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광복(光復), 말 그대로 빛을 되찾는 것이다. 일제식민치하의 암흑에서 해방과 독립이라는 빛(光)을 되찾은(復) 날이 바로 광복절이다. 그렇다. 경축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제식민치하와 같이 외세에 의해 지배받고 억압받는 치욕의 역사는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번 경축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따라서 이번 경축사는 노무현 정부의 의지 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의지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에 남다른 의미와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자리잡게 해야 한다는 것이나, 한반도 핵문제를 조속히, 그리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6.15남북공동선언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축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자주와 평화,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들에게 실망과 아쉬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제 시대 피해자들에 대한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대통령이 경축사를 발표하기 불과 이틀 전, 일단의 백발 노인들이 청와대를 찾아갔다. 정신대 할머니, 강제징용자 등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이 국적포기서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은 일제식민지배의 모든 죄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다. 이 면죄부에 의해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은 일본에 그 어떠한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였다. 역대 한국 정부 역시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기에 급급했다. 마침내 피해자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국민의 이익을 무시하는 국가의 국민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국적포기는 역사적 평가와 정당한 보상을 바라는 처절한 절규이다. 정부는 이들의 처절한 절규마저 외면하였다.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은 일제시대의 암흑에서 빛을 찾지 못하였다. 이들에게 광복은 오지 않았다. 광복도 맞이하지 못한 이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요구를 정부까지도 애써 외면하는 현실에서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한낱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선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빛을 찾아 주는 일이다.

2. 자주국방 논리,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우선 자주국방의 개념부터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자주국방은 `북한의 위협을 자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국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전히 이북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주국방론은 이남의 안보는 이북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이해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야말로 냉전시대의 안보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냉전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통일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 6.15 공동선언의 발표로 인해 더 이상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냉전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북의 위협을 운운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주국방은 남과 북의 적대적 상황에 기초한 국방이 아니라 민족방위를 내용으로 하는 국방이 되어야 한다. 즉 민족전체가 외세의 침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주국방일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하여 경축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경축사에서는 10년 내에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정보와 작전기획 능력을 보강하고, 군비와 국방체계도 그에 맞게 재편해 나가겠다고 하였다. 자주국방을 위한 국방비를 증강하겠다고 공식화한 것이다. 맞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군비도 확충해야 하고, 국방체계도 재편해야 한다.

그러나 군비 확충과 국방체계 재편이 곧 자주국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잘못된 군비 확충과 국방체계 재편은 자주국방은 고사하고 지금보다 훨씬 심한 `예속 국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방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도입하려고 하는 PAC-3 미사일은 미국이 추진하는 MD(미사일 방어) 체계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AC-3 미사일 도입은 곧 MD 체제의 편입이다.

지난해 10월 8일 오전 연세대학교에서 미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청(MDA)의 후원으로 연세대 국제대학원과 미 외교정책분석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반도에서의 미사일방어와 반확산 전략’이라는 주제의 비공개 회의가 있었다. 이날 회의에서 발표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 국방부는 실질적으로 미사일 방어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개별 무기획득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한국군의 국방중기계획에 따른 무기 현대화 과정만 봐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제3세대 구축함사업(KDX-III)을 통해 이지스 체계를 획득했고, 공군의 차기방공망사업(SAM-X) 사업을 통해 획득할 무기도 페트리어트(PAC-3) 미사일이 가장 유력하며, 공중조기경보기(AWACS) 등도 확보할 계획이다." 이어 "비록 공공연히 논의되고 있진 않지만, 이들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이들 무기 구입을 통해 갖춰진 능력은 한-미 연합방위체계 아래서 배치될 것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MD에 밀접히 통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MD 체제의 편입을 과연 자주국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21세기 미국 국방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MD 체제로의 편입은 미국 국방정책에 한국의 국방이 예속되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대통령이 지적한 `독자적인 작전수행 능력과 권한`과는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불안한 자주국방 논리는 한미 동맹에 대한 맹신에서도 확인된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미국의 패권정책과 일방주의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하긴 `자주국방`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속국방`의 길로 나아가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분명히 상호보완이라는 말이 맞겠다.

9.11 사건이 있고 나서 미국은 앞으로 7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했다. 7년 동안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에서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동맹과 상호보완되는 `자주국방`은 미국의 전쟁 계획에 예속되는 참담한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3. 핵문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부족하다.

경축사에서는 핵문제와 관련하여 이북의 의무만을 명시하였다. 즉 핵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핵문제에 있어서 또 하나의 당사자인 미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미국이 꾸준하게 보여준 북에 대한 위협 행동, 적대행위는 한반도 핵문제의 발생요인 중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위협 행동과 적대행위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6자회담 개최가 합의된 이후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특정한 형태의 불가침 보장을 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6자 회담 중에 양자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애써 감추다가 북-미 양자가 공개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하기도 하였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 한다는 극단적인 평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노무현 정부는 핵문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부족하다. 그 정도의 이해력으로는 결코 핵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중국도, 러시아도 이북에 대한 안전보장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만도 못한 입장을 갖고서 어찌 핵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6자회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정부는 핵문제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 앞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나아가야 길도 분명하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것은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대외정책 방향은 결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날, 평양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에서 남과 북, 해외 참가자들은  공동결의문을 발표하였다. 공동결의문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야기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가 참고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그 부분을 언급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 평화 없이 통일 없고 민족공동의 번영 없다 △ 외부로부터의 전쟁위험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극복한다 △ 민족의 단합과 공조로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 나간다 △ 민족 통일을 이뤄 이 땅 위에 진정한 평화를 깃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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