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연합뉴스 기자)
최근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위기론이 새롭고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1994년 `제1차 북핵위기`에 이은 `제2차 북핵위기`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 위기론의 본질은 미국의 대북 침공 여부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은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여론전`에다 대북 공중.해상봉쇄를 겨냥한 `봉쇄전`, 그리고 최근 `핵 기폭실험장 발견`이라는 `심리전` 차원 등 전방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미국은 북한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에 대해 강진욱 연합뉴스 기자의 `불가 입장`과 임영태 민족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의 `만에 하나 입장`을 동시에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판단과 견해를 부탁한다. - 편집자 주
미국의 대북 정밀폭격론
"미국이 올해 가을이나 늦어도 내년 영변 등을 정밀폭격한다는데..."
내 글을 진지하게 읽는 이가 얼마나 될까마는 4-5월중 `민중의소리`(www.voiceofpeople.org) 방송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취지의 글을 몇 차례 쓰고 나서 고민이 많았다. 통일운동진영 일각에서는 불만의 표시도 있었다.
미국의 침략적 본성을 왜 감싸주느냐는 것. 아닌게 아니라 부시네들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시때없이 대북제재와 `해상-공중봉쇄`, 정밀타격론을 떠벌리며 `미국의 패권`을 찬양하는 마당에 `미국의 대북침공은 없다`는 취지의 글은 핀트가 조금 어긋나는 듯도 했다.
또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제공한 5억 달러의 스무 배에 달하는 110억달러 규모의 주한미군 및 남한 무력증강계획(5.31)이 발표되고 (내 집 차지한 무뢰배에게 가산을 바쳐가며 살인무기를 들려주고 배고픈 형제에게 몇 푼 건넨 것을 이적행위라며 발광하는 팔푼이의 나라!) 남한 정부의 애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재배치가 본격 추진되면서 이것은 미국의 공격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난무하면서 미국의 대북공격 구상은 이미 구상을 넘어 집행단계로 넘어가는 듯 했다.
긴가민가 하는 사이 7월1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CIA(미 중앙정보국) 자료를 인용했다며 38선 부근의 `영덕리`라는 곳에 새로운 핵 시설이 있다고 지목했고 같은 날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는 `대표의 담화`를 발표해 미국의 전쟁으로 남한 주민이 참화를 겪는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정말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해 한반도를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인가? 북한의 배와 비행기를 봉쇄함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촉발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서방국들은 물론 파키스탄까지 미국에 굴복해 대북 관계를 단절하려 한다면 북한은 완전히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북한은 참말로 미국의 침공 구상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보고 본격적인 전쟁 대비 태세에 들어간 것인가?
아니다. 미국은 대북 제재나 봉쇄를 위해 일과성 쇼를 펼칠 수는 있다. `부시의 탑건 쇼`나 `린치 일병 구하기`와 같은 희한하기 짝이 없는 3류 코미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과의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 선박과 비행기의 항행을 봉쇄하지 못한다. 2002년 12월 9일 예멘으로 가던 북한 배 `서산호`를 일시 점거했다 황망히 풀어주고 외교적 망신을 자초하는 사건 정도는 한 두 번쯤 재연될지 모르지만 봉쇄는 없다.
`영덕리`부터 잠깐 설명하자. 황해도 어디라고 했는데 황해도에는 이런 지명이 없다. CIA가 지도 한 장 펴놓고 제 멋대로 찍은 것이다. 한겨레신문 2일자 보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이 `영덕리` 관련 정보(?)를 이미 몇 달 전 남한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모름지기 미국은 몇 달 전 이 정보를 건네주고 한국 정보기관 또는 정부 당국이 1998년 금창리 언론플레이처럼 멋진 연기를 해 주기를 바랬던 것으로 짐작된다.
몇 달간 소식이 없자 미 정보당국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슬그머니 흘린 것이지만 상황은 미국의 의도대로만 가지 않는 듯하다. 이미 미국의 `핵 난동`을 경험한 덕분에 `영덕리 쇼`는 그 쇼크가 거의 없다. 벌써부터 `금창리 허풍`을 상기하며 조소하는 이들이 많다.
다시 돌아가,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을 벌일 수 있는가? 정밀폭격론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역시 핀트가 조금 어긋나는 듯 하지만 나의 주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미 오래 전 대북 침공 구상을 포기했다. 미국의 대북침공은 불가하다.
