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대표)


민간 차원의 8.15평양행사가 무사히 끝났다. 한때 `평양불가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민족대회`가 아무런 탈없이 마무리된 것은 그 자체로 의의이자 성과일 수 있다.

자체 힘으로 민족공동행사 치를 수 있는 모멘텀 유지하게 돼

`평양불가론`이란 2001년 8.15평양행사 때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개.폐막식과 `만경대 필화사건`에 대한 악몽(?)에다, 무엇보다 최근 이른바 `핵문제`로 인해 북한과 미국간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북측의 수도에서 남북공동행사가 열려 행사가 자칫 `반미반전의 장`이자 `민족공조의 장`이 될까 우려한 것이 그 요체다.

그러나 `성숙한` 남북의 민간은 이를 슬기롭게 잘 넘겼다. 이로써 남북의 민간은 정세의 복잡함이나 외세의 압력에 관계없이 자체 힘으로 언제 어느 때고 민족공동행사를 치를 수 있는 모멘텀을 유지하게 되었다.

특히 주최측인 북측은 단순히 `평양불가론`을 불식시키는 차원이 아닌 한반도 현 정세와 남북 민간통일운동에 대한 원칙적이고 공세적인 의도를 드러내 주목을 끌었다. 통상 주최측은 행사를 통해 무엇인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싶기 마련이다. 북측은 이번 대회를 통해 남측 대표단 300여명과 남측 국민들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싶었을까?

먼저, 북측은 `평양불가론`도 잠재울 겸 이번 대회를 비정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치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최장소를 평양시민의 위락지인 능라도로 잡았으며 또 남측의 `레드 콤플렉스`를 감안해 깃발과 현수막 등을 한반도기 색깔로 바꾸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줬다. 2001년 8.15평양대회에도 참가했던 남측 대표단들은 `2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며 입을 모았다. 그 구체적인 예로 전력사정의 호전과 평양시내의 여유로운 모습, 그리고 평양시민들의 밝고 활기찬 표정을 들었다.

특히 북측은 능라도에서의 대회 개막식에 2천여명의 평양시민을 초청했으며 또 평양지하철 참관때 남측 대표단이 퇴근길 평양 시민과 접촉하는 걸 애써 막지 않았다. 이는 `자유국가` 남측이 지난해 8.15행사를 워커힐이라는 서울의 후미진 장소에서 진행하고 또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은 것과 대비가 된다. 북측은 핵위기 속에서도 평양시와 평양시민이 비교적 자유롭게 기지개를 펴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둘째, 북측은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을 당국 차원의 그것과 그 지위와 격을 같이 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통일운동을 당국과 민간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로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민간 차원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북측에서는 개막식에서 홍성남 내각 총리가 축사를 했으며 또 형식상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과 북, 해외 대표단 `주석단`과 접견을 했다.

이는 남측에서 진행된 민간 차원의 일련의 남북공동행사에서 남측 `당국`이 전혀 배제되는 것과 대비된다. 남측은 민간 차원의 `순수한 행사`로 못박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북측은 6.15공동선언이 당국자 차원에서 이뤄졌을지라도 통일운동이란 당국과 민간이 같이 하는 것이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메시지 `선군정치`

셋째, 북측은 이번 평양대회에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들고 나왔다. 아마 북측은 그 어떤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평양불가론`을 잠재우면서까지 남측 대표단을 평양에 불렀을 터이다. `구호의 나라` 북측이 매 대회 때마다 메시지를 들고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01년 8.15평양대회는 최초의 남북 민간 차원의 공동행사였다. 북측은 최초의 남북공동행사 개.폐막식을 `3대헌장 기념탑`에서 치름으로서 통일운동의 정당성과 주도권을 쥐겠다는 메시지를 내외에 과시하고자 했다.

2002년 8.15서울대회에서 북측은 민간차원 각 부문의 책임자급을 대거 내세워 민간교류의 적극성을 알리고 또 문화예술단을 특색있게 보내 남측 국민들에게 `민족 감성`으로 호소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조선은 하나다`, `민족은 하나다`의 연장선에서 `민간은 하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올해 8.15평양대회에서 북측은 `민족공조`와 특히 `선군(先軍)정치`를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홍성남 내각 총리는 개막식 대회사에서 "오늘 조성된 정세는 민족공조로만 전쟁도 막고 민족의 안녕을 지켜낼 수 있다"면서 "나라의 평화도, 민족의 안녕도, 통일조국의 미래의 운명도 오로지 `선군`에 의하여 담보된다"고 강조했다.

김영대 민화협 회장은 폐막식 연설에서 "민족의 강대성은 단결에 있다. 온 민족이 단결해서 공조, 또 공조해 나가자"며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북은) 전쟁억제력을 갖고 있어서 언제나 든든한 민족수호의 보루가 될 것"이라고 말해 `선군`노선을 부각시켰다.

김영남 상임위원장도 남.북.해외 대표단 `주석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역사를 보더라도 국력이 약해 민족수난을 당하고 비운을 겪게 됐으며, 우리가 오랫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강위력한 전쟁억제력을 갖춘 것이 정당하고 생활력이 있다는 것이 이라크 사태가 증명하고 있다"면서 `선군정치`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북측이 `선군`이라는 메시지를 개.폐막식에서 언급했고 또 김영남 상임위원장도 언급했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이러한 언급은 15일 북측 노동신문이 광복절 기념사설에서 "선군정치를 받들어 모든 군인을 만능 병사로 준비시키고 모든 부문.단위가 군을 돕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맞물려 그 어떤 강력한 메시지 역할을 배가시키고 있다.

북측은 통일운동의 전령사인 남측 대표단에게 `선군은 남측을 겨냥한 게 아니다. 선군은 외세에 대한 민족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선군정치에 의한 전쟁억제력은 남북을 포함한 한반도를 전쟁위협에서 구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빈 말을 하지 않는` 북측이 이번 8.15평양행사를 통해 남측 대표단과 국민들에게 전하고자 한 이같은 몇 가지 의도와 강렬한 메시지가 이달 27일부터 열릴 예정인 베이징 6자회담과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이고, 또 9월3일 열리는 제11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와 9월9일 정권 수립 55주년 기념일을 기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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