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원광대 정치학/평화학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23일 미국에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한다. 미국의 정보 기관들은 북한이 1990년대 초 적어도 1-2개 많으면 4-5개의 핵무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해왔고, 러시아와 중국의 정보통들은 아직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한 것으로 발표해왔으며,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은 1980년대 중반까지 적어도 50개의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 당국은 이제까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던 방침을 바꾸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며 북미 갈등에 관해 "새롭고 대범한 해결 방도"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평화 협정과 핵무기를 바꾸자는 내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까? 크게 4가지 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무시해버린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든 말든 개발하든 말든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화학무기도 없다는 이라크에 대해서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핵무기까지 있다는 북한에 대해서 가만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를 핑계로 당장 일본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기 쉽고 다른 여러 나라들도 이를 뒤따를지 모른다. 이는 핵확산금지조약 (NPT)의 붕괴를 불러올텐데,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방침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는 미국이 침묵을 지킬 수 있을까.
 
둘째, 핵시설을 폭격하거나 북한을 침공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라크와 크게 다르다. 이라크엔 미국이 눈독들여온 석유가 풍부하지만 북한엔 미국이 탐낼만한 자원이 거의 없다. 이라크는 미국의 침략에 맞설만한 군사력이 빈약하지만 북한은 남한이나 일본의 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까지 때릴 수 있는 보복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 주변 국가들은 미국의 전쟁을 돕거나 소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북한 주변 국가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폭격하거나 침공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라크에서 이른바 융단폭격을 하며 엄청나게 쏟아부은 폭탄과 미사일을 새로 만들어 더 큰 전쟁을 준비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말이다. 더구나 올해 말부터는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될텐데 전쟁을 준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경제 제재를 통해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린다. 미국 언론이 보도하였듯이 부쉬 대통령이 김정일 총비서를 몹시 싫어하는 데다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을 포함한 강경파들이 북한의 체제 붕괴를 바라는 터여서 이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그러나 북한 뒤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쥐고 있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미국이 1993-94년 유엔을 통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추진했지만 중국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일본이나 남한에 압력을 넣어 대북 경제 제재를 할 수는 있겠지만, 북한이 쓰는 에너지의 90%를 대주고 해마다 50만톤 안팎의 식량을 지원해주는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한 경제 봉쇄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제 2의 태프트-카쓰라 밀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1905년 미국이 일본의 조선 침략을 묵인해주고 일본으로부터 필리핀 점령을 용인받았듯이, 미국이 중국의 대만 흡수 통일을 묵인해주고 중국으로부터 북한 붕괴를 지원받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제재를 통한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죄없는 북한 인민의 고통과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넷째, 북한과 불가침협정이나 평화협정을 맺는다. 서로 먼저 침략을 하지 않겠다는 문서 한 장으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지만, 이는 주한미군을 유지하기 위한 명분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호전적이고 침략적인" 북한이 군비 감축과 평화 협정을 줄기차게 주장해도,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배경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북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국방 전략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을 폭격하거나 무너뜨리기 어렵고 핵무기 확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방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불가침협정이나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한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서 안으로는 휴전선 근처의 북한 병력을 크게 줄이거나 뒤로 물러서게 하고 밖으로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남북한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반도를 중립화한다. 이는 머지 않아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이어질 것이다.
 
위의 4가지 대응 가운데 어느 것도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99%의 가능성도 실현되지 않을 수 있고 1%의 가능성이 실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방안에 대해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거나 감축하겠다는 계획이 북한에 대한 폭격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고 불가침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대비한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의 어떠한 선택이 한민족의 안녕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지 차분하게 따져보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궁리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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