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1. 6자회담 합의와 넘어야 할 산

어렵사리 6자 회담이 합의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일단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계기로서 다자간 대화가 시작되었음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북미간 속내는 알 길이 없다. 예의 경우처럼 대화 시작이 문제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운 경우만 보더라도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화는 사실상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경험이 더 많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2002년 10월의 미국 특사 방북은 오히려 북한의 핵문제를 부각시킨 최악의 대화가 되어 버렸다. 금년 4월에 개최된 베이징 3자 회담 역시 핵문제의 해결보다는 상황악화를 초래한 계기가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6자회담 합의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2. 미국의 대북 정권교체 유혹

무엇보다도 미국이 북한의 요구사항인 체제보장과 일괄타결을 순순히 들어줄 것인지 의문이다. 미국의 대북 정권교체 의욕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지금 상황을 고려해보면 대화시작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추진과 유엔 안보리 회부 시도 등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본격적으로 탈북자 문제와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고 있는 부분은 더더욱 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상원에서 `북한난민구호법안`이 통과되고 미국 행정부에 탈북자 수용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었으며 북중 국경에 탈북자 대량 난민촌 건설이 논의되는 등 최근 북한인권을 내세운 탈북자 대책들이 백가쟁명식으로 나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이라크식의 군사적 해결방법이 현실적으로 난망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외부 압박과 봉쇄에 의한 북한 고사작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내부붕괴를 유도하는 것으로 결말 되어진다. 지금 거론되는 탈북자 문제와 북한인권 등의 이슈가 바로 이같은 목표 하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더욱이 이라크전 이후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한 데다 연거푸 한반도에서도 군사적 방식에 의한 문제해결을 시도할 경우 내년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로서는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고 이는 곧 지금의 일시적인 대북 유화 제스춰가 사실은 외교적 해결의 모습을 보이려는 임시방편의 노력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즉 북한과 대화는 하되 그 대화의 시늉만 보여주면서 당장의 정치적 부담을 피해가는 면피성 시도라는 것이다. 또한 북핵문제는 여전히 부시 행정부에게 해결도 악화도 아닌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득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최근 정부는 황장엽씨의 미국방문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대북 압박과 북한인권에 대한 강도 높은 문제제기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황장엽씨의 미국방문이 혹여라도 북한 핵무기의 보유사실과 인권현실에 대한 의도된 과대포장으로 연결될 경우 이는 곧 북한정권에 대한 응징의 당위성을 국제여론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욱이 황장엽씨가 이전부터 주장해왔던 내용들 즉 김정일 정권은 결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북한의 대화요구와 협박에 일절 응하지 않아도 되며 오직 대북 압박과 봉쇄를 통해 북한 내부의 체제붕괴를 유도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미국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황장엽씨의 발언을 통해 미국이 대북 봉쇄를 정당화하고 북한정권의 교체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면 그 다음 수순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을 방문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북한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수만 명의 탈북자를 한국이 일시에 수용해주기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 내 인권단체가 나서서 외국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와 달러가 들어있는 풍선을 북에 날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황장엽씨의 미국방문은 분명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만의 하나 황장엽씨의 방미를 계기로 그를 내세운 임시 망명정부라도 구성한다면 이는 미국의 대북 정권교체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의 탈북자 문제 부각과 북한인권 거론이 황장엽씨 망명과 어울려 보다 치밀한 대북 정권교체 프로그램의 가동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곧 한편으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붕괴를 노리는 이중플레이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 경우 6자회담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극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3. 6자회담과 북한정권 교체는 양립불가능

최근 일련의 조치들을 보면서 우리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대화를 한편으로 진행하면서도 동시에 기회가 닿는다면 북한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겠다는 `정권교체`(regime change) 유혹을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붕괴로 자신의 군사력을 과신하게 된 미국은 이제 한반도에서도 눈엣가시 같은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고 싶은 힘의 유혹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핵포기의 댓가로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체제보장`은 바로 이같은 미국의 정권교체 의도를 사전에 불식시키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은 자신의 체제유지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 것이 사활적인 관건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핵카드와 체제보장을 맞바꾸려는 북한의 의도는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완강한 `벼랑끝 전술`에 의해 별 효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은 겉으로 대화의 체면치레를 하는 한편으로 북한의 체제전복과 정권교체를 위해 `악의의 무시`(malign neglect) 전략 하에 대북 봉쇄작전을 시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를 놓고 우리 사회에도 서로 상충하는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북한을 붕괴시켜 당장 흡수통일하자는 부류가 아직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과 흥분만을 앞세운 채 북한붕괴론을 목청높이는 사람들은 그 전략이 과연 가능한 것이고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해보면 북한붕괴후 흡수통일이라는 것이 지금 당장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전략을 추진하는 순간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화해의 증진은 그 날로 파탄에 이르게 될 것이며 지금 한미간 역관계와 국제정세를 감안할 때 북한붕괴는 평화통일의 과정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우리가 동의한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결코 올바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또한 미국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북 정권교체 프로그램이 우리의 입장에서 가능하지도(impossible) 바람직하지도 않다는(undesirable) 것을 인정한다면 응당 6자회담 성사와 함께 한국정부는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체제 인정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북한정권의 교체 시도는 오히려 핵문제의 악화와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유발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평화통일의 가능성마저 봉쇄하는 최악의 선택이며 당장은 6자회담을 문제해결이 아닌 상황악화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무모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핵문제 해법이 북한붕괴를 노리는 것이라면 이는 우리의 국가이익과 민족이익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의 입장이라면 정권교체 프로그램의 시도가 한번 해볼 만한 것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화해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추진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어떤 이유에서도 그같은 방식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4. 6자회담 합의를 넘어

미국의 북한정권 교체 프로그램은 아직 완전히 폐기된 게 아니다. 6자회담 합의로 일단 북핵문제가 대화의 방향으로 물꼬를 틀었지만 여전히 미국 내부의 움직임은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북한붕괴는 외부에서 강제로 시도하거나 조장해서 되는 게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지금 김정일 정권의 외부압력에 의한 붕괴시도와 교체노력으로 관철될 수는 없다. 외부에서 나서는 북한붕괴나 정권교체는 오히려 문제해결을 복잡하게 할 뿐이다. 보다 합리적인 방법은 북한 스스로 내부로부터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가능한 외적 조건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핵문제의 해결도 이같은 방향에서 논의되고 시도되어야 한다.

6자회담의 개최는 대강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리 녹록한 편이 아니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대북 압박과 극단적 대결의 가능성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협상과 대화성공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지금의 국면에서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는 결국 미국이 북한 정권교체에 대한 유혹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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