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그리스도신학대 교수)


`북핵문제`의 새로운 의미

이른바 `북핵문제`는 한반도의 민족통일에 있어 주도권 쟁탈을 위한 남북간의 문제로 축소하거나, 미국을 포함한 주변당사국들간의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사건으로 제한해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계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요구가 인류에게 부과하고 있는 역사적 과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사회는 인터넷, 대중방송매체의 획기적 발전이나, 혹은 대중교통수단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일일생활권의 지구촌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적 추이의 핵심에는 특히 새로운 생산양식인 정보화로의 전환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보의 유대와 공유를 통한 국가들간의 상호관심과 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물론 정보화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역기능도 없지 않지만, 산업화에 근거해 전통적 국제사회를 지탱해 온 문명의 기본양식인 규격화, 표준화, 중앙집권화 등의 지배력이 점차 상실돼 가고있다. 그 대신에 국제사회는 상호의존성이 요구되는 새로운 생활양식에 적합한 가치정립과 질서형성을 위해, 고유한 문화의 존중, 다원적 가치의 공존 등의 인륜적 덕목의 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다.

국제 정치사회는 세계사적 의미에서도 20세기로부터 21세기에로의 전환기에서 요구된 하나의 시험무대에 서있다. 21세기 문명사회는 정치영역에서 지역국가나 민족공동체의 규준을 일반화하려는 편협성과 일방주의에 묶인 정치체제의 극복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심히 우려치 않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동서의 화해로 싹 트던 미래정치의 희망 대신에, 자국이익을 위한 힘의 행사와 지배의 논리라는 20세기적 정치 행태가 여전히 확대 재생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북핵문제`는 미국식 대외 팽창주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건

그런 우려가 확연히 현실화된 모습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 20세기의 마지막 패권을 강력하게 전세계를 상대로 확신시키려하고 있는 미국에서 발견되고 있다. 국제 사회적 교류와 관계 개선의 문제를 대화와 타협 대신에, 위협과 전쟁으로 처리하려는 미국의 전쟁 국가적 면모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합리적 선택과 조정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미국의 팽창주의적 역사를 근자에도 구체적 사례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 클린턴 정권 시절인 1999년 6월 10일  NATO 국가들과 함께 여성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들 3천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유고슬라비아의 폭격사건도 미국의 대외팽창의 역사에 한 칸을 메우고 있다. 반 테러응징, 인권 등의 명분을 이유로 내세워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에 연이은 폭격과 전쟁은 미국의 패권주의적 모습을 확연하게 장식한 것이다.

미국의 반전운동가 조엘 안드레아스의 주장대로, 매사를 전쟁으로 풀려고 하는 `전쟁중독증`에 걸린 채, 이라크 국민의 해방이라는 대의명분과 달리 실상은 이라크의 원유를 장악하고 동시에 중동에 대한 패권과 세계질서의 미국화된 체제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에서 추진된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패권주의 역사에서 결코 제외될 수는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동북아에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북핵문제`는 미국식 대외 팽창주의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건이며, 국제사회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다시금 시험하는 기로에 선 국제 사회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젠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전쟁국가로서의 진면목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지점에 이른 것은 분명하다. 이라크 침공에 대한 유엔의 강력한 반대와, 자국은 물론 여러 국가의 민간인과 시민단체들의 "반전평화" 시위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제 사회적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명분과 정당화할 침공의 근거도 충분하게 확보하지 않은 채, 자신을 암암리에 지탱해오던 폭력기제의 노골적 실체를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외적 시선을 무시한 채, 미국의 정치체제는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시기 선택적 차이는 있겠지만, 관성적으로 무력의 행사를 통한 해결에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고, 자국민의 집단적 의지의 표출이라는 미명 하에 무력침공의 필요성을 포장하려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측되는 상황 앞에서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하고,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전평화`가 인류 미래사회를 위한 원칙되어야

이라크 침공과 관련해 영향력 있고 이해당사자였던 국제사회 구성원들의 태도와 우리의 처신은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나 중국 등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며 국제여론을 반전분위기로 몰아갔던 것이 자국의 이익 때문이라는 동일한 패권적 속성에 의한 것이라는 역설에 빠졌기 때문이다. `북핵문제`에 평화적 해결의 담보와 이라크 전후복구사업 참여의 이익 확보라는 자국 이해관계에서 내린 우리의 파병결정은 전쟁으로 평화를 보장하려는 자충수와 같은 결정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과 입장들은 새로운 국제 사회의 질서추구를 위한 명분도 약하고, 국제사회의 전체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는 공감적 한계를 분명히 지녔다.

그렇다고 당장의 현실이익을 포기하거나 미국의 팽창주의의 위협에 맞서서, 우리가 전쟁시스템화를 전지구로 확산하고 무력에 의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강력히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목전에서 벌어지는 미국 패권의 위력 앞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패권주의의 희생물에서 얻은 반사이익에 편승하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이번에 독일 등에서 보여진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군비구축과 확장이다. 이것은 오히려  미국식 패권주의에 굴복하는 것이고, 보복과 응징이라는 20세기의 정치행태의 악순환에 머물러 미국화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북핵문제`의 한 축인 북한도 미국 패권주의의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세계를 폭력과 희생의 논리로 함께 물들일 수 있는 가해자일 수 있다. 핵폭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확보에 의해 자신의 체제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단순한 자기방어의 차원을 넘어 세계를 긴장과 갈등 속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군비증강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해 대화와 타협에로 나와야 한다. 진정한 체제유지와 국제사회의 일원됨은 그 구성원의 평화로운 가치선택과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해 보장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국가 내부의 체제에 해당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이상 외부가 없어 보이는 지구촌 사회의 정치체제에 대해 적용될 미래의 기획일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이제 국가 상호간의 가치와 규범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국제교류를 증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반전평화`의 논리는 단지 시민운동의 캐치프레이즈만이 아니라, 인류 미래사회의 질서를 위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공존의 원칙을 향한 요구가 세계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노골적 패권체제로의 전환, 또는 전쟁국가로의 체제정비가 미국의 패권체제 위기를 가속화하여 스스로 붕괴한다는 세계 석학들의 전망 때문에, 이런 주장이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진정한 정치적 미래를 보장해줄 거라는 기대에서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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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저서>

- 연세대 졸업. 독일 부퍼탈대학 철학박사. 현재 그리스도신학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 「현대사회의 위기와 철학의 시작」,「악과 모순 속의 자유」,「인간폭력의 근원과 의미」,「현상학적 환원의 특성과 의미」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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