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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토지개혁과 제반 민주개혁 ④ - 민주개혁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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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1.05  1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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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주개혁의 빛과 그림자

북한의 민주개혁은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북한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됩니다. 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경제구조가 청산되고 사회주의적 국영경제와 소농경제가 중심이 되는 경제구조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지주와 대자본가, 친일파가 몰락하고 농민과 노동자, 근로인텔리 그리고 소생산자로 구성된 계급구조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북한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농민과 노동자 등 근로대중에게는 희망을 주었지만, 구 지배층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지배자의 몰락과 피지배자의 상승, 이것은 혁명이 있는 곳에는 항상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난 이러한 혁명적 변화는 그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 빠르고 철저했습니다. 북한 혁명도 기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군이 진주한 동구권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승리한 중국에서 있었던 인민민주주의 혁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지만, 북한의 개혁조치들은 그 어떤 경우보다 `빠르고 철저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이처럼 빠르고 철저하게 혁명을 진행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북한 지역에서 혁명의 대상이 되었던 세력들이 모두 남한 지역으로 탈출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상대적으로 저항이 격렬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비교적 저항이 미미한 상태에서 빠르고 철저하게 혁명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한 번 봅시다.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 진주하면서 일차적인 숙청대상이었던 친일파 관료나 친일경찰들이 대거 이남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그들은 처벌을 피해 탈출할 남한 땅이 있었기에 북한 지역에서 저항을 선택하기보다는 월남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 그들은 남한 땅에서 미군정에 의해 재등용되고 그것은 반북, 반공, 반소를 위해 중용됩니다. 특히 친일경찰의 80% 이상이 다시 남한 땅에서 경찰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 문제들은 친일 경찰이나 관료들에게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탁치 균열로 북한 지역에서 조만식이 배제되고, 조선민주당이 공산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하자 기독교 세력과 우파 민족주의자들도 대거 월남하게 됩니다. 또 토지개혁이 일어나자 지주와 자본가들도 상당수가 남쪽으로 넘어와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전쟁 전까지 수십 만 명(학자들마다 차이가 있는데 많게는 75만 명, 적게는 15만 명)의 월남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만일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북한이 분단된 반쪽이 아니었다면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다른 나라로 떠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며, 그 저항 때문에라도 개혁은 실제 보다 다소 천천히 진행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적어도 세력관계를 고려해 보다 완만한 개혁을 선택했을 것이며, 약간은 중도적인 모습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북한의 민주개혁, 북한 혁명이 갖고 있는 동전의 다른 면입니다. 북한의 반혁명 세력이 대거 이남으로 넘어옴으로써 북한에서는 급진적이고 빠른 진행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항도 격렬하지 않았고 사회적 혼란이 비교적 적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도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46년 3월 1일 3.1절 기념식장에서 있었던 김일성 암살기도 사건을 비롯, 소련군 장교들과 북한 지도부에 대한 테러 사건이 계속 일어났고, 토지개혁을 반대하기 위한 테러 활동도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월남한 사람들이 조직한 청년단이나 이남의 우익단체들이 북쪽에 가서 행한 활동들이었지, 북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런 단체들의 활동이 벌어졌다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그것은 미미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월남민들은 남한 사회에서 반공과 애국의 이름으로 극단적인 활동을 벌입니다. 좌익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대중들의 정당한 일상적 요구나 민주적 요구조차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사회에는 서서히 `피의 보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4.3 제주항쟁에서 벌어집니다. 서북청년단 등의 반공단체들이 벌인 무차별적인 살육으로 제주도는 총인구 27만 가운데 최소한 3만 명 이상이 살해되는 비운의 땅이 되고 맙니다.

혁명이 급진적이면 급진적인 만큼 그에 대한 반대세력의 저항도 격렬한 법입니다. 북한 혁명도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빠르고 철저했던 만큼 그에 대한 반작용도 컸습니다. 그러나 북한 혁명에 대한 저항은 북한 내에서가 아니라 남한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북한의 민주개혁, 북한 혁명이 갖고 있는 그림자입니다. 북한의 민주개혁이 당시의 북한 인민대중에게는 빛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남한의 많은 인민들에게는 빛으로만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림자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빠르고 철저한` 만큼의 그림자가 남한 땅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후에 한국전쟁 과정에서 더욱 확대되었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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