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정책실장/통일뉴스 편집위원)


북한은 올해도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기관지인 청년전위, 인민군 기관지인 조선인민군 등 3개 신문에 공동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공동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한 것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인 95년부터 지금까지 7년째 계속되고 있다. 물론 98년에는 청년동맹 비리 사건으로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공동사설로만 발표하기도 하였다.

북한의 신년사는 한해 동안의 정책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매우 유효한 창이다.

7년째 계속되는 공동사설

올해의 북한 신년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을 통해서 신년사를 들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까지 북한의 신년사는 김일성 주석이 육성으로 발표하였다. 2000년에는 남북 공동선언 발표가 있었고, 북한의 경제도 회복기에 접어들었으며, 서방국가들과 전방위 외교를 펼칠 정도로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으며, 노동당 창건 55돌 행사를 성대히 치뤘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년사를 낭독할 가능성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도 공동사설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올해 공동사설 제목은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기세로 새 세기에로 진격로를 열어나가자`이다. 공동 사설 제목은 올해 북한의 주민들이 나아가야할 목표일 것이다. 실제로 공동사설 내용에서 "이것이 올해 전당, 전군, 전민이 튼튼히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투적 구호"라고 말하고 있다. 공동사설의 제목에는 고난의 행군을 마쳤다는 자신감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새세기로 진격로를 열어나가자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사설 제목 그대로 유추해본다면 북한이 새세기의 진격로를 열었다고 평가했을 즈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년사를 직접 낭독하는 해가 될 것이다.

21세기를 강조하는 이유

2001년 북한 공동사설의 특징은 대체로 고난의 행군을 승리했다는 자신감과 강성대국 건설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올해를 21세기의 출발로 설정한 것에서도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나 새출발을 하기 위한 분위기를 만드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즉 2001년 공동사설은 뚜렷한 당면 목표를 제시했다기 보다는 새로운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새출발을 위한 각오를 다지자는 취지에서 발표한 것이다.

`올해는 21세기의 첫해이다`, `21세기 사회주의 붉은기진군`, `21세기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 과 같은 표현이나 "21세기는 역사의 풍파 속에서 검증된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정치가 전면적으로 꽃펴나는 영광스러운 세기"라는 언급에서 볼 때 21세기에 대한 북한의 기대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표현에서 볼 때 북한은 `21세기를 김정일 세기`로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사설의 내용 가운데서 "다음해에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90돐을 맞이하게 된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2년은 김일성 90회 생일(4.15)과 김정일 60회 생일(2.16)이 겹치는 해이다. 여기에 북한이 전당, 전군, 전민의 총력을 모아서 `새 세기의 진격로`를 열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북한이 21세기를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김정일의 60회 생일을 목표로 해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선포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수령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김일성 90회 생일과 김정일 60회 생일

그러다면 올해 북한의 목표는 김일성 90회 생일과 김정일 60회 생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 경제건설이다. 특히 먹는 문제 해결을 통해서 인민생활향상을 도모하려는 것도 해마다 강조하는 것이지만, 김일성 90회 생일과 김정일 60회 생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가장 중요한 전선은 전력공업, 석탄공업, 금속공업, 철도운수`라는 지적도 해마다 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를 강조한 것의 반복이지만 21세기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서 경제문제의 해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구절이다.

21세기 사회주의 붉은기 진군의 실현 방도로 제시한 자주정치, 단결의 정치, 애국애족의 정치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사적 의미를 벗겨서 실제 추구하는 것을 살핀다면 그것은 2002년을 경제적인 도약의 계기로 삼기위해 총력을 기울이자는 것일게다.

즉 2001년 북한의 공동사설이 담고 있는 것은 `고난의 행군을 마쳤다`, `21세기를 새롭게 출발하자`, `21세기는 김정일 시대이고,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통해서 북한주민들을 사상적으로 결속시키고 경제적인 도약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자주정치와 대외관계 개선

한편 올해 공동사설은 지난 몇 년동안의 공동사설과 비교해볼 때 거친 표현들을 볼 수 없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2000년 공동사설에서 나타난 `계급적원쑤들과 비타협적으로 견결히 싸워나가야 한다`, `계급의 원쑤들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는 무쇠주먹`, `미제와 그 주구들의 식민지 파쑈통치를 청산`,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온갖 력사의 반동들을 쓸어버리고` 등의 표현들이 사라졌다.