미국은 대북침공 구상을 포기한지 오래다
언제 포기했는가. 미국의 북침 계획이 집행 단계에 들어갔던 때는 모름지기 1993년 3월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했던 때가 마지막이었고 이듬해 10월 역사적인 북-미 제네바합의로 미국의 북침 구상은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94년 6월에도 영변 폭격을 준비했고 1998년에도 `금창리 위기`와 `미사일 위기`를 부추기며 소위 5027-98 작전계획에 따라 북침을 준비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1994년이나 1998년의 경우 모두 미국이 일방적으로 위기를 조장하다 뜻대로 안되자 미국 스스로의 극적 타결을 연출함으로써 막을 내렸을 뿐 미국이 실제로 북침을 감행하려 했다는 징후는 없다.
북한은 언제나 `전쟁에는 전면전으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맞서는 전술을 구사해 왔다.(미국은 이를 벼랑끝전술(brinksmanship)이라고 주장하지만 50년간 북한을 철저히 봉쇄해왔고 `6.11 공동성명`(93)과 `제네바합의`(94) 및 `공동코뮈니케`(2000) 등 역사적 합의들을 뭉개버리고 지금도 북한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그들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한 때 미국의 동족멸살 흉계에 덩달아 춤춰온 남측이 입에 담을 말은 더더욱 아니다.)
북한의 이런 전술에 비춰볼 때 북측이 1993년 3월 이후 지금까지 10년간 한 번도 최고사령관 명령을 발동(준전시상태 선포)한 예가 없었다는 사실은 미국이 조장하는 위기국면이 지나치게 과장됐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북한은 미국의 북침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위기가 지나가기를 바랬다는 말이 된다.
북한이 어떤 나라인가? 적의 침략 움직임을 그냥 지켜보며 태연자약하거나 박두한 위기 앞에서 주눅드는 이들이 아니다. 지난 3월2일 영공에서 180km 떨어진 곳까지 미그기를 보내 미 정찰기를 내쫓지 않았는가?
1994년 위기와 관련해 당시 국방부 국제안보정책 차관보로 일하면서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의 지시로 북한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는 `제한 공격 시나리오`를 작성했다는 애쉬튼 카터(현재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MBC와의 대담에서 "우리는 공격에 대한 계획을 세웠을 뿐이고,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공격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런 수단까지 동원되지 않기를 모두 희망했었다. 그리고 외교적 해결 방안을 찾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쓸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왜 공격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었느냐는 질문에는 "계획은 있었지만, 제네바 기본합의라는 외교적 해결방안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일성 북한 주석에 의해 제안됐고, 한-미-일의 정상들이 모두 동의했다. 좋은 결과였다"라고 대답했다.(한겨레신문 2003. 6. 27)
계획은 있었지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지 못했고 또 계획이 실행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제네바합의라는 외교적 해결방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모든 해답이 다 있지 않은가? 영변 폭격 구상은 한낱 몇몇 인사들의 구상 또는 몽상일 뿐이었고 미국이 조장한 소위 1차 한반도 핵 위기의 해결과정이 시종 북한의 외교적 해법에 따라 진행됐다는 말이다.
제네바합의는 1994년 10월 타결됐지만 이미 그 초안은 이미 1단계 북-미 고위급회담이 끝나는 시점에 나왔고 1993년 10월쯤에는 거의 완성됐다. 미국은 북한의 강석주 제1부상이 1차 고위급회담을 끝내면서 제시한 김일성 주석의 `새롭고 대담한 제안`을 받아들고 이를 수용할까 말까를 고민하며 한쪽에서 위기감을 조장했지만 결국 북측이 제시한 로드맵(road map)에 따라 미 대통령의 이름으로 각서까지 써가며 제네바합의에 서명한 것이다.
결국 1993년 말부터 1994년 초까지 고조됐던 전쟁위기는 아무리 크게 봐야 북한이 추동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미국이 끌려가는 과정에서 불거진 반동 극렬 세력의 `불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민중의소리방송 글 <북한은 추동자(mover), 미국은 추종자(follower)> 2003.4.23 참조)
이쯤 되면 1994년에는 카터의 평양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전쟁을 개시하는 가운데 카터씨가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개인 자격으로`, `CNN 기자를 동반해`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미국 정부는 1993년 3월 그네들이 조작해 온 핵 위기 국면을 타개할 방법이 없자 슬그머니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보내 `극적인 타결`을 연출해 낸 것이다.
