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독일 뮌스터대학 교수, 사회학)


얼마 전 서울로부터 소식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방일 전후로 해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온갖 계층이 발산하는 불협화음속에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였다.

▶"정치는 <예외적인 것>을 능동적
으로 산출하는 것이라는 적극적인
주장을 왜 펴지 못하고 있는지,
일부 <진보세력>에게 던지는
나의 질문이다." - 송두율 교수
걸핏하면 우국충정을 앞세운 이른바 <보수우익>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일선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던 사람으로부터의 소식이었다.

이른바 <통치불능 Unregierbarkeit>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회전반이 상당히 어수선하다는 인상을 그 편지를 통해서 나는 강하게 받았다. 이러한 느낌 속에서 나는 우선 최근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적인 상황으로부터 그 근거를 찾아보면서 무슨 마땅한 해법은 없을까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독일을 비롯해서 유럽의 여러 나라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지금까지의 <복지국가>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폭이 급격하게 커졌고 그의 골도 깊어졌다.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경제도 역시 전반적으로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자본과 노동의 대치상황의 양상도 과격해지고 대졸자의 취업도 따라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들린다.

비슷하게 보이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유럽과 한국의 갈등구조가 분명히 서로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 유럽에서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사회적 갈등도 <탈(脫)이념적> 성격을 띄우게 되었고 그러한 갈등의 해결도 정책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이념보다는 기능주의적 또는 실용주의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상황에 접근, 문제를 해결한다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한국적 상황은 어떤가? 지난 번 대선 결과는 이러한 보수적 접근보다는 변화와 개혁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이 정말 옳았다는 생각이 불과 몇 달만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위에 말한 편지는 고백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의 방미, 방일유감(有感)

이라크전쟁을 뒤로 한 안하무인격의 미국과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 <군사대국>의 꿈을 착착 실현에 옮기는 일본이 북을 계속 조이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노 대통령의 방미, 방일이었기에 사실 가벼운 외국나들이는 아니었다.

<국제공조>냐 아니면 <민족공조>냐 하는 양자택일적 상황 속에서 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의 비극을 막고 <평화>와 <번영>을 국정지표로 삼는다면 <국제공조>보다는 <민족공조>를, 그렇지 못한다면 적어도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를 동시에 견지하겠다는 단호한 의사를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에게 전달했어야만 했다. 바로 민족분단 때문에 안을 수밖에 없는 한 나라의 지도자의 고뇌가 그들에게도 분명하게 전달되었어야만 했다.

독일 수상 슈뢰더가 이라크전쟁을 반대하자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왔던 부시가 바로 노 대통령의 상대가 아니었던가. 슈뢰더는 비록 부시에게서는 비난과 배척을 받았지만 경제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들로부터는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밖에서 칭찬 받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집안에서부터 우선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닌지.

물론 이번 방미와 방일의 성과를 칭찬하는 집안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무식하고 사상이 의심스럽다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러한 사람들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기 위해서 성사시켰던 남북정상회담의 산물이라고까지 폄하하고 있다. 또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서 5억불을 비밀리에 북에 송금했으니 이를 <사법적>으로 다스려야만 한다고 주장해왔다.

결국 <특별검사제>의 도입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노 대통령도 결국 이를 추인했었다. 분명히 <법치국가>의 이념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그러나 <법치(法治)>와 <정치(政治)>는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예외적인 것>에 대한 향수(鄕愁)

최근 독일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정치적으로 적극 해결하려들지 않고 이를 <헌법재판소>의 법정에 곧장 들고 나타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도대체 정치인들이 있는가 라고 되묻고 있다.

더욱이나 아직도 민족분단의 갈등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해야하는 정말로 무거운 운명을 지닌 한국의 정치인들이 <사법적>으로 정치적 문제 - 통일문제를 포함해서 - 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태도변화에서 나는 우선 묘한 느낌을 받는다. 아직도 정치인은 <사기꾼>에 가깝다는 부정적 인식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회에서 <정치>가 <법>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이 어딘지 모르게 생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래 이상적인 현대사회라면 정치는 <힘>과 <힘없음>, 법은 <정당(正當)>과 <정당치 못함>이라는 전혀 다른 양가(兩價)적 코드(Code)에 따라 별도로 작동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에 대한 <비밀송금>을 <통치권(統治權)>적인 결정이었다고 하자 이를 마치 전제군주나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게 있다고 들린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른바 <시민운동>을 하는 쪽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를 전해들을 때 나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과 와중 속에서 <비합리성>이 지니는 혁명적 힘을 무시했던 이른바 <좌파>의 단견(短見)을 질타(叱咤)했던 철학자 블로흐(Ernst Bloch)의 "신화(神話)를 파괴하고 또 동시에 이를 구원하는 빛" (Zerstoerung, Rettung des Mythos durch Licht)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하게된다.

사실 <적법성>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던 우리사회의 <보수우익>이 주장하는 <사법적> 차원의 문제제기를 넘어서서 오히려 정치는 <예외적인 것>을 능동적으로 산출하는 것이라는 적극적인 주장을 왜 펴지 못하고 있는지, 일부 <진보세력>에게 던지는 나의 질문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상황은 민주화적이면서도 동시에 또 혼돈과 불안의 상황이다. 이를 기화로 <보수우익>이 <안정>과 <질서>를 앞세운다. 이에 대해서 분단된 조국이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조건은 <적법성>이 지니는 지루한 형식적 범주보다도 이를 혁파할 수 있는 <행동>을, 또 <결단>을 요구한다고 주장되어야 한다.

정치와 예술

사실 <규범적인 것>보다 <예외적인 것>을 선택한 국민이 대다수였기에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런데 국내외적으로 이러한 <예외적인 것>을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집요하게 있다.

노 대통령의 방미, 방일의 <성과>도 그러한 시도의 결과물이 되었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반세기 이상 지속된 갈등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북핵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보도나 반응을 볼 때 해외의 그것이 국내의 그것보다 훨씬 위기감을 표출시키고 있다. 지나치게 불안에 떨거나 비관적일 필요까지는 없으나 그렇다고 일상성에 묻혀 타성적으로 대응할 상황은 결코 아니다.

위에 말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기 때 이른바 <민족볼세비즘> - <나치즘>의 사상적 원류의 하나를 제공했었다 -  에 가담했고 전후 <독일사민당 SPD>이 좌익적 국민정당으로 변화를 선언한 1959년의 <바드 고데스베르크 강령 Bad Godesberger Programm>작성에 참여한 공법학자 칼 쉬미트(Carl Schmitt)가 1922년에 발표한 <정치신학 Politische Theologie>의 첫 구절은 "주권(主權)은 누가 예외적인 상태를 규정하는데 있다"로 시작한다.

나는 우리의 현 정세가 이러한 <예외적인 상태>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치>는 일상적 관습의 벽을 부수고 새로운 규범을 창출하는 일종의 <예술>이 되어야한다. 실존적인 진지성(眞摯性)이 결손된 일상적 행위의 연장선상위에 이루어지는 정치행위로서는 한반도를 엄습하는 전쟁의 불행도 막을 수 없고, 민족통일이라는 <빛>도 결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6.15 남북공동선언>의 3주년을 맞는 날 아침에 떠올린다. (2003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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