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균(서원대 연구교수)


한반도는 2002년 겨울부터 시작된 `북핵 문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북한`과 `핵무기 제조`라는 두 단어가 서로 연결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미국과 북한의 태도이다. 미국이나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킬 능력도 없는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 그렇고,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적대시하는 나라들을 위험 국가로 분류해 놓고 테러 재발 방지란 명목으로 그 위험 국가들을 차례차례 응징하겠다는 미국의 태도가 그렇다.

분명 북한은 미국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미국에 가장 공격적인 몇몇 나라들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다. 그러나 북한은 테러를 일으킬 힘도 없고 전쟁을 일으킬 능력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하여 혹시 우발적으로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우발적으로 사건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우발적인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뒷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북한 지도부도 우발적인 행동의 결과는 자신 체제의 붕괴와 동시에 자신들의 공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한을 계속 몰아붙이고 있다. 그 수위는 북한의 대 미국 테러에 대한 감시를 훨씬 넘어서 있다. 미국 부시 정부는 이번 기회에 위험 국가들을 모두 소탕 작전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다시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미국 패권주의를 재건하고 국내 결속을 다지겠다는 이중의 의도가 들어있음을 엿볼 수도 있다.

북핵 문제가 점점 더 불거지고 있는 것은 미국의 자극이 커지는 것에 따라 북한의 반응도 그에 따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의 발단은 작년 겨울에 예멘에 미사일을 수출하려던 북한 선박이 나포되면서 시작된다. 그 사실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북한은 명실공히 위험국가로 규정되었다. 그것을 빌미로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동안 북한에 제공해왔던 중유 50만 톤의 공급을 중단했다. 북한은 미국의 행동에 정면 대결하여 바로 핵개발의 의지를 전 세계에 밝혔다.

이로 김대중 정부가 펼쳤던 햇볕 정책은 물거품이 되었다. 따뜻한 양지로 걸어 나오는 중이라고 생각했던 북한이 갑자기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기 위해 어두컴컴한 지하로 들어가 버렸다. 그 이후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는 무성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고 있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북한에게 불리한 것들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경제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설상가상으로 효순, 미선 양이 미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고 그 사고에 대한 미군 측의 대응은 한국인들의 판단을 혼돈스럽게 했다. 미군이 바로 정식 사과와 책임자 처벌, 정당한 보상을 했더라면 두 학생의 죽음만이 안타까운 일로 남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그 사건을 해결하는 자세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촛불 시위를 벌였다. 그 시위의 배경에는 한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에 대한 질문이 들어 있었고 미군 주둔의 이유에 대해 질문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다시 미국을 자극했다. 미국은 시위 자체만 문제로 삼았고 시위는 미국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한· 미 관계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동등한 주권 국가를 요구하는 한국인들은 미국의 태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고 그것은 다시 미국을 자극하였다.

지금까지의 북핵 문제에 대한 기술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 등장한 행위 주체에서 한국 정부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북한, 한국 시민들만이 행위 주체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정부는 한반도가 위기로 치닫고 있음에도 한 나라를 대표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햇볕 정책과 북핵 개발 사이에서, 미국과 시위대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그 사이 한반도의 위기는 점차 고조되고 있고 북핵 문제는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동등한 주권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주장과 위험 국가를 지구상에서 제거하고자 하는 미국, 그리고 각종 경제 제재 조치와 외교 고립에서도 유일한 생존의 길은 핵무기 개발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북한, 이 삼자는 서로를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상호 인정이나 상호 불가침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북핵 문제, 한·미 관계의 문제는 각각 서로 다른 두 차원을 교차시키면서 보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하나는 힘의 역학 관계, 공정성의 문제가 그것이다. 힘으로 해결하면 공정성의 문제가 남고 공정성만을 주장하면 힘의 우열의 문제가 남는다.

제임스 스튜어트 밀은 그의 자유론에서 누구도 절대 무오류성을 갖지 못하고 따라서 누구도 사적 재판권을 사용할 수 없음을 통찰력 있게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자신만이 절대 무오류성을 갖고 있고 따라서 자신은 사적 재판권을 행사하여도 무방하다는 행위 주체들이다.

힘은 결코 절대 무오류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힘은 결코 공정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사적 재판권의 행사는 힘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방어의 마지막 수단도 힘이다. 핵무기에 의존하려는 것이나 막강한 군사·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해보려는 노력들을 하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보인다. 한국 정부의 정확한 입장과 한국 정부의 정확한 행동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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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연세대 사회학과 학사, 석사,
독일 마부룩 대학 사회학 박사.
현재 서원대 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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