1998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1년 9.11 사건이 터지고 북한에 대한 고강도 압박에 나선 것과 마찬가지로 1998년 8월7일 아프리카 미 대사관 동시 폭파 사건이 터지고 열흘 뒤 뉴욕타임스를 통해 금창리 지하시설 위기를 퍼뜨린 것은 그런대로 중동과 한반도를 겨냥한 두 개 전쟁 동시 승리 전략의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또 그 해 상반기 미국은 영변 폭격 등을 가정한 핵 폭탄 투하 훈련을 실시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열흘 여만에 실시된 소위 `대포동 1호` 시험발사(1998.8.31)로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 송두리째 바뀌는 과정을 상기하면 `작계 5027-98`을 앞세운 미국의 북침 전쟁 준비설을 액면 그대로 믿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북한은 `인공지구위성 발사` 계획을 이미 한 달 여 전에 미국에 정식으로 통보했고 8월7일 발사장으로 로켓추진체를 이동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후 시작된 금창리 위기는 차라리 북한의 새로운 무력 시위 계획에 당황한 미국의 맞불로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
미국이 그 해 실제로 북침 전쟁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다면 `대포동 발사`보다 더 좋은 빌미가 어디 있는가? 시험발사 즉시 38선을 넘어 치고 들어갔어야 하지 않나? 이미 상반기 중 핵폭탄 투하 훈련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대포동 1호 이후 미국의 행보는 그야말로 갈팡질팡 그 자체였다. 한편에서는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하네 금창리를 사찰하네 하며 설치면서도 그네들의 소기 목적은 어느 것 하나 달성되지 못했다.
미국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에 때맞춰 위기를 조장했듯이 김대중 정부 출범에 때맞춰 또 한 차례 위기를 조장했지만 정작 북한 침공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본격화했고 `오사마 빈 라덴의 국제테러`를 빌미로 하는 새로운 세기-새로운 전쟁 구상을 준비하는 때였다. 북한과 한 판 전쟁을 벌일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 쇼(1998.6.16)가 펼쳐지고 금강산관광선이 첫 출항한(1998.11.18)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상징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미국의 대한반도전략 변화의 한 축이었다.
북한과 이라크를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벌여 승리한다는 미국의 소위 `윈-윈(Win-Win) 전략`은 이미 이때부터 그 효용성을 상실한 채 이라크를 시작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 전역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1999-2000년은 미국의 중동전쟁 구상이 구체화되면서 동시에 페리보고서를 통해 한반도 전쟁 구상을 포기하고 서서히 북-미 평화프로세스에 편승하는 시기였다.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및 국제테러에 관한 북-미 공동성명(2000.10.6)이나 북-미 공동코뮈니케(2000.10.12) 등 `한반도의 봄`은 이렇게 도래한 것이었다.
9.11 이후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 변화?
부시는 클린턴과 다르다? 부시네들이, 또는 소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라는 자들이 시시때때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소위 `9.11 사건`이 터지면서 이 논리는 거의 명제가 되다시피 했다. 과거 미국은 전쟁을 억제(deter)하는데 주력했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선제공격(pre-emption)을 앞세우는 양상으로 `완-전-히-바-뀌-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을 무색케 하는 부시 행정부의 사악한 국가이성(raison d`etat)도 대북침공은 선택 가능한 정책대안이 아니다. 북한의 대항력과 미국의 전략 변화 두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선 미국의 선제공격전략은 대항력이 없는 나라에만 적용된다. 아프가니스탄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다. 부시 행정부 1기 때인 파나마 침공(1989)과 클린턴 정부 때인 아이티 침공(1994) 및 유고 침공(1999)이 그랬다.
북한은 어떤가? 왜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못할까? 전쟁을 시작할 빌미를 찾자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왜 여태 38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가? 이유는 단 하나. 북한은 이미 충분한 전쟁억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가들 역시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핵무기는 차치하고라도 주한미군 관계자나 미 국방부 패들이 들먹이는 북한 장사정포나 탄도미사일의 가공할 위력은 단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팔아먹기 위해 미국이 억지로 꾸며낸 것만은 아니다. 북한의 군사력이 미국의 전쟁 도발을 충분히 억제하고 있다면 미 호전세력(소위 매파)의 북한 폭격론은 한낱 허풍이다. 차라리 푸념이다.
물론 미 군부 또는 이들을 배후조정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자본가들은 북한의 전쟁억제력을 평가절하하면서 전쟁구상을 되살릴 수도 있고 북한 역시 이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력(戰力)을 아무리 `보수적으로`(conservatively) 평가해도 북한의 군사력은 미국의 전쟁 도발 기준인 `일방적 승리` 선을 훨씬 넘는다.
