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지금으로부터 꼬박 50년전 유엔군과 북한군 쌍방은 판문점에서 3년여의 전쟁상태를 일시 중단하는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이날 서명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단지 9분만에 이뤄졌다. 이때 상황을 한국과 미국의 언론은 이렇게 전했다.

당시 서울신문 문제안 기자는 `전투는 일단 정지, 9분만에 조인 완료` 제하에 "또 하나의 비극의 남북분단선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양쪽은 마치 휴전이 아니라 전쟁선포에 합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쌍방이 정전협정을 조인할 때의 상황과 광경이 어떠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기에50년이 지난 지금, 평화(平和)상태도 아니고 전쟁(戰爭)상태도 아닌 정전(停戰)상태가 한반도와 우리 사회 곳곳을 지배하면서 기괴한 풍경들을 연출해 내고 있다.

최근 몇 가지 기괴한 풍경들

첫째, 유엔군사령부는 오는 27일 오전 9시 판문점에서 6.25한국전쟁 유엔군 참전 21개국 참전용사 1천5백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정전협정 조인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면서 북측에 이 행사에 참석해 달라고 초청했다.

북한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의 리찬복 대표(상장)는 이와 관련, "미국측의 전쟁참전국 대표들이 참가하는 이 행사에 인민군측을 초청하는 `괴이한 놀음`을 벌여 놓고 있다"면서 "우리에 대한 각종 `봉쇄` 행위를 단행할 것이라고 선포한 미군측이 우리를 초청한 것은 정전협정 이행에 관심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계여론을 기만하려는 것으로 어느 모로 보나 격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둘째, 현대아산 측은 8월중 예정인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 준공식에 `민간인 1000명을 경의선 임시도로를 통해 평양에 보낸다`는 집단 방북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MDL) 관할권을 갖고 있는 유엔사가 이를 불허했다. 유엔사는 불허 이유로 `1000명이 MDL을 통과할 경우 북측의 정전협정 무력화 전략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셋째, 제헌절인 지난 17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안 북한군 경계초소(GP)에서 남측 경계초소를 향해 4발의 총격이 가해져 남측도 이에 대응한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국방부는 오발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잠정결론을 내리고 "이는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북한군에 공식항의하기로 했다.

넷째, 북한과 미국이 이른바 `북핵문제`와 그 해결방법을 놓고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미국은 한반도에 전력증강과 주한미군의 재배치, 그리고 대북 `해상봉쇄` 등을 선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판문점 대표부 대표 명의로 된 담화를 통해, 미국측의 전력증강이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을 사실상 완전히 파기했으며, 그리고 대북 `해상 및 공중봉쇄` 계획이 정전협정 제15항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만약 해상봉쇄가 강행될 경우 즉시 강력한 보복조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정전협정이 대체되어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위 네 가지 풍경 모두가 왜 기괴한가. 첫 번째 풍경의 기괴함은 미군이 `격에 맞지 않을 정도로` 겉과 속이 다른 동시에 `괴이한 놀음을 벌일 정도로` 북한측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며, 두 번째 풍경의 기괴함은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남북이 자기 땅에서 자유롭게 만나겠다는데 제3자(유엔사, 보다 정확하게는 주한미군)에 의해 제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풍경의 기괴함은 어느 쪽이든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해도 그것을 따지고 다룰 아무런 정전관리기구가 현재 없다는 점이고, 네 번째 풍경의 기괴함은 현재의 정전상태가 쌍방의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에 의해 유지되고 있을 뿐 어느 한쪽의 선제공격이나 기습공격에 의해 정전협정이 언제든 파기되고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기괴한 풍경들은 모두가 무력화되고 불안정한 정전협정과 일정 부분 그에 기반해 있는 유엔사(미군) 탓이다. 물론 그나마 아직 쌍방이 무효나 파기선언을 하고 있지 않은 정전협정이라도 있으니 다행이긴 하다. 그러나 정전협정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정전협정 제4조 60항에서 쌍방은 `삼개월 내에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반도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하기로 약속했었다. 이는 정전협정 체결 당시부터 쌍방이 정전협정 자체가 불안정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3개월이 지나 50년이 넘고 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둘째, 정전협정의 주요 내용 중에서 `전쟁포로` 문제는 당시 해결되었고, 1990년대 들어 `군사정전위원회`는 마비되었고 `중립국감독위원회`도 해당국의 철수로 무효화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군사분계선`마저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간의 활발한 교류협력과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로 관통되면서 성격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무엇보다 최근 북미간의 군사적 긴장은 정전협정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북미간의 대립과 갈등은 군사분계선 상의 무력충돌로 인한 것이 아니라, `악의 축`, `테러지원국`, `불량국가`, `핵 선제공격 대상국` 등 일방주의적 규정과 핵전쟁 위협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전혀 새로운 차원의 협정이나 조약으로 대체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됨은 물론이다. 북미간에는 이미 평화협정, 평화보장체계 그리고 불가침조약 등이 거론돼 왔다. 정전협정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앞으로는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기괴한 풍경들이 연출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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