대외 관계에서도 미국, 일본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없어졌다. 미국, 일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은 미국 대통령에 부시가 당선되어서 2000년 10월 12일 발표한 북미공동선언이 어떻게 이행될지 모호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미국, 일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들이라면 그 어떤 나라든지 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이 99년 하반기부터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점을 고려한다면 2001년에도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서방국가들과 관계 개선은 자본주의 나라들과 교역을 통한 경제적인 이익의 획득, 국제적 고립감 탈피 등 여러 가지 실용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21세기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외교적 환경을 만드려는 정치적인 이유가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2000년 공동사설이 정치-경제-남북관계-대외관계 순으로 언급했지만 올해에는 정치-대외관계-경제-남북관계 순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북한이 대외관계 개선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 공동사설에서 대외관계를 앞서 거론한 것은 21세기 사회주의 붉은기 진군의 실현 방도로 제시한 자주정치, 단결의 정치, 애국애족의 정치 가운데 자주정치를 설명하면서 외교관계를 언급했기 때문이지 특별히 대외관계 개선을 다른 영역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6.15선언 이행에 대한 시각

올해 공동사설에 나타난 통일관련 언급은 매우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것은 이미 공동선언의 앞부분에서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 정상이 6.15 선언을 발표했기 때문에 6.15 선언 실천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남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에는 대남 비방을 비롯하여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정보원 해체 등의 요구와 조국통일3대 헌장과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강조하였다. 올해는 이와같은 언급이 없어지고 6.15 선언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6.15 선언 이후 진행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과거의 주장을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외세의존 및 공조 포기`, `법률적·제도적 장애제거`라는 매우 완곡한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거꾸로 6.15 선언의 이행이 외세의존이나 법률적 제도적 장애 때문에 어렵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6.15 선언이 이행되지 않으면 외세의존이나 법률적 제도적 장애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강력한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연방제 방식의 통일

한편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2001년 공동사설에 나타난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1년 공동사설에서는 통일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조국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룩하는 길은 북과 남이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서로 련합하여 하나의 통일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북과 남은 서로의 차이점을 뒤로 미루고 민족적공통성에 기초한 련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온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로 단결하면 그것이 곧 우리가 바라는 통일이다."

이는 첫째, 하나의 통일국가 수립, 둘째, 연방제 방식, 셋째, 화합과 단결이 곧 통일이라는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를 가지고 북한이 6.15 선언에서 연합제와 낮은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놓고도 연방제 방식의 하나의 통일국가를 여전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6.15 선언에 대해서도 연합제는 두 개의 국가이고, 연방제는 그것이 비록 낮은 단계일지라고 하나의 국가를 뜻하는 것인데 어떻게 공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의 통일국가 수립이라는 것은 양정부가 군사, 외교, 경제에 대한 권한을 가진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미 북한은 `민족통일기구`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통일국가 수립이란 민족의 통일을 상징할 수 있는 상징적인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국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은 연방제(federation)를 대외적으로는 연합을 뜻하는 confedera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북한도 하나의 통일국가의 기능을 연합에서 말하는 두 개의 국가의 기능과 실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상징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자는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정부가 군사, 외교, 경제에 대한 권한을 가진 상태를 분명한 전제로 한다면 하나의 국가냐, 두 개의 국가냐는 논란은 통일에 대한 의지를 수사적으로 어떻게 표한하느냐의 의미일 뿐이다. 북한의 연방제 방식은 양정부가 군사, 외교, 경제에 대한 권한을 가진 상태를 전제로 하면서 상징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지, 법적으로 군사, 외교, 경제의 권한을 가지는 통일국가를 만들자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사용 안해

더욱이 북한은 2002년 공동사설에서 1980년 노동당 6차대회 때 발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구체성을 지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광의의 개념인 `연방제 방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점 역시 북한의 2001년 공동사설에서 말하는 통일방안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한이 말하는 통일이 제도의 통일을 기초로 한 강력한 하나의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로 단결하면 그것이 곧 우리가 바라는 통일이다."는 표현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오히려 화합과 단결이 통일이라는 것은 한국의 여론 주도층에서 자주 말하는 평화공존의 방식에 근접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문제에 대해서 어떤 선입관이나 이념적이고 논쟁을 위한 논쟁의 방식에서 벗어나서 실용적으로 논의해 나간다면 `화합과 단결이 통일`이라는 북한의 견해와 `평화공존이 통일`이라는 한국 여론주도층의 견해 사이에서 공통성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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