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국회의원/민주당)


▶ 지난 17일 44명의 여야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대북송금관련 특검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사진 제공 - 임종석 의원실]

대북송금 문제는 범죄사건이 아니다

지난 주말 주요 일간지에 실린 만평과 4컷 만화의 상당수가 3년 전 남북정상이 만나는 모습과 특검을 마주 대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현재 모습을 풍자적으로, 혹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담고 있었다.

2000년 6월 15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두 정상이 만나는 모습은 TV 화면을 통해 중계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 졸이던 많은 사람들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고속버스터미널에서도 눈물 훔치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민족에게 평화를 꿈꾸도록 한 그 벅찬 희망의 장면들이 이젠 범죄행위인양 취급되며 산산조각 나는 가슴 아픈 현실 앞에 놓여있다.

지난 2월, 특별검사 법안이 제출된 당시 주장했던 것처럼 대북송금 문제는 중대한 범죄사건이 아니었다. 분단되어 있고, 특히나 휴전상태에 놓여있는 특수한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외교과정의 문제였으며, 이 과정을 국민들이 소상히 알고 싶어한다면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있는 국회에서 먼저 논의되고 해결되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이해의 조정과 통합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권의 할 일이었다.

또한 이것은 남측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측`이라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까지 고려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특히 정상회담과 관련한 문제를 한쪽 당사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남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당사자가 먼저 만나고, 다른 어떤 주변국들보다 남북이 먼저 주도권을 쥔 예가 분단 반세기 동안 어떤 정권하에서도 없었던 일이었고,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괄목할 만한 접촉과 교류로 지난 세기의 앙금을 눈부시게 털어내는 성과까지 생각한다면 한 쪽을 일단 범죄행위의 대상으로 가정하는 `특검`의 결정은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얼마 전 국회의장은 `국회가 결의하고 대통령이 공포한 특검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입법부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특검법을 발의, 상정하고 통과시킨 곳이 국회이고, 현재의 특검을 소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국회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국회의장의 발언은 맞지 않다.

정치권 몇 차례 기회 놓쳐

▶임종석 의원은 "실정법이 남북관계를 훼손
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개정법안을
제출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사진 제공 - 임종석 의원실]
정치권은 특검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놓쳤다. 지난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북 5억불 송금 사실을 시인했고, 그 과정에 임동원 전 특보 등 청와대와 국정원도 일부 개입하여 `환전편의`를 도왔다고 인정했다. 아울러 이 돈은 정상회담의 댓가가 아니라 북한 7대 사업에 관해 현대가 30년간 독점권을 갖는데 대한 계약금 성격의 돈이었다고 밝히고, 국민들에게 미리 밝히고 상의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남북관계의 이중성과 북의 폐쇄성 때문에, 남북문제에선 불가피하게 비공개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점은 동서독의 협력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족의 역사가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결단을 고대하고 있습니다`고 호소하며 햇볕정책을 주도하고 담당했던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했음에도 특검은 강행 처리되었다.

그 이면에는 분명 당내문제와 정국주도권의 문제를 남북문제와 연계시키는 냉전주의자들의 고집이 있었다. 국회 안에서 먼저 조사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자는 주장도, 특수한 외교행위를 범죄행위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모두 묻혀 버린 채 기형적으로 국회를 장악한 야당에 의해 단독처리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기회도 있었다. 공표 전 날까지만 해도 특검에 대한 수정제안이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고, 이것을 근거로 대통령은 `상당수준의 합의가 된 것으로 믿는다`며 특검을 공표했다. 이것이 3월 15일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절대다수의 야당은 한결 느긋한 걸음을 시작했다. 특검이 공표 된 날부터 공공연히 `우리가 아쉬울 것이 없다`고 하며 협상을 지연시켰다. 급기야 마지막 기회였던 4월 16일, 야당은 `지난 3월에도 우리는 아무 합의도 한 적이 없다. 단지 협의해 보자고 했던 것`이라며 끝내 특검을 강행시키고 말았다.

이른바 `남북정상회담관련 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특별검사의 활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준비기간 20일, 수사기간 70일의 시간이 이제 곧 종료된다.

특검제는 최고 가치인 정상회담을 `특별검사`라는 한 개인에게 맡겨 버리는 꼴

특검 기간동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3월 15일 특검 공표 직후 3월 말로 예정되었던 남북경협제도실무회의와 해운협력실무접촉이 차례로 무산되었고 경의선, 동해선 연결식 연기에 이어 참여정부의 첫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남북장관급 회담도 연기되고 말았으며, 심지어 군사정전위원회 연락관 전화마저 불통시킴으로서 북은 자신들의 유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물론 대통령의 미국방문 이후 이 관계는 차례로 복원되지만 남북관계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사람 누구나, 특검 이전의 관계로 복원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않는다.

