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55년 전 8월 15일에 일제의 패망을 기쁘게 생각하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번에 살펴 보았습니다. 일제의 패망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곧 일제의 식민 통치 자체에 대한 생각의 차이입니다. 일제가 지배하는 35년 동안 그 시대를 `태평천하`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공동 묘지 같다고 생각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럼 우리 한 번 당시에 씌어진 소설의 주인공들의 발언을 통해서 살펴 볼까요?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오,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가고오 ......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 으응? ......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하게 살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하는 것이여, 태평천하! ......"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 버려라! ...... 공동 묘지다! 공동 묘지 속에서 살면서 죽어서 공동 묘지에 갈까봐 애가 말라 하는 갸륵한 백성들이다! ...... 공동 묘지에 사니까 죽어서나 시원스레 파묻히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하여간에 구더기 득시글득시글하는 무덤 속이다. 모두가 구더기다. 너도 구더기, 나도 구더기다. ...... 에잇! 뒈져라! 움도 싹도 없이 스러져 버려라! 망할 대로 망해 버려라! ......"

앞의 것은 채만식이 쓴 `태평천하`의 한 부분이고, 뒤의 것은 염상섭이 쓴 `만세전`의 한 부분입니다.
`태평천하`의 주인공 윤직원 영감은 일제 시대를 화적패도 없고 부랑당 같은 수령도 없는 태평천하라고 봅니다. 한 술 더 떠서 거리마다 순사가 있고, 일본 군대가 동원된 것을 우리 민족을 보호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말은 그가 일제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는 일본 유학생입니다. 그는 지금 고국에 돌아와서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부분은 대전에서 열차가 잠시 머무는 동안 그가 이것 저것을 보고는 혼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는 당시 조선의 상황은 공동 묘지와 같은 것입니다.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그런 무덤과 같은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죽은 송장이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봅니다.
이렇듯 현실을 바라보는 것도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굉장히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역사를 보는 시각도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일제 시대를 바라볼 때 윤직원 영감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습니다. 민족 정서 때문에, 그리고 남의 이목 때문에 일제를 비난하지만, 그러면서도 말하는 내용 속에서는 일본 사람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많다든지, 우리가 배울 것이 많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우리는 의외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 왜 그릇된 것인지를 살펴볼 여유는 없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지난 과거를 보는 것도 생각에 차이가 있다는 점만 확인을 합시다.
과거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다면 결국 역사에 대한 서술은 같을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고려 공민왕 때 공민왕에게 뽑혀서 개혁 정책을 총괄했던 신돈은 오랫동안 간신 또는 요승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이존오가 쓴 다음 시조를 보면 신돈에 대한 평가를 좀더 실감할 수 있습니다.
구름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 있어 임의로 다니면서/ 구태여 광명한 날빛을 따라가며 덮나니
여기서 `구름`은 간신을 말하는데 신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광명한 날빛`은 임금의 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존오는 신돈이 공민왕의 총명을 가리는 인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국사 교과서에서는 신돈을 간신으로 서술하지 않습니다. 공민왕이 `권문 세족과 인연이 먼 신돈을 기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의 판사로 삼아 권문 세족들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의 소유주에게 넘겨 주거나 양민으로 해방시켰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신돈을 개혁을 추진한 인물로 서술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그 동안 국사 교과서에서는 신돈을 직접 다루지 않았고, 기타 야담 등을 통해 신돈이 요승이라거나 간신이라는 서술만이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 서술에 차이가 있는 것은, 또 역사 서술이 바뀌는 것은, 역사가 단지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만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 서술을 우리는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럴 수 없겠지요. 일본 역사가들 중에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킨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의 역사 서술을 다양한 생각 중의 하나라고 인정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것이 진실된 역사 서술이고, 그것을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되겠지요.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올바른 역사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올바른 역사관이란 무엇일지 다음 번에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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