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걸(영동여자고등학교 교사)


▶`북-미 핵문제와 평화통일`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4회 전국청소년논술토론한마당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사진제공 - 민주공원] 

"1994년 제네바 합의의 파기는 전적으로 미국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지배를 위한 일국패권주의에 방해가 되니까 핵소동을 일으켜 한반도를 긴장관계로 몰고간 것입니다."

"`한-미 공조`와 `민족 공조`를 양립하는 방안이 불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우리 정부의 능력과 지위로 볼 때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미국을 방문하셔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 평화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할 때 추가적 조치를 취한다고 한 말은 결과적으로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찾아온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깨고 다시 1994년도의 전쟁상황으로 시침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또 북한과 일방적으로 공조를 취하는 것은 살아나는 남한 경제의 불씨를 위협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해외로 몰아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북핵 문제를 풀 능력이 없습니다."

"2000년 6.15 정상회담에서는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 방안을 마련하자고 합의했습니다. 통일은 반드시 전쟁에 의한 군사적인 무력통일이나 혹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흡수하는 무조건적인 1국가 체제의 통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이상 부산 민주공원 주최 제4회 전국 청소년 논술, 구술 토론대회 최종 토론자리에서)

주한미군이 제2사단의 이동배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일본이 평화헌법의 정신을 외면한 채 유사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군사무장을 통한 군사대국화의 길로 들어간 6월6일 부산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민주공원에서는 `북-미 핵문제와 평화통일`을 주제로 제4회 전국 청소년 논술.토론 대회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었다.

200여 명의 참가신청과 150명의 1차 논술 접수. 그리고 56명의 선발자들이 2차 모둠토론 및 구술과 3차 대표단 공개토론의 형식을 빌어 핵을 둘러싼 북미 갈등과 통일의 문제 등을 토론했다.

일견 학생들의 발언치고는 수준이 높다고 여겨지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학생들의 수준이 이미 북-미 핵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만큼 성숙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주최측인 민주공원은 137편의 읽을 거리를 제공하여 시각의 균형과 내용의 전문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주간조선, 한겨레21, 시사저널, 말, 오마이뉴스 등 국내의 주요잡지들을 검색하여 `세계를 속인 김정일`, `한미 이견, 북핵 해결에 무슨 득되나` 같은 반북시각이나 `영구전쟁` 꿈꾸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 떳떳하게 평화를 요구하라, 등 자주적인 시각의 자료를 골고루 실어줌으로써 참가자들이 충분히 양쪽의 입장을 참고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서류 발표 후 제시한 두 권의 책도 일반인들로서는 음미하고 숙고해볼 만한 책이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쓴 `박진의 북핵리포트`와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씨가 쓴 `2003년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가 바로 그 책이다. 물론 나라면 셀리그 해리슨의 `코리안 엔드 게임`을 권했겠지만 가격과 분량 때문에 참가자들이 부담을 안았을 법하다.

박진 의원의 책은 현실정치인 입장에서 철저하게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북한을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이며 한-미 공조 태세를 강화하는 길만이 핵문제를 푸는 해법이라는 박진 의원의 주장은 풍부한 사실자료와 탐문활동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과는 퍽 멀어 보인다.

이런 주장 때문인지 몰라도 전쟁은 절대 안된다거나 친미라도 자주를 하겠다고 공언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 없는 친미로 치닫거나 추가적 조치에 합의 서명한 것은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만을 가중시키고 MD정책을 강화하는 미국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방적인 한미 공조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의 현실적 힘이 작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라크를 무력으로 침공한 일국적 패권주의의 모습을 똑똑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제네바 합의의 파기 당사자로 미국을 지목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 있다.

미국의 예방전쟁(실제로는 테러 위협의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에게 선제 핵공격을 가하겠다는 전쟁)에 대응하여 노무현 정부의 예방 외교와 시민들의 반전평화운동을 촉구하는 정욱식씨의 주장은 한층 진보적이고 바람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반도가 다시 핵전쟁의 위기 속으로 빠져든 데는 비민주적인 체제의 유지와 안보를 위해 핵카드를 꺼내든 북한의 책임이 작지 않지만, 역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압박.고립시키려는 적대정책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임을 역설하고 있다. 1994년의 전쟁 위기나 2003년의 새로운 핵전쟁위기도 북한을 향한 미국의 적대정책이 바로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1994년에는 카터를 비롯한 평화주의자들의 노력으로 전쟁 위기를 넘겼지만 군부강경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오늘날에는 평화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를 평화의 안전판으로 만들기 위한 예방전쟁적 외교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고, 시민들이 반전평화의 촛불을 높이 들어야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학생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북한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의 패권주의에 일방적인 굴욕외교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학생들은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불러올 것인가?

학생들의 토론은 정답이 없었다. 간혹 무법자 부시에게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도 있었고, 6.13 효순.미선의 추모행사를 위해 야간자율학습을 보이코트 하자는 장외의 귀엽고도 실천적인 제안도 뒤따랐다.

동행한 학부모들 가운데는 학생들의 의식화를 우려하는 분들도 없지 않았으나 심사에 참가한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 제고에 놀라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학생들 본인은 성숙한 토론문화의 진수를 보여준 데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적어도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기성세대의 촌스러운 TV 토론보다는 훨씬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는 2년 전 국가보안법에 대한 재판극 형식의 토론을 통해서 그 법의 문제점을 교육시킨 적이 있었다. 강정구 교수님의 방명록 사건을 소재로 해서 다루어본 이 교육 결과물은 통일부장관상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안겨주었다.

국민들에게 철퇴를 마구 휘두른 궁예의 관심법같은 국가보안법이 안보상으로는 필요하지만 인권에는 독소라는 것을 토론을 통해서 알게된 것이다. 나 또한 덩달아서 민족정기와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자유로운 말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은 또 하나의 분단체제임을 토론교육과정에서 깨달았다.

토론은 학생들을 평화통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하루아침에 통일의 꽃을 활짝 피울 수는 없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서 다져지는 청소년들의 평화에 기반한 통일 의지는 양심수와 무기수, 한총련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면서 한풀 꺾여버린 통일꽃의 씨앗들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나는 토론의 힘, 토론을 통한 통일교육의 힘을 믿는다. 차분하면서도 뜨거운 통일의 열기가 토론을 통해서 한반도 전역을 달구어나갈 때, 수십조에 달하는 값비싼 미국산 고철덩어리나 허구적인 미사일 방어체제보다 더 효율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냉전은 돌처럼 견고한 자신의 마지막 요새인 한반도에서 조만간 끝장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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