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9절 행사에서 `신형 미사일`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


북한 정권창건 55주년 기념행사(9.9절)가 9일 오전 10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됐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은 9.9절 행사에서 파괴력 있는 `중대발표`나 가시적인 `무력시위`를 벌이지 않았다. 대신 `열병식과 군중시위` 등 평화시위가 있었다. 이는 일반의 예상을 훨씬 밑도는 것이다. 9.9절에 즈음해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른바 `북핵문제` 및 6자회담과 관련해 대미 압박용으로 `핵보유 선언과 핵실험 용의` 발언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 또는 신형 미사일 등장` 등을 점쳤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9.9절 기념행사에서는 개인화기로 무장한 2만여 명의 육.해.공군 및 여군 `열병식`에 이어 `군중시위`(시가행진)에 나선 이들 `조선인민군`은 100만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당초 예상됐던 신형 미사일은커녕 전차, 로켓 등 군사장비를 동원한 무력시위는 없었다.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도 이날 연설에서 "미국이 우리의 선의와 아량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자위를 위한 정당방위 수단으로서 핵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 강조했다. 그런데 이는 북한이 최근 여러 형태로 `핵보유 선언`을 퍼트리며 분위기를 고조시켜온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평범한` 연설이었다. 결국 이번 9.9절 행사는 `중대발표`가 아닌 `평범한` 연설로, `무력시위`가 아닌 `평화시위`로 진행되었다.

북한은 왜 그랬을까? 북미간의 핵대결에 있어 북한측의 입장은 평화적 해결이다.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미 압박용으로 `중대발표`나 `무력시위`를 할 수가 있다. 역으로 평화적 해결을 위해 `중대발표`나 `무력시위`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후자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충분한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측이 이번 9.9절 행사때 대미 압박용으로 쓰고자 했던 것은 `핵보유 발언`을 통한 `중대발표`가 아닌 `신형 미사일`을 통한 `무력시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보도들에 의하면 북한은 `노동`이나 `대포동` 미사일과는 다른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Intermediate Range Ballistic Missle)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최근 이 신형 미사일을 김일성광장에서 약 11㎞ 떨어진 평양 인근의 공군기지인 미림비행장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신형 미사일이 9.9절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공개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 신형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가 4천㎞로 일본 전역은 물론 미군의 전략 요충인 오키나와 및 미국령인 괌까지 사정권에 넣는 만큼 미국으로선 촉각이 곤두 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북한의 신형 미사일은 핵 억제력 차원을 떠나 또 다른 강력한 대미 압박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세간의 이목을 끈 이 신형 미사일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은 미국에 이 미사일의 실체를 잠깐만 `비공식적으로` 보여주고 9.9절 행사에서는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셈이 됐다. 북한이 신형 미사일의 발사대 및 본체를 미림비행장으로 이동할 때 미국 정보 당국이 인공위성을 통해 이 과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전술적으로` 행사이전에 이를 노출시켜 긴장감을 높임으로써, 정작 행사 당일에는 공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충분한 효과를 거둔 셈이다. 동시에 이러한 북한의 비공개 전술은 행사전 미국측의 일련의 대북 유화책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일부에서는 신형 미사일 공개 여부를 놓고 양자가 비공개 외교전을 펼쳤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로써 북한은 향후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더 한층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먼저, 북한은 지난 달 베이징 6자회담에서 보여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통한 `명분`과 진전된 제안을 통한 `도덕성`의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이번 9.9절 행사에서 `중대발언`이나 `무력시위`를 하지 않음으로서 베이징 6자회담 합의사안인 6개항중에 하나로 알려진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 금지`를 먼저 깨지는 않게 되었다. 셋째, `핵보유 선언과 핵실험 용의` 발언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 또는 신형 미사일 등장` 카드가 대미 압박용으로 여전히 그 약효가 살아있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베이징 6자회담 이후 계속된 북한측의 6자회담 무용론 발언과 이번 9.9절에서 무력시위를 평화시위로 바꾼 전술이, 미국측의 대북 유화책을 이끌어내면서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번 9.9절 행사는 무력시위보다 때로는 평화시위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