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1. 미국의 오만한 전쟁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내심 이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미국은 애초에 뜻대로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개시했다.

한국시간으로 3월 20일, 부시 대통령은 전쟁개시 연설을 통해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이라크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명령을 내렸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해방을 바라지 않는 이라크 국민에게 자신들 방식의 해방을 강요하기 위해, 아직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이라크에게 자신들의 주관적 판단을 합리화하기 위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는 매서운 비판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일관되게 보여졌던 미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오만함이 짙게 배여 있다.

굳이 전쟁 자체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번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독단과 고집에 의해 치러지는 측면이 강하다. 그나마 1991년의 걸프전은 당시 쿠웨이트를 무단으로 침공한 이라크 군대를 쿠웨이트 밖으로 철수시키기 위한 방어적 성격의 정당한 전쟁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당시 국제사회는 중동국가를 포함해서 대부분 미국 주도의 걸프전을 승인해줬고 기꺼이 협력했던 것이다.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은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의 전적인 동의를 얻지 않은 채로 미국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치러졌다는 점에서 전쟁의 오만함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파월 국무장관이 유엔에 직접 출석하여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 증거를 제시하고 - 물론 당시 제시된 자료들이 조작된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 안보리 이사국들을 상대로 다양한 외교노력을 펼치는 등 - 물론 여기에는 갖은 회유와 함께 이사국 외교관들의 이메일을 감시하는 등 비도덕적인 행위도 포함되었다 - 최근까지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라크에 대한 전면사찰을 담당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마저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 은닉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성급한 군사적 대응에 앞서 사찰기간의 추후 연장을 합리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거부권을 갖고 있는 안보리 상임 이사국에서도 불란서와 중국, 러시아 등은 즉각적인 전쟁 결의를 반대하고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으며 적잖은 비상임 이사국 역시 여기에 동조했다.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전시위와 요구가 빗발쳤음은 물론이다.

결국 미국은 안보리의 전쟁결의를 포기하고 종전의 입장을 바꿔 미국 단독의 전쟁을 결정했으며 이를 위해 후세인에게 48시간의 최후통첩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지나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로운` 전쟁을 개시했다. 스스로 안보리의 결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미국이 이제 와서 안보리의 지지획득을 포기하면서 전쟁개시의 정당성을 운위하는 것은 따라서 자기모순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 외로운 전쟁이라는 점 외에도 이번 이라크 전쟁이 미국식 오만함의 발현인 것은 미국이 대외적 명분으로 거론하고 있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과 테러와의 연계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아직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 경우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외로운 전쟁임과 동시에 `부정한` 전쟁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1998년 이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지속적인 사찰과 감시를 요구했고 이에 대해 후세인은 완강하게 사찰수용을 거부해왔다. 그러다가 작년 안보리 결의를 통해 국제사회는 이라크에 대한 즉각적인 전면사찰을 요구했고 후세인은 이를 받아들였으며 이에 따라 국제사찰단이 이라크에 입국해서 광범위한 사찰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 결과는 미국이 제기했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 조직과 이라크와의 연계 의혹 역시 미국 스스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심정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이라크의 각종 테러조직 지원 의혹도 최근에 와서는 두드러지게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를 종합한다면 국제사회의 지지 없이도 이라크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미국의 명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섣부른 의혹만을 내세워 실제 대규모 살상이 초래되는 전쟁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라크 석유자원의 확보가 이번 전쟁의 참목적이라는 분석은 미국이 국제사회의 지지도 없이, 자신이 내세운 명분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도 없이 부랴부랴 전쟁을 시작한 이면의 이해관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 설명대로 미국이 외로운 전쟁, 부정한 전쟁을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천박한 의도에서 진행한 것이라면 이는 이번 이라크 전쟁이 미국식 오만함의 극단적 산물임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2. 미국의 오만한 북핵해법

