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원(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 들어가며

이번 6자회담의 핵심은 미국이 기존의 대북 적대적 입장을 철회하느냐의 여부였다. 미국은 기존의 적대적 입장에서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별반 구체적인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준비하지도 제시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북은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우리의 총적 목표"라고 분명히 하고 `일괄타결 도식`과 `동시행동순서`를 제시함으로써 6자회담 공간을 미국에 대한 외교적,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6자회담에서 확인된 북과 미국의 기본입장 및 제시한 대안을 검토해 봄으로써 위의 결론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2. 북과 미국의 입장과 6자회담의 평가

(1) 대화와 협상의 의지, 구체적 계획이 없는 미국

미국 대표인 국무부 차관보 켈리는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목표가 "북한의 핵무기 계획을 가시적인 검증에 의해 완전하게 불가역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며 해결의 방식에 있어서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쌍무회담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북한이 핵계획을 포기한 다음에야 관계정상화를 목표로 한 미사일, 상용무력, 위조화폐, 마약거래, 테러, 인권, 납치 등 문제들에 대한 쌍무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북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리고 받아들 수 없는 `선핵포기`를 전제로 함으로써 관계정상화나 쌍무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나아가 "불가침 조약은 적절치 않으며 필요하지도 않고 흥미도 없다. 북이 핵계획을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돌이킬 수 없게 포기한다는 것이 확인되면 다음 회담에서 안보상 우려문제들을 다른 나라들과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은 `북에 대한 침공의사가 없고 정권교체 계획이 없다`는 표현과 비슷하게 미국의 진심이 의심되는 대목으로서 북을 일단 무장해제 시켜놓고 나서 군사적 공격을 하든지 붕괴를 시도하든지 그 때가서 판단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2) 대화와 협상의 총적 목표와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한 북

하지만 북측은 기조발언을 통해 자신의 `총적 목표`와 `일괄타결도식`, `동시행동순서`를 밝힘으로써 이른바 `조선반도 핵문제`의 근원과 해결의 목표, 방도 등을 총체적이고 합리적으로 밝힘으로써 핵문제 해결의 의지를 과시했다. 다음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 북의 김영일 부상의 발언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총적 목표
- `핵무기 그 자체를 가지고 있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 `한반도의 비핵화는 우리의 발기이고 그를 실현하자는 것은 일관한 입장이며 전체 한민족의 갈망이다.`

핵문제 해결의 기본열쇠와 선결조건
- `북미 사이의 핵문제가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되자면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근원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핵문제의 근원
- `부시 행정부는 우리 나라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 명단에 포함시켰고 핵무기 사용기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 `우리는 부시 행정부가 힘으로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 `이로부터 우리는 강력한 억제력을 가져야만 하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북측 핵억제력의 목적과 의미
- `우리의 핵억제력은 무턱대고 그 누구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철두철미 자위적인 정당방위수단이다.`
-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바꾸고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핵계획을 포기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전환의 기준
- `북미사이에 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우리가 요구하는 불가침조약은 그 무슨 `안전담보`가 아니라 법적 구속력 있는 호상 공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것)
- `북미 외교관계가 수립되며`
- `미국이 우리와 다른 나라들 사이의 경제거래를 방해하지 않는 때로 볼 수 있다.`

북측의 핵문제 해결의 원칙
- 동시행동으로 맞물려 이행해야 한다

북측이 제시한 일괄타결도식과 동시행동순서

<일괄타결 도식>

미국북한
의무사항- 북미불가침조약체결
- 붇미외교관계수립
- 북일, 북남경제협력실현 담보
- 경수로제공지연으로 인한 전력손실 보상 및 경수로 완공
- 핵무기 만들지 않으며 사찰 허용
- 핵시설의 궁극적 해체
- 미사일 발사실험 보류 수출 중지

