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정부는 정체성을 잃기보다는 미국과의 긴장감 유지를 택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군 전투병의 이라크 추가파병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요구내용이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성격은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PKF, peace-keeping forces)이 아닌 미국 주도의 `연합군`(united command) 형식이 유력하고, 규모는 여단 규모(3,000명 안팎)에 가까운 2천명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고, 또한 파병 시점은 `부시 미대통령의 오는 23일 유엔 총회에서 결의안 필요성 설명-유엔 결의안 채택-10월경 국회에 파병동의안 제출`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가 참으로 어려운 선택과 기로 앞에 섰다. 한마디로 한국군 전투병의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는 참여정부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왜 탄생했고 참여정부가 어떻게 출범했는가의 문제다. 상대가 아무리 `미국`이고 아무리 `동맹관계`라 할지라도 현 정부가 자신의 정체성마저 훼손하면서까지 미국의 요구에 따른다면 이는 반국민적일 뿐 아니라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행위로 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참여정부는 미국의 추가파병 요구에 결연히 반대해야 한다. 지난 4월 이라크에 파병한 공병부대(서희부대)와 의료부대(제마부대) 병력마저 철수해야 할 판에 추가로, 그것도 전투병 파병은 `절대 불가`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대(對) 이라크전은 유엔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전쟁`이자 대량살상무기나 테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명분없는 전쟁`이었다. 미국만이 춤추고 장구 친 `그들만의 전쟁`이었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지난 5월 종전(終戰)과 함께 승리를 선언했지만 이라크에는 아직 전황(戰況)이 진행되고 있다. 후세인 추종세력들과 바트당원들의 게릴라식 반격이 시작되면서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자 `베트남전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전전(戰前)부터 우려했던 사안이 현실로 나타난 것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라크에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국군을 파병한다면 이는 기꺼이 미국의 용병(傭兵)임을 인정하는 행위에 다름없지 않은가?

셋째, 우리 근.현대사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대국의 간섭에 의해 굴절되고 왜곡되어 왔다. 이제 그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이라크전이 잘못된 전쟁이고 미국의 파병 요구가 부당함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어느 시대에선가, 어느 정권이든 한번쯤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금 참여정부가 그 기회를 맞고 있고 또 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는 미국과 수평적 관계를 지향해 왔고 또 부당한 간섭에 반대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일부에서 한미가 동맹관계인 만큼 미국의 파견 요청을 거절해서는 안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견해를 펴고 있다. 하나는 추가파병의 성격을 평화유지군으로 분명히 하는 유엔합의가 있으면 파병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추가파병 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및 북핵문제를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 입장은 추가파병을 전제로 한 명분쌓기용 꼼수나 다름없다. 전자의 경우 파병의 성격을 평화유지군으로 규정하든 연합군으로 하든 관계없이 파병의 본질은 미국의 용병 행위라는 점이고, 후자의 경우 북핵문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이나 북미간에 해결해야 할 일이지 이라크 파병과 연관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만일 참여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라크 추가파병을 받아들여 국회에 파병동의안을 제출한다면, 이는 어떠한 변명이나 핑계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것으로서 한국군이 미국의 용병임을 자처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한미간의 관계가 동맹관계라면, 동맹관계란 서로가 정당한 요구에 정당하게 대하는 것이지 부당한 요구마저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요구를 따른다면 이는 대미 굴종과 예속을 자초하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체성을 잃는 정부보다는 다소 어렵더라도 미국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또 그를 감내할 수 있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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