였다. 더욱이 동서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한반도의 긴장과 대립은 계속되어왔으나 최근의 변화는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었던 냉전구도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있다. 한반도를 억눌러 왔던 냉전 질서의 해체는 바람직하며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애타게 기다리던 일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질서재편은 왜곡된 한반도의 질서를 바로잡는 참으로 중요한 기회를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이 기회는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줄 것이고 반세기 동안 우리를 억압하여왔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를 찾아온 기회는 우리에게 엄청난 시험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기가 향후 상당 기간 동안의 한반도 질서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전쟁이 있었던 구한말에 정립된 질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재편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를 지배하던 질서는 21세기를 맞아 큰 균열이 발생하며 도전 받고 있다.

2001년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정세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결정하려는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시련을 던져주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부시는 당선되자마자 대북 강경노선을 구사하고 있다. 봉쇄와 유화라는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봉쇄정책에 무게를 싣고있는 분위기다.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자신의 동북아에서의 지위와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중국도 남북한과 동시에 깊숙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위치를 적극 활용하여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미국에 대한 견제에 적절히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7월 러시아의 최고 실력자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푸틴은 그간 소홀히 하였던 동북아에서의 러시아의 전통적인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으며 일본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행사에 뒤지지 않으려고 북일수교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의 정세가 북한의 핵문제를 앞세운 미국의 공세에 좌우되던 상황에 비해서는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의 대응에 따라서는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 보인다. 부시의 대북 강경정책도 동북아를 둘러싼 상황과 우리의 대응에 따라서는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문제를 둘러싼 국내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국내정치의 혼란으로 전통적인 반통일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은 이들 반통일세력을 크게 고무시킬 가능성이 있어 정부가 통일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적지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들은 통일사업 집행과정에서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반통일세력에 대항하여 하나로 묶어 세우는데 별로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국내정치의 혼란으로 현정부는 통일정책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하이를 방문하여 북의 개방정책을 강력히 표방하였으며 곧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책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있는 데 비해, 남한 정부는 미국의 정책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으며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조직하는 데에도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민간통일운동 세력이 조국통일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자주성을 가져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동북아의 세력관계 변화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큰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또 다시 동북아에서의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거나 확대시키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국내의 정치권은 한반도의 장래와 국민의 이익보다는 정파적 이해를 우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국내의 반통일세력은 이러한 틈바구니를 백분 활용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통일운동세력은 변화하는 정세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도 외세와 국내 정치역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어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은 적지 않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는 북한당국자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염원하는 방식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간통일운동이 명실상부한 통일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민중의 제대로 된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실질적인 세력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책무를 민간통일운동이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민간통일운동이 통일세력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주체성을 분명히 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외세는 한반도의 통일보다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일 수밖에 없고, 남이던 북이던 정부 당국자들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통일운동은 매우 중요하며 남북한 민중과 함께 하는 통일운동을 분명히 정립하여야 한다. 남한의 민간통일운동의 지속적인 투쟁은 조국통일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지금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통일운동은 지금까지의 투쟁의 성과를 더욱 발전시켜 조국통일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투쟁과 함께 대안을 가지고 남북전체의 통일운동을 이끌어가야 하는 조국통일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주성을 가져야 하며 미묘한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대한 섬세한 통찰과 이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이 요구되어지고 있기도 하다. 남북한 민중이 자기 중심을 분명히 하고 남북한 민중이 하나의 통일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경험한 뼈저린 아픔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통일운동에서 논의되고 있는 민간통일운동의 자주성 문제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남북한 민중이 중심에 우뚝 선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적인 통일운동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