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배후’의 저자 서현우가 정형근 의원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

 
 정형근 의원님께!

 노심초사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국정에 전념하시는 귀하의 노고에 위로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1987년 11월 29일에 발생한 KE858기 사건을 소재로 하여, 얼마 전에 출간된 소설 ‘배후’의 저자 서현우(본명 서현필)입니다.
 
 저의 소설 ‘배후’의 내용은 귀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위 KE858기 사건이 북한의 공작원 김현희에 의한 테러사건이 아니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한 조작사건이라는 시각으로 집필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7월 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귀하가 국가정보원장을 상대로 저의 소설 ‘배후’에 대한 대응책을 질의했으며,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이 ‘배후’의 내용과 작가의 의도를 면밀히 검토하여 필요시 법적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답변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습니다.
 
 이는 소설 ‘배후’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KE858기 사건의 실체를 왜곡하고 오도하여 국민들에게 혼란을 가져온다는 귀하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시 KE858기사건의 수사에 직접 관여하신 귀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이에 저는 KE858기 사건에 대한 귀하의 입장이 실제 이 사건의 실체와 다를 수 있다는 점과 또 당시 이 사건 수사의 당사자로서 귀하의 대응이 불충분하며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귀하에게 다음과 같이 공개질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점 혜랑 있으시길 바랍니다.


 1. KE858기 사건(이하 이 사건)은 사건이 발생한 1987년 11월 29일 당시부터 무려 16년이 지난 오늘까지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2001년, `KAL기 사건 진상규명을 바라는 희생자 가족회`(이하 KAL858 가족회)와 `6?15남북공동성명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를 중심으로 `김현희KAL기사건 진상규명시민대책(준)위원회`)가 결성되어 진상규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귀하께서는 아시는가요?

 2. 지난 2년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과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의 진상규명 촉구와 KAL858 가족회의 ‘대통령께 올리는 탄원서’ 그리고 ‘대통령과 국정원에 보내는 공개질의’가 있었습니다. 또 검찰에 대해 당시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의 행정정보 공개를 요구한 바, 검찰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과 공공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결정을 내렸고, 이에 민변과 KAL858 가족회는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지검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거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지난 해 9월 25일에는 KAL858 가족회 차옥정 회장 명의의 ‘87년 김현희 KAL기 사건 전면 재조사에 관한 청원서’를 국회법 제123조의 규정에 의하여 당시 귀하의 동료의원이던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과 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소개로 정식으로 국회의장에게 제출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귀하께서는 아시는가요?