<동시행동순서>

미국북한
1단계- 중유제공 재개
- 인도주의 식량지원 대폭 확대
- 핵포기 의사 선포
2단계- 불가침조약 체결
- 전력손실 보상
- 핵시설과 핵물질 동결
- 감시사찰 허용
3단계- 북미, 북일 외교관계 수립- 미사일 문제 타결
4단계- 경수로 완공- 핵시설의 해체

6자회담을 결실있게 끝내기 위한 제안
`첫째,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우려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밝히자.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 의사를 밝히면 우리도 핵계획 포기 의사를 밝힐 수 있다.
둘째, 북미사이에 핵문제 해결에서 나서는 조치들을 동시행동에 맞물려 이행해나간다는 원칙에 합의하자. 이번 회담에서 우리의 타당한 제안이 외면된다면 미국이 `선핵포기`만을 구태의연하게 고집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적당한 기회에 우리를 무력으로 압살하려는 기도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으로밖에 달리 판단살 수 없게 될 것이다. 핵문제의 해결여부는 미국에 달려 있다.`

(3) 6자회담에 대한 평가

많은 언론들은 동시행동-일괄타결 원칙이 6개국 모두 합의한 원칙인 것처럼, 그래서 다음 회담일정이 잡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결론이 도출되었던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미국이 대북 적대적 입장에 변함이 없었고, 북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것을 총적 목표로 내세움으로써 입장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리하여  `주최국 요약문` 형식의 결과밖에 도출하지 못하였다. 북-미 간의 합의점 도출 및 대화와 협상의 지속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명백히 실패한 회담이었다. 그러나 이번 북미 대결의 견지에서 보면 이번 6자회담은 명백히 북의 정치적 도덕적 판정승이고, 이번 회담을 통해 북은 유리한 외교적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구태의연한 선핵포기라는 전제와 대북 적대적 의제를 들고 나온 반면, 북은 핵보유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총적 목표라고 밝힘으로써 6자회담을 `일방적인 북핵 폐기의 국제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목적 달성 공간으로 활용하려던 미국에 정치도덕적 타격을 안긴 셈이다.

둘째, 북은 누가 보아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일괄타결 도식`과 `동시행동순서`를 통해 `총적 목표로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와 방도를 제시했다. 이는 `선핵포기`요구 뿐만 아니라 이른바 "재래식 무기, 테러, 인권, 납치, 마약 문제"등을 구차하게 들고 나오면서 북미직접대화를 회피하려던 미국과는 달리 북이 `조선반도 핵문제`해결의지가 얼마나 분명한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이 바로 북이 정치도덕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평가하는 근거이다.

다음으로 북이 외교적으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고 평가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주최국 요약문` 6개항을 꼼꼼히 살펴보면 북의 입장이 대부분 반영되어 있다.

첫째 항에서 언급된 `한반도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과 비핵화실현`이라는 것 역시 북에서 언급한 `우리의 총적 목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입장의 반영이다.

둘째 항의 `북이 갖고 있는 안보 우려도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는데 공감대 형성`이라는 표현 역시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북핵문제의 근원이 미국의 대북적대적정책에 있으며 이것에 의해 북이 안보우려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 북핵문제의 중요하고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지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항에서는 `단계별 병행적 포괄적 해결원칙`이 명시되었는데 이는 북이 기조연설에서 밝힌 해결원칙을 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원칙조차도 준비해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셋째 항 역시 북의 입장이 전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회담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로 합의한 넷째 항 역시 미국에게 압박이 되는 항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번 6자회담 공간을 북을 압박하는 공간으로 삼고 자신의 요구를 북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또 다른 제재조치 및 군사적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것에 발목을 잡는 내용이 바로 넷째 항이기 때문이다.

한편, 북 역시 `핵억제력`강화의 길로 나갈 수 있지만 `핵문제`해결을 위해 이번에 북이 제시한 목표와 원칙, 방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 미국이 먼저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한 상당히 자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섯째 항인 6개국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위해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확대해나가기로 한 점, 여섯째 항인 시간과 장소를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2차회담의 속개하기로 한 점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겠다.

