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대화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북한의 `속심`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북한은 대화나 협상, 성명서나 담화문 등에서의 언어와 용어 사용이 정교하다. 그런데 문장과 표현방식에 있어 은유와 비유를 적절히 사용해 종종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한다. 여기에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북한 특유의 주장까지 겹쳐지면 북한의 진심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진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전략상 `모호함`을 취하는 게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 좋은 예가 핵과 관련된 것이다.

◆ 지난 18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 관련 발표를 두고 해석이 구구하다. 그 내용중에 "이제는 8천여대의 폐연료봉들에 대한 재처리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문장이 있다. 여기서 `마지막 단계에서`라는 구절이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처리작업` 자체를 직접 수식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이 문장은 해석하기에 따라 ▲`재처리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것과 ▲`재처리 준비작업을 마무리 중이다`는 것으로 나눠질 수 있는데, 이는 천양지차다. 전자라면 핵개발 단계로 들어섰다는 표현이다.
 
◆ 또한 북.미.중 3자회담을 둘러싸고도 해석이 구구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른바 `북핵문제` 해법을 두고 이제까지 북한과 미국은 각각 `양자회담`과 `다자회담`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포함된 3자회담이 절묘하다. 미국은 중국이 낌으로서 형식상 2자회담이 아닌 다자형태이므로 불만이 없고, 북한 역시 내용적으로 2자회담이므로 불만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원칙에 강한 북한이 곧바로 "이 회담에서 중국측은 장소국으로서의 해당한 역할을 하게 되며 핵문제의 해결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들은 조미쌍방사이에 논의하게 된다"고 못박은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용어나 표현을 둘러싼 해석 차이의 결정판은 지난해 10월초 미 켈리 특사의 방북때 불거진 이른바 `북핵문제`에서 나왔다. 켈리가 북측에 `핵개발 계획`을 추궁하자 북측은 "핵무기보다 더 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답했다. 이 표현은 매우 놀랍고 또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우선 켈리가 질문한 핵개발 유무가 묘하게 비켜나 있고, 둘째 핵무기보다 `더 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셋째 `가지고 있다`가 아니라 `가지게 되어 있다`고 함으로써 장차 미국의 일방적인 대북 핵개발 예봉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고 있다.

◆ 그런데 사실 핵과 관련한 북한의 `속심`은 벌써 나와 있다. 방북후 켈리가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는 발언을 하자 그해 10월25일 북한은 미국에 불가침조약을 제기하면서 "모든 문제 해결방식의 기준점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의 위협의 제거"인데 "이 기준점을 충족시키는데는 협상의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억제력의 방법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될수록 전자를 바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3일 진행될 3자회담은 전자인 `협상의 방법`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 회담이 여의치 않으면 `억제력의 방법`을 쓰겠다고 했다. 여기서 `억제력의 방법`이란 당연히 핵개발과 그 소유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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