미국의 무력이 북한의 공수 전력을 100% 압도하지 못하는 한 미국의 북한 침공은 불가능하다. 미 전투폭격기들이 북한의 상공을 빈틈없이 뒤덮고 북한 전역에 융단폭격을 퍼부을 수는 있겠지만 북한의 대항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미 군산복합체가 미 본토를 뺑 둘러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고 외부에서 날아오는 모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저지하는 것은 가능한가? 타깃 미사일에 신호발신장치를, 요격용 미사일에는 신호감응장치를 달고 각도와 시간을 정확히 계산한 뒤 동시에 미사일을 쏘아 올려도 요격 실험은 번번히 실패한다.
미 국민들의 혈세를 탕진하는 군수업체들의 돈 놀음일 뿐 미사일 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국내 수많은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과학자들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사일 양산을 강행하는 것은 부시행정부의 자유지만 미사일방어망은 공상일 뿐이다.
다음은 미국의 `달-라-진-군-사-전-략`. 9.11 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겪었고 미국은 이 사건을 `진주만 공격`에 비유하며 `미국에 대한 전쟁`이라고 각색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기-새로운 전쟁`에 발광하고 있다. 몇몇 아니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미국은 `외부의 공격`을 감내하며 적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9.11 사건 이후로 미국의 세계전략이 바뀌었다"는 것은 명제가 그것이다. `북-미 관계`나 `안보` 또는 무슨 군사전략 따위를 운운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이 인식논리는 그러나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미국 헐리웃의 놀라운 연출에 모두들 눈이 멀어 있는 것이다.
`9.11 사건`은 미국이 `부지불식간에 당한 공격`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각본에 따라 철저한 준비 속에 조작해 낸 `통제가능한 위기`인 것이다. 미 전략가들은 오래전부터 `controllable crisis` 또는 `managable crisis`를 언급해 왔다.
또한 미국이 패권을 행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위기`를 준비해왔다는 사실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 군산복합체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의 1994년 발언은 자기충족적 예언이었고 이 예언은 9.11 사건으로 충족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지구적 규모의 변혁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당하면서도 주요한 위기이며 이를 통해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받아들일 것이다."(We are on the verge of global transformation. All we need is the right major crisis and the nations will accept the New World Order.)(통일뉴스 www.tongilnews.com <기고 : 3자회담과 한반도 및 세계정세> 참조)
미국은 그들 스스로 감당해 낼만한 정도의 위기를 조장해 놓고 이를 `가공할 공격`이라고 떠벌린 것이고 이를 빌미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점령한 것이다. 사이비 전문가들이 `9.11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 운운하며 혹세무민하는 통에 세계 대중이 `9.11 이후의 미국의 허세`를 숭배하게 되고 그 통에 부시네들은 손쉽게 지구촌 곳곳에서 패악질을 자행하고 있지만 이미 억제력을 갖춘 북한에 대한 공격은 별개이다.
북한의 군사력이 전쟁을 억제하고 있다
9.11 전후 맥락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은 이미 가공할 공격을 당했으므로 워싱턴과 뉴욕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보복타격력이 미 핵심 세력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통제 가능한 위기` 내에 국한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9.11 사건 때 세계무역센터(WTC) 건물은 내파공법(Controlled Demolition)에 의해 조용히, 주변 건물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주저앉았지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맞은 건물은 그처럼 고스란히 주저앉지 않는다. 만에 하나 핵탄두라도 실리는 날이면 착탄지점 6-8km 반경 일대가 쑥밭이 될 것이라 한다. 북한의 보복타격력은 미 핵심세력이 준비해온 `통제가능한 위기`의 몇 십 배 혹은 몇 백 배의 파괴력을 행사할 것이다.