다섯째 항의 경우 매우 일반론적인 원칙이라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여섯 번째 항과 관련해서는, 북이 이미 북과 미국 사이의 차이점만 극명하게 드러난 이번 6자회담이 속개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공식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이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는 한 후속회담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번 6자회담을 통하여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압살정책을 구태의연하게 추구하면서 압력으로 우리의 무장해제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명백해졌다. 사실 우리 측은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 <미국의 정책전환의사 대 조선의 핵포기 의사> 표명정도라도 합의가 이룩되여 모처럼 마련된 대화과정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대마저 사라진 조건에서 우리가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말 대 말로 정책의지를 밝히는 것 마저 완전 거부함으로써 다음 회담의 전망자체를 위험에 빠뜨렸다."(`조선중앙통신` 8월 29일)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한 핵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보다 강화되었다`며  `회담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북의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미국의 희망사항이 실현되려면 북에서 요구하고 있듯이 최소한 `말 대 말`로서라도 정책전환 의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북의 입장이 주로 반영되어 있는 세 가지 항목에 대해 나머지 나라들이 공감을 표현했다는 것은 바로 `북핵문제의 국제화`를 통한 대북압박 공간이 아니라 미국이 역포위되어 외교적 공세를 받아야만했던 공간으로서 6자회담이 활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이 정치도덕적으로 승리하였고, 외교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는 측면과 함께 또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은 6자회담 공간 안에서의 남북관계였다.

27일 오후 9시 경 공식 만찬이 끝난 후 남과 북의 수석 및 차석대표 4명은 회담장 내 별실로 자리를 옮겨 첫 날 전체회의에서 미국의 기조발언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 김영일 북측 수석대표는 미국의 기조발언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문의했고, 남측은 미국의 의도를 설명해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봉길 외교통상부 대변인에 따르면 이같은 설명에 대해 당시 김영일 북측 수석대표는 고맙다는 뜻과 함께 6자회담 진행에 매우 유익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북측의 자세 변화는 종전과는 달리 이제는 남측의 태도를 신뢰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으로 6·15시대의 남북관계가 이전과 달라진 점의 극명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1993-94년 핵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의 미국보다 더 심한 대북 적대적 태도가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북-미 협상에도 난관을 조성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남측 역시 미국의 `선핵포기` 요구에 동조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한편 북측 역시 미국의 의도를 몰라서 남측에게 물어봤다기 보다는 남측을 적어도 6자회담의 한 당사자로, 나아가 `한반도 핵문제의 한 당사자`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향후 전망과 우리의 과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2차 6자회담을 10월 경에 여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고, 북도 이에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북은 이미 6자회담을 `탁상공론으로, 우리를 무장해제하기 위한 공간`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고 평가하였고 `핵억제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재천명하였다(조선 외무성 대변인 `조선중앙통신`과의 회견 8월 30일). 이러한 북의 입장에 비추어 보았을 때 미국의 입장이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는 한 다시 대화의 자리에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직후 미국은 애써 6자회담이 북핵문제를 국제화하여 북을 압박하는데 유효했다고 평가하는 한편 북에 대한 이른바 `군사적 선택 가능성`을 유지해야 한다, `새로운 경제제재를 해야한다`는 등의 언급들을 흘리고 있다.

6자회담 결과에 대한 북의 평가는 미국이 그러건 말건 북은 자신의 `핵 억제력` 강화의 길을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일단, 상당한 자제력을 발휘하겠지만) 미국은 이것을 빌미로 하여 새로운 군사적 긴장 고조를 획책할 것이다. 2차 6자회담이 열리게 되건 그렇지 않건 10월까지 북-미 대결은 최고조에 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일시적인 대화국면에도 불구하고 전쟁위기는 가시기는커녕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한반도 핵문제`의 근원과 본질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있음을 널리 알리고 전쟁을 반대하며 미국을 반대하는 투쟁 역시 최고조에 달해야 함을, 이와 함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는 것 또한 가장 높은 수준에서 절박하게 요구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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