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평화군축팀장)


한미 국방장관회담이 6월 27일∼2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마치 자신의 세계전략을 관철하는 본보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자국의 의도를 충실히 실현하였다. 반면 조영길 국방장관은 우리 국민과 민족의 간절한 바램인 자주와 평화의 요구를 완전히 도외시한 채 철저히 미국의 요구에 굴종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회담이라기보다는 `요구사항 접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는 어떤 내용이 합의되었고, 또 그것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군비경쟁 불러올 한미 양국의 전력증강

조영길 국방장관은 향후 4년간 110억 달러에 달하는 주한미군 전력증강이 "전쟁억제력을 향상시키고 한국안보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고, 럼스펠드 장관은 `한국의 전력증강 노력에 유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주한미군 전력증강비 110억 달러는 북한 연간 군사비 15억 달러(북한 공식발표)의 무려 7∼8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이들이 들여오는 무기는 PAC-3, 아파치 롱보우 헬기 등 첨단 공격용 무기이다.

또 한국이 미국의 압력으로 국방비를 대폭 늘려 대규모 전력증강을 하는 것도 명분이 없다. 왜냐하면 1980년을 전후하여 국방비 누계에서 남쪽이 북쪽을 추월하였으며, 현재의 연간 국방비로 보더라도 남쪽이 북쪽의 10배가 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의 군사력이 현저히 열세인 조건에서, 더욱이 자신을 향한 압박과 봉쇄 움직임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전력을 대폭 증강시키는 것에 대하여 북한으로서는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핵 문제와 관련하여 북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동시에 과도한 군비경쟁을 통해 북한체제의 붕괴를 노리는 한미 양국의 이와 같은 전력증강은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바램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미 군사임무 전환`, 주한미군 영구주둔 명분

한미 양 장관은 또 `한미 연합군사능력 발전과 연계해 한미군 간 일부 군사임무를 전환`시키기로 하였다.

여기서 `군사임무 전환`이란 주한미군은 `동북아 세력균형자` 역할을 하고 한국군은 `대북 방위` 역할을 한다는 일종의 역할분담론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의 명분으로 되었던 `북한 위협론`이 냉전해체와 남북화해로 설자리를 잃게 되자 소위 `동북아의 세력균형자`라는 새로운 명분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동북아 세력균형자` 논리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일본 군사력과 함께 중국·북한에 비해 일방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오히려 세력균형을 깨는 과잉 전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허구이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동북아 세력균형자`로서의 역할은 우리의 이해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군을 하위 군사동맹으로 확고히 편입시키고, 영구주둔을 꾀하기 위해 내놓는 주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주둔지를 우리나라가 제공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의 요구와 이익에 따라 추진되는 한미 군사임무 전환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신군사전략 관철 노린 미군 재배치

양 장관은 미군기지 재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2사단 소규모 부대 연내 한강이남 이전, 2사단 핵심부대 2단계(1단계 : 소수기지로 통합, 2단계 : 한강이남 이전) 이전, 용산기지 연내 한강이남 이전 시작 등을 합의하였다. 이와 함께 전방지역에 합동훈련장을 만들어 미국 본토에 있는 스트라이커(striker) 부대가 6개월 단위로 교대 배치하기로 하였다.

이는 미국이 해·공군 중심의 기동력과 정밀타격력을 위주로 하는 신군사전략을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것이며 한반도를 대 동북아 전진기지로서 장기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자신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선제공격 능력을 고도화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적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이 재배치되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은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 빌미, 대북 압박 합의

양 장관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했지만 북핵 제거를 위해 강력한 억제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한미정상회담에서의 `추가적 조치` 합의에 대한 충격을 잊지 않고 있는 우리로서는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군사적 조치`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번 회담 결과도 따지고 보면 공정하고 대등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미국이 요구하는 다자간 압력을 통한 북한의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 차이는 없는 것이다.

국민의 자주와 평화의 염원을 안고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처음 열린 이번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그 동안의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청산하고 호혜평등한 한미관계 수립을 위한 초석을 쌓는 회담이 되어야 마땅했다.

이를 위해서는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본질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평등하기 짝이 없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SOFA에 대한 전면적인 개폐가 합의되고, 50년 간 군사적 종속의 상징이 되고 있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기에 더욱 절실한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에 대한 계획과 일정이 논의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이에 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반면 미국은 요구하고 한국은 수용하는 회담만 있었을 뿐이다. 나아가 이번 회담에서 자주와 평화를 향한 우리 국민의 요구가 관철된 것이 단 한가지라도 있는가? 없다. 이는 한미당국자들은 그동안의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회담은 `회담`이 아니라 `요구사항 접수`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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