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원광대 정치행정언론학부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노쓰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열린 군비 감축에 관한 워크샵에 참석했을 때다. 틈이 날 때마다 30여명의 미국인 학자들에게 내년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답은 한결 같았다.

부쉬의 재선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언제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는 문제는 이전보다 먹고살기가 좋아졌느냐는 것이기 때문에, 요즘이나 가까운 장래에 미국 경제가 나아질 조짐이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별로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쉬의 재선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가 앞으로 더욱 나빠지길 바라고 싶은데 그러면 일반 시민들이 겪을 고통이 안타깝고, 일반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더 잘 살게 되면 좋겠는데 그러면 부쉬가 당선되기 쉬울테니 어느 쪽으로 기도해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나의 고백에 그들도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공화당이 정권을 잡든, 온건파가 대통령이 되건 강경파가 대통령이 되건, 미국의 대외 정책에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추구해온 제국주의 대외 정책이 어느 한 정권에 의해서 생긴 것도 아니요 하루아침에 포기될 성질도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 차이가 흔히 말하듯 진보와 보수만큼 다른 것도 아니요, 정책 결정자들 가운데 강경파와 온건파의 차이가 전쟁과 평화만큼 큰 것도 아니다. 대부분 미국인들의 사고 방식이 신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비뚤어진 `선민 의식`이나 미국이 세계 최고라는 `미국 제일주의`에 사로 잡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가 세계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선거에서 부쉬가 떨어지길 바라는 이유는 그가 유달리 단순 무식한 깡패 같고 그의 참모들이 대부분 협상보다 군사력 사용을 중시하는 몹시 호전적인 인물들이어서 지금까지의 어느 정권보다 세계 평화에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방부를 이끌고 있는 럼스펠드 장관은 그야말로 `전쟁광`이다.

지난 7월 23일 미국 연합감리교 세계선교부 주최로 뉴욕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포럼에 발표자로 나선 레온 시걸 (Leon Sigal) 박사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게 재미있었다. "흔히 미국 군부가 호전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오해다. 장교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군인들은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전쟁을 부추기고 군인들을 싸움터로 내모는 사람들은 민간인들이다."

아무튼 내가 만난 30여명의 미국인 학자들이 거의 한 목소리로 얘기했듯, 부쉬의 재선이 어렵게 되려면, 민주당에서 강력한 후보가 나오고 미국 경제가 더 나아질 기미가 없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들의 피해가 커져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뻔한 얘기요 대통령 선거가 있을 내년 11월까지 15개월이나 남았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세계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이런 문제들에 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여보고 싶다.

첫째, 민주당에서 얼마나 강력한 대통령 후보가 나올까? 지금까지 민주당 안에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예비 후보는 9명이다. 이 가운데 이른바 대중적 인기를 크게 끌거나 선거 자금을 많이 모아놓은 후보는 아직 없는 듯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미국에서 돈 없이 선거를 치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지난 3개월 동안 부쉬는 혼자 3400만 달러를 모은 반면 민주당 예비 후보 9명은 모두 합쳐 3100만 달러를 모았으니 1인당 평균 부쉬의 1/10 수준인 345만 달러를 모았을 뿐이다. 더구나 민주당 예비 후보들은 이 돈의 대부분을 각각 당내 본선 후보로 지명받기 위한 예선 과정에서 써야겠지만, 부쉬는 이미 본선 후보가 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이후 민주당이 야당을 하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적이 딱 세 번 있는데, 1960년의 케네디, 1976년의 카터, 1992년의 클린턴 모두 그 당시에는 널리 잘 알려진 공화당 후보에 비해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왜소한 후보들이었지 않은가.

둘째, 미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요즘 남한에서나 미국에서나 경제가 몹시 어려운 모양이다.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얄미운 소리가 되겠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는 해마다 월급이 조금씩이라도 오르고 여기저기 글쓰고 강연하는데 원고료나 강연료가 줄어들지 않으니, 나 같은 봉급쟁이들에게는 경제가 어렵다는 현실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한에서 장사하는 친구들은 한결같이 1997년 말 외환 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얘기하고, 미국에서 돈벌이하는 동포들은 대부분 2000년 9.11 이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의 일반 시민들이 이른바 피부로 느끼는 경기가 어떠한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마침 7월 31일자 {뉴욕 타임즈}와 {와싱턴 포스트}는 지난 3개월 동안 미국 경제가 2.4% 성장했고 실업률은 6.2%로 떨어졌다는 보도를 하고 있으니 경기가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조짐인가 보다. 경기가 호전된다는 신호는 누구보다 부쉬에게 희소식일 것이다.

셋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어찌 될까? 지난 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해서 양쪽이 서로 치고 받을 때 난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 미국인이든 이라크인이든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는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야겠지만, 미국이 너무 싱겁게 이겨버리면 전쟁에 더욱 자신감을 갖고 이 나라 저 나라를 계속 침략할까봐 두렵다고.

그런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큰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조그만 전투는 아직 계속되고 있으며 미군들이 하루 평균 1명씩 죽어가고 있다. 미국의 침략을 받은 나라에서는 싸우는 군인들이든 무고한 민간인들이든 수백명이 죽든 수천명이 죽든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지만, 미군이 한 명이라도 죽으면 방방곡곡에 성조기를 내걸고 애도하는 미국인들의 정서에 비추어보면, 큰 전쟁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미군이 거의 매일 한 명씩 죽어간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요 심각한 일이다.

미군들의 희생이 늘어날수록 부쉬의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며칠 전 이라크에서 후세인의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부쉬가 환호를 보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미국에 대한 테러 위협은 그치지 않는데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미국이 가짜 정보를 내세우며 이라크를 침략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군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는 탓인지, 요즘 부쉬의 지지율이 50% 밑으로 뚝 떨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렇든 저렇든 선거를 15개월이나 앞두고 부쉬의 재선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무리요 부질없는 짓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의 진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그가 선거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도록 궁리해볼 필요는 있다. 마침 서울에서 매주 {평화 만들기}를 펴내고 있는 평화 운동가 김승국 박사는 해외의 평화 운동 단체들과 함께 펼칠 부쉬 낙선 운동을 구상하며 이미 구체적 방안을 다듬고 있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그 운동에 영향받을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부쉬가 2000년 선거에서 당선되지도 않았을테고, 세계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이라크 침략 전쟁을 지지하지도 않았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좋은 의견을 기대한다. (이 글은 `남이랑북이랑`(http://www.pbpm.org) 8월호에 게재된 것을 다시 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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