다시 백보를 양보해, 미 군산복합체 자본가들이 자신들 극소수의 생존을 전제로 뉴욕과 워싱턴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떨어지는 상황을 용인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볼 수도 있다. 유엔의 5대 상임이사국 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이 한꺼번에 덤벼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미국이라면 북한의 미사일 몇 기(또는 몇 십 기)의 공격쯤이야 감당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첨단 첩보함을 끌어가고 걸핏하면 첩보비행기를 떨어뜨리는 등 세기를 거듭해 온갖 치욕을 안긴 숙적 북한을 지구상에서 제거할 수만 있다면, 또 그 와중에 하위동맹국 하나쯤 없어진다 해도 미국으로서는 한 번 해 볼만한 모험일 수도 있겠다. 부시네들은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도 남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북한이 철저히 궤멸되고 미국은 북한 공격에 의한 피해로부터 빠른 시일내에 회복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패권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미국은 최소한 중-러-프-독-영 등 나머지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는 2류 또는 3류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또 미국이 북한을 철저히 궤멸할 수 있을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의 패권을 직감한 북한은 곧바로 경제건설 계획을 포기하면서까지 `4대 군사노선`에 따른 군사력 증강에 착수했고 지금은 `핵 억제력 강화`을 호언하기에 이르렀다. 대형 지하시설만 8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전국이 요새화됐다. 북한 매체들은 이를 일컬어 금성철벽이라고 호언한다.
중무장 병력 외에도 노동적위대 등 민간조직이 사실상 군사편제에 들어가는 전민무장화를 실현했다. `총폭탄정신`을 한낱 `주민 괴롭히기` 쯤으로 폄하하지만 정치사상적으로 각성된 북측 주민들의 단결력은 외부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1960년대 초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평양 지하철역사를 지하 150미터까지 파들어간 것은 북한이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과의 핵전쟁에 대비해 왔음을 웅변한다.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온갖 신무기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지만 북한 역시 미국과의 전면 핵전쟁을 전제로 군사력을 키워온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한다는 가설 자체가 무리다.
세계 역사의 상수(常數)인 미국의 반인륜적 호전성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남북이 완전한 한 나라로 통합되는 그 순간까지 남북은 `대북적대-대남지배`를 두 축으로 하는 미국의 분단관리 전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나 제2의 6.25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한반도 분단전략을 극복해야
그러면 미국 정부가 부인하고 미 언론과 정보기관이 퍼뜨리는 북한 공격설은 왜, 무엇을 노린 것인가? 왜 가능하지도 않은 북침설을 퍼뜨릴까? 한반도전략상으로는 대북적대-대남지배를 통한 남북 분단체제의 영속화를 노린 고도의 심리전이다.
미국은 현재 북한 미사일과 핵무기의 위험성을 떠벌리면서 남한 주민들의 대북 적대감을 조장하고 `한반도 전쟁론`을 퍼뜨려 남한 주민들의 전쟁공포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반도 남녘을 영원히 저들의 품에 가둬두면서 남북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세계전략 차원에서 보면 현재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봉쇄를 운운하는 것은 북한을 고립시키면서 동시에 북한과 중동 국가들을 이간질하기 위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다음 타킷은 이란과 시리아이다. 미국은 이미 이들 나라들을 전복하기 위한 내부 교란 작업을 시작했다.
제임스 울시(James Woolsey) 전 CIA 국장이 지난 4월2일 "미국은 지금 4차대전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은 3차대전인 냉전 기간보다는 길지 않지만 1.2차 세계대전보다는 길어질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벌린 것은 9.11 사건을 빌미로 시작한 중동전쟁을 중앙아시아와 중동 전역으로 확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라크와 이란 또는 시리아가 다른 점은 이라크는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도 고립무원의 처지였고 외부 어느 나라의 도움도 받지 못한 반면 이란과 시리아는 북한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라크가 미국에 점령당한 이후 이란의 대북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까지는 수월했지만 이란이나 시리아부터는 북한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미국은 북한과 이란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온갖 책동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전쟁을 벌여 북한을 점령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했지만 남북의 화해협력과 통일을 방해하면서 분단체제를 영구화시키려는 미국의 기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6월14일 열린 경의선-동해선 연결식에 장관 한 사람 참석 못하고 민족의 명절인 6.15 3주년에 대통령은 골프장에 나가야 하는 이 땅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한반도 전쟁 반대`보다 `미국의 남북 이간책동 반대`, `미국의 통일 방해공작 반대`가 더 명쾌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남쪽에서는 남북화해와 통일을 막기 위해 그 근간인 6.15공동선언을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고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합의 체제를 뒤엎기 위해 `핵 난동`을 벌이는 상황에 비춰봐도 `미국에 의한 한반도 전쟁 반대`보다는 `미국의 남북 화해 방해책동 반대`, `대북 적대시정책 반대`가 더 적절하다. 남한의 미제 무기 구매에 대해서도 `전쟁 책동 반대`보다는 차라리 `미제의 남한 수탈 반대`가 더 피부에 와 닿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