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 환(통일뉴스 편집국장)




북한이 새로워지고 있다. 이것을 변화라 부를 수도 있고 혁신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편의상 `새로운 흐름`이라 하자. 이 새로운 흐름의 중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 있다고 한다. 새해 들어 이러한 흐름의 조짐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흐름의 첫 징후가 나타났다. 북한은 매년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한다. 신년사를 통해 지난 1년을 `총화`하고 앞으로의 1년을 `전망`한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있어 신년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텍스트다. 북한의 공식적 입장이 신년사를 통해 모처럼 공개화 되기 때문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새 세기, 즉 21세기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제목도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기세로 새 세기의 진격로를 열어 나가자`이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몇 가지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사상관점과 사고방식, 투쟁기풍과 일본새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이룩해 나가는 것은 우리 앞에 나선 선차적인 과업이다.` `21세기는 거창한 전변의 세기, 창조의 세기이다.` `새 세기는 혁신적인 안목과 기발한 착상, 진취적인 사업기풍을 요구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분위기에 맞게...`

둘째, 노동신문을 비롯한 방송 등에서, 신년사에서 제시된 새 세기와 관련한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노동신문 4일자엔 `21세기는 거창한 전변의 세기, 창조의 세기이다`라는 신년사의 한 대목을 제목으로 뽑아, 이와 관련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원문 그대로 싣고 있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몇 가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1960년대와 다르므로 지난날의 낡은 일본새로 일하여서는 안됩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무슨 일이나 손색이 없게 하여야 합니다.` `지난 시기에 마련한 터전에서 그 모양대로 살아 나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그 면모를 끊임없이 일신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제는 2000년대에 들어선 것만큼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보고 풀어 나가야 합니다.`

몇 개의 문장인데도 `새 세기`, `혁신`, `새로운 환경`, `새로운 분위기`, `21세기`, `새 시대`, `전변`, `창조`, `일신`, `2000년대`, `새로운 관점`, `새로운 높이` 등의 용어가 난무한다. 요약하면 `21세기, 새 시대를 맞아 모든 면에서 새로워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두고 통일의 한 축인 남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남한 언론은 북한의 이러한 흐름을 두고 `신사고운동`이라 규정하고 있다. 마치 구 소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나 남한의 `새마을운동`, `제2건국운동`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일부에선 `우리에게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며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하던 북한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이나 추측은 속단이고 억측일 공산이 크다. 분명 북한이 `21세기에는 새로워져야 한다`는 내용의 표현을 쓰고는 있지만, `신사고운동`이라는 식으로 공식적으로 `구호화`하고 있지 않으며 더 나아가 체제변화를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굳이 적당한 표현을 한다면 북한은 `우리식` 신사고운동, 즉 북한식 신사고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신년부터 나타난 북한의 새로운 흐름, 북한식 신사고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의미없다는 게 아니다. 구호화에 관계없이 신사고를 강조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변화이다. 문제는 그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북한은 어렵거나 중요한 시기마다 자신의 변화의지를 구호로 압축하곤 했다. 1950년대 전후복구시기 `천리마운동`이나 1990년대 중반 시기 `고난의 행군`, `선군정치`, `강성대국건설`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북한을 가리켜 구호정치의 나라라 한 적도 있다. 북한의 경우 구호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행동의 구호, 실천의 구호임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북한을 이해하고 연구함에 있어 구호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호 역시 `우리식`인 것도 분명하다. 그러기에 또한 구호를 둘러싼 해석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현실상황과 변화의지를 담은 구호를 무시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경우이다. 북한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고난의 행군`이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존심이 강한 북한이 이런 표현을 쓴다고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이고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남한의 많은 학자들은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구호화했을 때 북한이 군사정치를 한다느니 군을 당보다 우선시 한다느니 하는 견해를 내놓았다. 아직도 이런 견해가 많이 있으나 이는 터무니없는 견해이다. 선군정치란 현실적 난관을 타파하기 위해 군을 앞세우겠다는 것이지 군을 당보다 우선시 한다거나 군이 `인민`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움직일 수 없는 당 우위 국가이고 `인민`을 위한 국가이다.

강성(强盛)대국건설이라는 노선이 나왔을 때도 남한의 일부 학자는 강성(强性)대국으로 잘못 알고, 북한이 군을 중심으로 한 강경한 군사독재를 추구할 것이라는 웃지 못할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강성대국건설이란 남한의 선거시기 어느 후보자의 선거공약에 나올 법한 부강한 국가건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북한은 전당 전군 전민이 합심하여 구호대로 움직이는 것에 비해, 남한은 구호와 국민이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에 의해 정식화된 구호를 해석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은데 하물며 이제 막 나온 `새로운 흐름`을 이해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북한의 구호는 코드가 아니다. 최근 새로운 흐름 역시 단순한 패션이 아니다. 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의 새로운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의 길을 튼 `페리 보고서`의 가치는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보다도 미국의 대북 시각에 결정적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거의 1년에 걸쳐 북한을 들락거리고 북한 전문가들을 두루 만난 페리 전 북한 조정관의 결론적 대북관은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었다.

북한이 새로워지고 있다. 북한의 새로운 흐름을 남한은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이러한 흐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사시(斜視)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식` 신사고로 보면 된다. 21세기를 맞아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변하고 새로워지려고 하듯, 북한도 `우리식`으로 새로워지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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