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집권초부터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및 대외정책에서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이라크 파병동의안을 국회에서 호소했고 또 그 이전에는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지원과 관련한 특검법안을 승인했다. 두 가지 사안 모두가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대북사업에서 모든 걸 다 까밝힐 수는 없어

노무현 대통령은 전임 김대중 정부의 한계를 극복한다면서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강조해 왔다. `투명성`이란 말은 백 번 말해 틀린 말이 아니지만 모든 것에 이를 다 적용할 수는 없다. 외교문제는 물론 특히 대북사업에서도 모든 걸 다 까밝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민족의 장래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정 기간동안 고도의 비밀이 요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사업과 관련된 문서가 있고 또 이 비밀문서는 영원히 감춰지는 게 아니라 후대의 평가를 위해 30년안에 다 공개하기로 되어 있다. 문제는 모든 대북사업이 `투명`해야 하는 게 아니라 투명할 것을 투명하게 하고 비밀스럽게 할 것은 비밀스럽게 하는데 있다.

현대의 대북송금지원은 고도한 정치적 행위이자 국익과 직접 연관된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때로는 비밀이 유지돼야 할 민족의 장래와 관련된 남북관계 차원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다 노 대통령의 `투명성` 운운 발언을 맞춘다면 이는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 장래에 자칫 걸림돌이 되기 쉽고 또 실제로 이번 특검법 승인이 그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당장 특검법 통과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임동원 전 특보, 그리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과 김윤규 사장 등이 출국 금지되거나 특검 진행시 수시로 불려나갈 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대중-임동원 라인은 남북화해시대를 연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합의의 주역들이다. 이 두 사람은 남한에서 몇 안되는 북한통이자 통일문제 전문가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한반도문제에 이상이 생기면 이들은 언제든지 나서서 자문역할과 특사역할을 해야 할 참에 허리춤이 붙들려 있는 판이다.

정몽헌-김윤규 라인 역시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함께 대북사업의 물꼬를 튼 장본인들이다. 최근 한반도평화의 한 상징인 금강산관광사업의 해로(海路)가 중단될 형편에 있고 또 육로관광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고, 개성공단 착공마저 늦어지고 있다. 남북 경협의 주체인 이들이 발벗고 나서도 될까말까할 참에 역시 발목이 잡혀있는 판이다.

이런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잘 될 리가 없고 또 잘 안될 경우 해결사로 나설 인물도 없다. 게다가 지금 새 정부 들어 남북 당국간 첫 고위급 회담인 제10차 장관급회담(4월7∼10일, 평양)이 무산됐다. 남북 장관급회담이 물 건너갔다면 이는 예사 일이 아니다. 그간 장관급회담은 남북관계 지속과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아직 이른바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남북이 응당 만나야 할 것도 못만나고 있다면 이는 분명 이상기류임에 틀림없다.

북핵문제와 이라크 파병문제는 별개의 것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동의안 호소 역시 이상기류를 타고 있다. 2일 국회연설에서 노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명분없는 전쟁`에 `한미공조`를 위하고 또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파병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나라의 희생 위에서 북핵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리에게 있어 북핵문제와 이라크 파병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고 또 북핵문제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처리할 뿐이다. 여기에 남한의 입지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남한이 `미국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한다고 해서 미국이 `남한을 위해` 북핵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순진한` 차원을 넘어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이라크파병 제의(압력)를 받았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압력에 뻣뻣하거나 아니면 굴복할 땐 하더라도 한두번 정도는 튕겨줄 것으로 기대했음직하다. 남한의 역대 정부 대개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지만 노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한미간의 문제는 자존심문제이고 또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수평적 관계`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번 파병동의안 과정에서 한국민의 자존심을 위해 튕기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파병을 `고집`부렸다. 노 대통령 자신이 대선 후보시절 보여줬던 `노무현답지 않은` 이상한 현상이다. `노무현` 개인의 고집과 이상기류는 노무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어찌하다 `노무현답지 않게` 전도된 가치를 주장하는지 분명 이상기류를 타고 있다.

아직 늦지 않은 `북핵문제` 해결

지난해 16대 대선에서 승패 분수령의 하나는 당시 쟁점으로 떠오른 북핵문제와 한미문제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이었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특히 이 두 가지 사안에서는 차별적이었다. 유권자는 북핵문제 해법과 관련 이 후보의 `압력수단`보다는 노 후보의 `대화방식`을, 한미관계에 있어서 이 후보의 `숭미적 행태`보다는 노 후보의 `수평적 관계`를 지지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이번 특검법 승인은 북한에 대한 간접적 압력으로 되고 또 이라크 파병동의안 호소는 여전히 한미관계가 수직적 관계에 놓여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당선 전후가 너무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노 후보를 지지했던 젊은 층과 개혁층이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을 만하다.

다소 늦었기는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제라도 북핵문제와 이라크 파병문제를 철저히 `민족공조`의 입장에서 다시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는 정말로 북한을 배려하는 정치와 외교를 펼쳐야 한다. 이미 지난 대선을 통해 남한정치와 삶에 깊숙이 들어온 북한을 대상화하거나 단순한 변수로 놓아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북한을 파트너로 놓고 상수로 봐야 한다. 자꾸 실기(失機)를 하면 너무 멀리가게 돼 돌아서기 어렵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은 것은 이미 잘 해결되었어야 할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를 기회라 생각하자.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로 다가가는 길은 미국에 의지하거나 미국과 공조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 의지하고 북한과 공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과 `국가 이익을 위해` 더 엇나가기 전에 집권초기의 이상기류를 정상기류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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