이라크 전쟁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저 곳`의 일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음은 미국의 오만한 일방주의가 단지 일회성이 아닐 것이라는 걱정에서이다. 지지도, 명분도 없이 전격적으로 진행된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다음은 한반도`라는 막연한 근심이 멀지 않아 현실의 상황으로 나타날 것임을 완전히 부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식 오만함은 최근 들어 한반도의 북핵문제 해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전에 이미 한반도는 핵을 둘러싼 북미간 긴장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군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한 전투기의 NLL 침범, 동해상에서의 크루즈 미사일 발사가 있었고 급기야 공해 상의 미군 정찰기에 대한 위협비행까지 벌어졌다. 예고했던 대로 영변 원자로의 재가동이 시작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에 질세라 미국도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영변폭격 방안이 공식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언론보도 이후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실제로 미 국방부는 24대의 전폭기를 괌에 증파시켰다. 서로 인내할 수 있는 지점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조그만 돌발상황만 생겨도 곧바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위기국면이 조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의 가능성은 아직도 낮아 보인다. 최근 북한의 긴장고조 행동은 실제로 미국과의 전쟁을 감수하면서 핵개발을 감행하겠다는 의지라기 보다는 일절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는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한 공세적인 압박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이라크전 개시 이전에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북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화불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 전투기의 근접비행 이후 미국 언론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묵인할 것이라는 보도마저 나왔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만은 절대 나서지 않겠다는 오기의 측면마저 엿보인다. 나아가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경고하면서 자신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정당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장 이라크전에 매진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의 긴장고조가 매우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 가능성을 흘리는 것도 사실은 북한의 압박전술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북한은 오히려 미국이 예상했던 수준 이상으로 긴장을 높여갔고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압력에 굴복해 대화에 나서느니 차라리 한계선을 후퇴하면서 이라크 문제를 우선 해결한 후 대북 강경대응을 지속하겠다는 판단을 한 듯 하다. 

이라크 전쟁 이전에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북한의 압박과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과의 대화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오기가 충돌하면서 최근까지 한반도는 끝모르는 대결국면만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 선제공격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한계선 즉 핵재처리 시설 가동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밖에 남지 않았다. 북한의 한계선 월선과 미국의 영변 폭격 그리고 북한의 반격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는 끔찍한 재앙에 휩싸이게 된다.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지금의 북핵위기는 1993년의 경우보다 훨씬 위험하다. 당시와 달리 미국은 반테러의 명분으로 세계 곳곳에서 외로운 전쟁을 감수하고 있고 실제 이라크 전쟁을 강행했다. 북한 역시 과거 클린턴 정부식의 양보만을 기대하며 여전히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극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지금의 북미간 긴장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예의 오만한 북핵접근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라크 전쟁이 미국 의도대로 단기간에 끝날 경우 그 오만함은 더 추진력을 가질 가능성마저 있다. 미국 내 정치지도자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한반도 유관국으로서 남한과 중국 러시아 등이 한결같이 북미 양자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도 여전히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감행하고 또 실지로 성공으로 이끌게 된다면 당연히 부시 행정부의 대북입장은 한반도에서도 또 한번의 `군사공격 시나리오`를 뿌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느낄 것이다. 주변 당사국의 적극적 지지가 없이도, 북한이 실제 핵을 가졌거나 테러단체와 연계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이도 미국은 눈엣가시 같은 북한을 한번 혼내주고 싶은 오만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3. 미국식 오만함: 근본주의적 선악구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북핵해법에서 미국식 오만함의 그림자를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의 원천이다. 전쟁보다는 평화적 방법으로, 대결보다는 대화로, 강압보다는 협상으로 문제를 풀려는 것이 우선적인 해법임에도 미국은 자신들의 신념에 갇혀 타국에 대한 오만한 주관과 오만한 행동에 익숙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9·11 테러 이후 증폭된 미국 사회의 광범위한 근본주의적 선악구도와 자기최면적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이와 관련 얼마 전 가수 조영남씨가 일간지에 쓴 에세이는 아직도 필자의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공연을 위해 워싱턴을 찾은 그가 환영 나온 교포들과 식사를 하려는 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 모두 익숙하게 `다같이 기도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이어 스케줄에 따라 교민방송에 출연한 그에게 또 다시 아나운서가 자연스럽게 `기도하고 시작하자`는 제안을 해서 어안이 벙벙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가 이유를 묻자 한결같이 `여기서는 다들 그렇다`는 태연스런 반응을 보였다는 글이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사회의 기독교 중심적인 생활패턴이 알게 모르게 그곳에 살고 있는 교포들에게도 확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이에 더하여 부시 대통령의 첫 일과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이라는 언론 보도는 하나님을 앞세운 근본주의적인 선악구도가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기독교 중심의 근본주의적 자기신념이 강화되면 될수록 미국은 자신이 그려 놓은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에 따라 외부세계를 판단하게 되고 나아가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악의 요소들은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하는 `과도한` 의지를 표출하게 될 것이다. 행여나 이번 이라크 전쟁이나 향후 북핵해법이 이같은 독선적인 선악구분법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신념의 과잉이 빚은 역사적 오만이 될 것이다.

그들의 오만이 불행스러운 것은 그것이 자기최면에 걸려 현실에서의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오만에 의해 애꿎은 이라크 국민과 한반도인들이 이유없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미국의 오만한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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