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6자회담(남.북.중.미.러.일)이 열리게 됐다. 아무리 순치(脣齒)의 관계이지만 핵개발은 찬성 못하겠다는 중국의 압력이 북한에 작용했고, 미국도 이라크에서 예상 밖의 어려움에 부딪쳐 매파들의 입지가 약해진 것이 국면타개의 배경이 됐다. 아무튼 전쟁으로 가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전망이 밝아져서 반가운 일이다.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

작년 10월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미국의 켈리 특사가 평양에 갔을 때, 북한관리들이 우라늄으로 핵무기를 제조하는 비밀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미국정부가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때 북한은 대화를 재개하려고 왔다는 켈리가 우라늄 농축여부를 하도 고답적으로 따지기에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고 응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 말이 결국 북한이 비밀 핵무기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미국이 주장할 근거를 제공했든 것이다.

북한은 1994년 북미기본합의로, (1) 중수로 건설을 중단하고 그 대신 미국의 주선으로 2003년까지 경수로 2기를 제공받고 아울러 그 공백기간의 전력부족을 충당하기 위한 중유를 공급받으며, (2) 한반도 비핵화약속을 지키고 핵확산 금지체제에 잔류하는 대가로 미국과의 관계개선, 경제제재 해제 및 대북무력(원자무기 포함)불사용 공식보장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북한측 약속사항은 그 성질상 당장 실시되었는데 반하여 미국측 약속은 주로 시간을 두고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것을 질질 끌기도 하고 아예 깔아뭉개기도 했다. 북한은, 특히 북한군부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에 대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은밀히 우라늄농축기술을 도입했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그 정보를 입수했지만, 그때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중이던 대북관계 개선교섭이 매듭을 지으면 자연 해소되는 문제로 보고 심각히 생각하지 않았으며 부시 행정부가 들어설 때 그 정보를 인계해 주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우라늄농축계획을 이미 2001년 초부터 알고 있었는데, 1년 10개월이 지난 후 별안간 이 문제를 북한에게 따지고 든 것이다. 그때 켈리의 방북목적은 오래 중단된 대북대화의 재개를 위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켈리는 체니 부통령과 라이스 안보보좌관으로부터 북측을 자극하여 우라늄농축계획의 존재를 실토시키는 방향으로 몰고 가라는 밀명을 띠고 갔다는 설도 있다. 그것은 고이즈미 일본수상의 갑작스런 대북접근에 제동을 걸기 위한 계책이었다는 것이다.
 
또 미 해군대학 작전연구부장 죠나탄 폴락 박사는 얼마 전 해군대학보에 기고한 논문에서, 우라늄 농축은 민간용(경수로용)으로 할 수도 있고 군사용(핵무기제조용)으로 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 다음, 미국 CIA는 2002년 11월 19일(즉 켈리 방북과 미국의 북핵시인 주장 이후) 의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북한의 능력으로는 우라늄 농축의 목적이 민간용일 경우 적어도 3년 후에야 실용이 가능할 것이며 군사용일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즉 북한의 우라늄농축계획이 아직 우려할만한 단계에 가 있지도 않았는데 미국은 당장 큰일이나 난 듯 위기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신보수주의 매파들은 클린턴이 매듭지으려던 북미관계 정상화를 다시 대결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1994년 북미협약에 따른 미국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북한에 협정위반의 책임을 전가시켰다. 그러나 미국도 북한에 대한 핵공격 위협 중지를 공식으로 보장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있다. 북한이 지금 불가침협정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즉 북한의 비밀 핵무기계획이 설사 사실이라 할지라도 협정위반의 책임은 피장파장이지 북한만 몰아세울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약속위반은 북한에게는 큰 문제이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에게는 남의 문제에 불과하다. 허나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면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로서도 좌시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지금 북한이 국제적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핵심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양자간의 협상이 완전 타결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누가 어느 정도 확실히 보장해 주며 얼마나 큰 경제적 이익을 주느냐에 따라서 북한 핵활동을 어느 수준까지 동결할 수 있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핵의 "검증가능하고 불가역한 전면폐지"가 과연 가능할른지는 미지수이다.

6자회담에서 한국이 취할 입장

이제 대한민국도 북핵 6자회담에 나가게 되었는데 한국은 이 회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첫째, 북한의 우라늄 농축 비밀계획에 대해 미국말만 믿고 부화뇌동하지 말고 문제의 진상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공정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치기 위해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조 및 보유에 관한 정보도 조작한 바 있다.

둘째, 한국은 물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해야겠지만, 지난 일을 상고할 때 북한에 대한 언동은 특히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핵문제는 북한이 시작한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1950년대 말경부터 휴전협정 제13항 d절의 규정을 위반하고 한반도에 핵무기를 도입, 배치함으로써 발단된 문제이다.

북한은 물론 이를 강력히 항의하면서 한반도를 비핵화할 것을 주장했지만 미국은 시종 마이동풍으로 일관했다. 그때 한국은 어떻게 했는가? 북한의 주장을 비웃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30년 동안 남한 내에서 미국의 핵무기 철거를 주장하는 인사들을 이적으로 몰고 탄압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 와서 한국이 북한의 핵무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큰 소리 칠 처지가 못된다.

셋째, 소위 한.미.일 3국공조체제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6자회담은 결국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앞세워 북한을 압박하자는 구도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안에 따라 북한의 입장을 배려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남한이 미국과 일본의 앞잡이나 한패가 되어 북한을 몰아붙여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일본이 한반도문제에 다시 참견하게 된 것은 불길한 일이다. 이런 때에 남북공조가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넷째, 미국은 분명 핵동결의 대가로 북에 제공하는 대북 경제지원의 짐을 한국과 일본에 떠넘기려 할 것인데, 이것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기왕에 실시 또는 계획되고 있는 대북 경제협력사업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6자회담의 결과로 제공되는 대북 경제지원이 외국자본의 북한경제지배의 계기를 조성하지 못하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번의 6자회담을 바탕으로 장차 동북아지역 집단평화체제를 발전시키는 구상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해체 및 철수시키고, 그 대신 주한미군을 동북아지역 내 관계 각국이 참여하는 동북아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남북의 화해와 군축을 촉진하고 통일을 앞당기게 하는 장기적 안목에서 절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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