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오(명덕고등학교 교사)


기말고사 후 시간의 여유가 생겨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라는 책을 가지고 수업을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백석의 「酒幕」이란 시를 칠판에 써 놓았다.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이 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 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앞니가 뻐드러진 고기를 잘 잡는 주막집 아들아이, 해장국 끓는 냄새, 지짐게질 냄새가 자욱한 주막집 부엌,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장꾼들, 울파주 밖의 질척거리는 길과 말똥 냄새...서도의 장날 풍경을 언어로 그린 한폭의 풍속화다. 한번 감상해 보라고 하고서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뛰어놀고 있다. 햇빛이 쨍쨍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몸은 땀에 뒤범벅이 되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뛰고 저리뛰고 야단인 아이들의 얼굴은 행복한 모습이다. 이 역시 행복이 가득한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현실에 대하여 자위하면서 비켜서 있을 때 우리의 뼈아픈 분단의 현실과 민족의 갈등을 온몸의 사랑으로 노래한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을 칠판에 썼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해방 후 분단과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일어났던 동족 상잔의 비극, 그리고 현재까지도 전쟁을 쉬고 있는 휴전선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시를 다시 한번 읽어 주니 조금씩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면 즉각 그에 대하여 슬기롭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르면 아마도 올해 안에 일어날 수도 있다. 미국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 북한이 현재 진행중인 핵계획은 핵폭탄이 미국내 도시에서 터질 수 있는 임박한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 6개월전만 해도 통제가 가능했다. 북한이 재처리에 나서면 우리는 전쟁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몇 달전부터 생각해 왔다"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페리 보고서 작성자인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미국은 고립과 봉쇄 정책을 쓰다가 어느 순간에 이라크를 침공했던 것처럼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의 교훈을 통해 상용무기로는 미국의 공격을 막을 수 없기에 핵 개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계속 우리를 고립시키고 압살하려 할 경우 핵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이 우리와 관계를 정상화하고 불가침을 담보한다면 이는 분명 협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핵은 북한과 미국간 문제다. 주변국들이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주요 당사자는 미국이다."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

한치의 양보나 타협은 어디 있냐는 듯이 거침없이 달리는 두 기관차의 충돌이 떠올라 답답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나름대로 협상의 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초강대국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사실에 사뭇 감동하면서 우리 민족의 희망찬 미래를 내다본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개인적인 모습속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칠판에 써 보았다.
그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으려면 민족의 아픔인 통일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

Ⅴ.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그 통일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야 하는 거야.
우리 그 방해물을 껍데기라고 하고 한번 힘차게 시를 읽어보자.
열심히 시를 읽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모오든 쇠붙이가 없어지고 아사달 아사녀가 함께 만날 그날이 꿈이 아님을
나도 아이들과 함께 힘차게 읽는다.
껍데기는 가라~
다시 한번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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