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는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와 핵고폭실험이라는 대형 이슈가 터져나와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날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사뭇 색다른 질문 하나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돼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

보도자료는 "오후에 속개된 회의에서 정형근 의원은 KAL기 사건 조작설을 제기한 소설 「배후」에 대한 대응책과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을 질의하였으며 이에 대해 국정원은 소설 「배후」의 내용과 작가의 의도를 면밀히 검토하여 필요시 법적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며..."라는 짤막한 내용이다.

국가안보를 다루는 국회 정보위에서 정보 최고 책임자인 국정원장을 상대로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나올 법한 내용으로는 다소 의아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간단치 만은 않은 내용들이 잠복해 있다.

우리에게는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87년 KAL 858기 사건.
115명의 희생자와 비행기가 아무런 흔적없이 사라져 사건 당시부터 숱한 의혹이 꼬리를 물었으나 당시 안기부의 발표대로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주범 김현희는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특별사면을 받고 세인의 눈길에서 멀어졌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도 이 사건은 수면하에 남겨졌으며, 유일하게 피해 가족들이 `KAL858 가족회`를 구성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고 있었다.

2001년 12월 7일 `김현희 KAL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준)`가 첫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진상규명 활동에 착수하면서 다시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참여정부 들어 작가 서현우 씨가 장편소설 `배후` 1,2권을 발표한 것이다.

정형근 의원측은 "모 신문 광고를 보고 책의 출간을 알았다"며 "김현희가, 북한에서 폭파한 것이 아니고 88올림픽을 위해 조작한 것 같다는 내용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 암만 소설이라지만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진실을 호도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정형근 의원은 당시 안기부의 수사지휘선상에 있었던 사실상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정형근 의원실 관계자도 "그럴 것"이라고 수긍했다.

당사자이기도 한 정형근 의원이 KAL 858기 사건의 진실이 호도되고 있는데 대해 국정원측에 `대응책`을 주문했으며, 국정원장은 "내용과 작가의 의도를 면밀히 검토하여 필요시 법적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사실상 의례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답변만을 놓고 보면 조사를 해서 법적 처리까지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합법 출판된 특정 소설을 `내용`과 `작가의 의도`로 분리해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라면 몰라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다가 소설을 이유로 작가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한다는 것은 더구나 무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작가 서현우 씨는 "소설에 대해 정 의원이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며 "진상규명에 대해 국회 청원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다가 왜 소설에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서현우 씨는 "국회가 의혹을 해명하는 게 우선이고 확고한 신념에서 썼기 때문에 의혹이 해소된다면 사과뿐 아니라 사법처리라도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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