 3. 저는 여기에서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열거할 의도는 없습니다. 이미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수없이 제기된 내용인 까닭입니다. 다만 지난 1998년 10월 14일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바꾸기 직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안기부 스스로 과거 안기부에 의한 몇몇 의혹사건을 제기하였는데 놀랍게도 이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재수사로까지 확대되지는 못했지만 이는 당시 안기부조차 과거 군사독재하의 안기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시 안기부의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 대해 귀하께서 아시는 바가 있는지요, 또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4. 저의 소설 ‘배후’는 서두에 ‘KAL858 가족회’ 차옥정 회장의 추천의 글이, 또 말미에 위 진상규명 노력의 일환으로 ‘KAL858 가족회’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국회청원서를 덧붙였습니다. 귀하께서 ‘배후’를 읽어보셨다면 소설의 내용보다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을 먼저 살펴 국회의원으로서, 또 당시 이 사건 수사에 관여한 귀하로서는 응당 먼저 위 국회청원서에 대한 진지한 답변에 응해야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귀하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5. 지난 7월 10일, 이 사건에 대한 수사발표내용을 추적하여 의혹을 제기한 일본인 노다 미네오(野田峯雄)의 저서인 ‘파괴공작’(?島社 刊, 1999)이 ‘김현희는 가짜다’(두리출판사 刊)라는 제목의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철저한 현장취재를 통해 집필된 ‘파괴공작(김현희는 가짜다)’에서 볼 때, 이 사건 수사발표내용은 저의 소설 ‘배후’보다도 더 소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논란이 된 ‘파괴공작’을 귀하는 당연히 아시리라 생각하는데 ‘파괴공작’에서 제기된 내용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6. 이 사건으로 북한은 미국에 의해 ‘테러 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 ‘악의 축’으로 낙인찍힌 결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 ‘파괴공작’의 저자 노다 미네오(野田峯雄)씨가 말한 바와 같이 ‘지난 십수 년간 한반도와 관련된 일본정부의 언동은 거의 김현희의 진술 한마디 한마디에 좌우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동북아의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낳았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사건에 대해 제기된 의혹을 그동안 정부당국과 국회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귀하 또한 그 점에서는 철저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7. 저는 귀하께서 그동안 관련 단체에 의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제기되어 온 이 사건에 대한 의혹과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귀하를 포함한 정부당국은 이러한 의혹제기와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 지금까지 거부와 묵살로 일관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반응이야말로 국민의 정당한 알 권리에 대한 침해이자 피해당사자와 국민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8. 귀하는 당시 이 사건 수사의 책임선상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귀하야말로 그동안 제기되어 온 의혹을 해소해야 할 분명한 의무와 책임, 또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당국과 마찬가지로 귀하 역시 그동안 제기되어온 무수한 의혹에 대해 의무와 책임, 그리고 권리를 방기해 왔습니다. 귀하와 정부당국의 이러한 반응이야말로 이 사건이 당시 안기부의 자작극이라는 내용의 소설 ‘배후’를 낳은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귀하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9. 저는 소설 ‘배후’의 내용에 대해 이제 와서 귀하께서 시비를 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무려 16년 동안 이러한 의혹제기와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하여 의혹을 키운데 일조해 온 귀하께서 지금에 와서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정보위에서 유독 ‘배후’에 대해서 대응책을 촉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0. 저는 이 사건의 수사주체가 ‘당시 안기부’라는 이유에서 일차적으로 수사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국민들에 각인되어 있는 과거 군사독재하의 안기부의 위상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인간성을 말살하는 온갖 고문과 조작으로 간첩을 양산하던 곳입니다. 국민의 정부하에서 밝혀진 내용만 봐도 멀리는 최종길 교수를 고문으로 살해한 곳이고 인혁당 사건을 일으켜 증거조작을 통해 8명의 무고한 인명을 대법원 확정판결이 끝나자마자 단 하루 만에 형장의 이슬로 만든 곳입니다. 또 멀쩡한 국민들에게 금강산 댐 문제를 들고 나와 대북적대감의 고취와 함께 군사독재를 합리화하면서 초등학생 쌈지 돈까지 긁어모아 착복한 사기집단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살해된 수지 킴에게 간첩오명을 뒤집어씌우고 살인을 자백한 그녀의 남편 윤태식에게는 오히려 벤처사업가로서 명성을 얻게 해준 곳이 바로 안기부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볼 때 저는 이 사건의 주체가 ‘당시 안기부’였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이 사건의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11. 저는 지금까지의 의혹제기와 진상규명 노력이 철저히 회피되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발표는 이미 그 사실성이 상실되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이 사건에 대한 당국과 관련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이 사건과 북한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라고 단정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12. 귀하께서는 당시 안기부의 책임 있는 지위에서 이 사건 수사에 관여했으며, 이후 제1차장을 역임했습니다. 제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 전 국회에서 귀하가 제기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부자연스럽게 느끼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귀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귀하야말로 이 사건 관련자로서 KE858 희생자 가족들의 인권을 누구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귀하께 이 점을 환기시키려 이 공개질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귀하께서 이 사건에 눈을 돌려 제기된 의혹의 해소에 앞장서 주시길 기대해봅니다. 귀하께서 이 사건 재조사에 발 벗고 나설 의향은 없는가요?

 이에 대한 귀하의 진지한 답변을 요구합니다.
 
  2003. 7. 22
  소설 ‘배후’의 작가 서현우(본명 서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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