▶왼쪽부터 심재권, 임채정, 김성호, 김원웅, 김근태 의원과 함께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는 임종석 의원. [사진 제공 - 임종석 의원실]

지난 9월부터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기간에 파견된 대북특사와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무산되면서 불안한 기류가 흘렀고, 특검공표 이후 북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행하려고 하는 지 의심`이 된다며 참여정부를 압박해왔다.

이렇듯 특검은, 북핵문제로 불거진 한반도의 위기상황에서 남북간 신뢰를 일정하게 훼손하여 대화창구의 단절, 팽팽한 신경전의 상황으로 몰고 간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이것은 남과 북의 관계에서 양국정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외교활동을 범죄행위시 함으로서 국제적인 국가위상을 실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고.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 자체가 국제적으로 의심받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남북간의 소위 신뢰할 수 있는 `핫라인`이 흔들리면서 우리 스스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일정하게 상실하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또 하나, 특검의 실행은 정치권의 위상을 스스로 추락시키는 것이었다.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이 동시에 존재하고, 1992년도에 체결된 남북합의도 현재 계류 중이며, 남북 경협의 합의에 따른 각종 법령도 정비되지 않았다. 특히 경협을 위한 4대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이라는 최고 가치의 외교활동에 대한 판단을 `특별검사`라는 그야말로 특수한 직위에 있는 개인에게 맡겨 버리는 꼴이 되었다.

과연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반도의 평화구축이라는 중대 과제를 정치권이 협의 이행하지 않고 어떻게든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단죄하려는 지금의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은 몇 개의 단추를 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입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더 이상 남북관계의 경색과, 한반도 평화구축에 대한 국민들의 기본인식이 혼란스럽지 않기를 바란다면 특검은 이제 마무리되고 종결되어야 한다.

상생과 타협, 조정을 생명으로 하는 정치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채 특검법이 통과되고 공표되었다. 공표 이후의 조정할 것이라는 신뢰도 무너졌다. 또한 국회가 규명하고 국민의 합의를 끌어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특수관계의 외교행위, 고도의 정치적 통치행위를 범죄행위로 단정해 버린 것이 이번 특검법이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 이후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관계법안의 정비도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변화된 상황을 낡은 틀로 재단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가 될 수 있는 다분한 우려를 포함하는 것이 특검이었다.

박지원 전 실장의 수뢰 혐의가 특검 시한 연장의 지렛대로 작용돼선 안돼

지난 6월 16일 동료의원들과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한 특검법 개정안의 협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처음 특검이 시작되었던 2월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장이었다. 지금이라도 특검의 명칭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삭제되어야 하며, 수사대상도 대북송금을 위한 국내 자금조성 부분에 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북한 관련사항은 비공개 수사하고 공표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삽입해야 하며, 수사기간은 1차로 한정하여야 한다는 것도 포함되었다. 정치권은 지금 즉시 개정안 협상에 나서자. 특별검사의 말대로 정치권에서 논의해 법을 폐지하든 개정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특검과 관련하여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을 포함하여 두 명이 기소되었고,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이기호 전 경제수석,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구속되었다. 모두 국내자금조성과 관련한 업무상 배임 혹은 직권남용과 뇌물수수의 혐의다. 이 시점에서 처벌이 필요한 국내자금조성의 불법성 문제는 대부분 밝혀졌고 사법부의 판단이 남았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박지원 전 실장의 150억 수뢰 혐의가 새로 발생했다. 부정부패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원칙이며 이를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민감한 외교문제이며 남북간의 관계에 접근하게 될 특검 시한 연장의 지렛대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를 검찰에 넘겨 이 부분만 따로 수사하게 하는 특검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휴전협정 후 남북이 공식적으로 가진 76회의 만남 중 4회를 제외한 72회의 만남이 2000년 6월 15일 이후에 이루어졌다. 2000년까지 총 교역량이 2억불에 불과하던 것이 현재, 한 해 10억불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으며 민간사회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각 부문 민간교류와 50여만 명이 다녀간 금강산 관광의 성과까지 더하면 최근 몇 년간 남북간의 만남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를 이루어 왔다.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시는 이산가족상봉은 두 말 할 나위도 없고, 세계 중심 국가로서의 웅비를 꿈꾸게 한 경의선 연결과 동해선 연결까지 거론하면 2000년 6월 15일 이후의 한반도는 전 인류의 축하를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평화로운 땅이요 민족이었다.

그 어떤 댓가도 이런 평화의 댓가에 미치지 못함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특검의 시한연장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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