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오늘 한반도 주위를 둘러싼 정세를 생각하면 한 마디로 답답하고 우울하다. 6·15 공동선언 3주년이 지났지만 남북의 화해와 통일의 기운은 초기의 열광적 분위기에 비해서 미약하기만 하다. 남북간 경의선·동해선의 연결, 이산 가족 만남, 대구유니버시아드의 북한 선수·응원단 참가, 장관급 회담 등등 지속적 만남과 교류의 확대가 있지만, 언론도 국민들도 시큰둥하다.

사태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미국 부시 정권의 막가파식 대북 강경책과 봉쇄정책에 기인한다. `악의 축`이니 "선 핵포기없이 지원없다"는 일방주의적 압박은 전례없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으며, 전쟁의 위기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말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음 달 8월에는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대북 경수로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한국도 이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다.

일본은 총련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확대하고 북한 선박에 대한 조사를 할 태세를 보임으로써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바야흐로 미국의 의도대로 대북 봉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만남이나 교류의 확대는 맥빠진 해프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서 민족독립을 기념하는 3·1절에 열린 보수주의자들의 집회는 피로서 맺은 한미 혈맹을 강조하며 "I love U. S. Army"를 외치는 등 더욱 숨이 막히게 한다. 한반도의 긴장과 적대,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미국만 있으면 대한민국은 지켜지고 전쟁의 참화나 경제의 파괴가 없을 것이라는 주술에 걸려있는 듯하다.

아니면 전쟁이 나면 남한은 아무런 피해없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타도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것인가? 최소한의 자주의식마저 마비된 이들이 우리 사회 체제 유지를 주장하는 보수세력이라는 점이 더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미국과 보수주의자만이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대미 자주외교와 남북의 화해를 지지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나 맥없이 부시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었다.

노 대통령은 동네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간 한신의 고사(故事)를 변명으로 인용했지만, 북한의 체제를 비난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평화적 협상만이 아닌 `추가적 조치`마저 합의한 상황과 한신의 고사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아리숭하기만 하다. 주한미군의 재배치가 유예되었다고 자랑했지만 미 국방장관은 계속 추진을 언명하고, 한편으로 미국 군사장비 구입을 위한 국방비는 올라가는 기이한 현실이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과 선군정치로 인해 미국의 공격에 `금성철벽`으로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곧 미국이 무릎을 꿇고 북·미간의 새로운 협상으로 마무리지을 것이라는 일부 운동권의 주장 역시 쓴웃음이 나게 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역시 많은 허점이 있으며 당장 전쟁을 일으키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 문제를 키워가면서 차근차근 대북 봉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당연히 가까운 시일내에 미국이 북한에게 무릎을 꿇는 것과 거리가 있는 셈이다.

또한 북한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에 찬 이 주장이야말로 남한의 독자적 평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비주체적 입장이기도 하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북한의 화려한 활극만 보아주고 정의의 사나이의 승리에 박수를 쳐주면 되니까 말이다.
 
답답함과 우울함을 추스리게 하는 것은 그래도 믿음과 희망이다. 작년의 광화문 촛불집회는 아름다웠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시작되던 여중생 추모의 움직임은 네티즌으로부터 발기되어 거대한 불꽃 시위로 이어졌으며, 보수 한나라당의 후보인 이회창까지 소파 개정을 운운할 정도로까지 이르렀다.

이 움직임은 인터넷의 쌍방향 소통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었으며, 젊은 세대의 자발성, 주체성의 특징들도 드러내었다. 누가 억지로 기획하지도 않았건만 여러 흐름들이 하나로 모여들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민족해방의 기념월인 8월이 곧 온다. 다시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행진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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