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민화협 정책실장, 통일뉴스 편집위원)




2000년은 통일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뜻깊은 해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6.15 공동선언이라는 민족통일의 이정표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과제는 6.15 선언을 실천하는 것과 내년에 있을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6.15 선언 실천과 2차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 거족적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간통일운동이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고 평가와 반성을 하는 것은 한 해를 보람있게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뜻깊게 맞이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6.15 선언 실천과 2차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준비라는 기준에 따라서 2000년 한 해의 통일운동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2000년 한 해 동안 민간통일운동은 매향리, 한미행정협정 개정 등 대중적 반미운동을 전개하였고, 8월 행사에서는 단결된 모습을 보였으며, 10월달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행사에 참가하여 정당 사회단체교류의 첫발을 내딛었다. 6.15 선언 실천이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해서 단결의 기운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되 2001년에 통일운동의 큰 성과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몇가지 반성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6.15 선언을 훼손하는 조짐들

6.15 선언이 발표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6.15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이 성실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6.15 선언을 훼손하려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6.15 선언 이후 남쪽의 상황에 대해서 "정부는 성과를 독점하려 하고 있고, 야당은 민족문제를 쟁점으로 삼는 발목잡기에 연연하고 있으며, 민간운동은 방관하고 있다"는 냉소적인 지적도 들린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변수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정책, 남쪽 사회내부의 남남갈등 그리고 경제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이후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앞으로 남북관계를 전망하는데 중요한 변수이지만, 6.15 선언 이후 지난 민간통일운동을 평가하는데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없다.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남남갈등은 민간통일운동이 6.15 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거족적인 뜻을 모으기 위한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 민간통일운동은 6.15 선언 이후부터 남남갈등을 해소하는데 힘을 쏟아야 했다.

6.15 선언 이후의 남남갈등은 남북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여야의 갈등, 통일문제를 특정집단의 문제로 굴절시키는 지역감정, 통일문제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 등 다양한 성격과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남남갈등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국내적인 성과로 축적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에 반비례하여 현정부의 성과를 부정하는 냉소적인 시각이 증대하고 있다. 민족문제가 현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문제의 발전을 가로막아보고자 하는 중심세력은 수구세력이다. 수구세력이 여야갈등이나 지역감정, 이념적 갈등을 활용하고 있다.

수구세력은 여야갈등, 지역감정, 이념의 갈등을 이용해서 `북한에 당했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노벨상을 위해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는 논리를 유포하였다. 지역을 초월해서, 이념을 뛰어넘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힘을 모아나가는 것이 통일운동이다. 그런데 통일운동진영은 수구세력들이 지역감정, 여야갈등. 이념대립을 이용해서 민족의 화해를 가로막기 위해 온갖 논리를 퍼뜨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왔다.

민간통일운동은 6.15 선언을 실천하고 2차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거족적인 힘과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는 바로 이 점을 가장 먼저 평가해야 한다. 지역과 이념과 여야를 뛰어넘지 못하고 지역, 이념, 여야대립이 통일의 길목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한계

물론 이 점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정부 당국에게 있다. 현재의 남남갈등 구조속에서는 현정부가 남북대화에서 성과를 거두면 거둘수록 이에 반비례하여 현정부의 성과를 부정하는 냉소적인 시각은 증대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현정부는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민족문제를 정국 돌파구의 수단으로 삼거나, 민족문제에 대한 성과를 현정부의 성과로 독점하려고 한다면 더 큰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정부는 남북관계의 성과에 대해서 지나치게 독점해왔다. 정부는 남북관계의 성과를 국민적 공유영역으로 바꾸어 내려고 해야 한다. 남북대화의 성과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민간차원의 다양한 통일노력과 온겨레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그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 과거정부에서부터 추진해온 7.4 남북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은 화해협력을 위한 노력을 인정한다면 이를 추진해온 세력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할 필요가 있다. 또 다양한 세력들이 남북대화의 성과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남북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처지에 맞는 참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수구적인 논리에 대한 대응이 부족

민간차원에서는 남남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남남대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남남대화는 이념과 지역을 넘어서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한 길이다. 6.15 선언 이후 민간통일운동 단체는 통일운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통일운동의 대중화는 6.15 선언의 실천을 목표로 한다. 통일운동의 대중화는 대중의 힘과 지혜로 6.15 선언을 실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통일운동단체들의 수준과 눈높이를 척도로 삼을 필요가 없다. 연방제 통일이나 주한미군 철수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다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경우에는 항상 통일운동단체들의 눈높이에 따라서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6.15 선언 이후에는 거족적으로 지역과 이념을 뛰어 넘어서 6.15 선언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6.15 선언을 해석하는 것도 통일운동단체들의 눈높이에 따라서 진행되어서 결과적으로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6.15 선언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과 성과가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지역과 이념의 대결로 6.15 선언 이후 민족화해를 위한 남북의 노력을 폄하하는 여러 가지 수구적 논리에 대한 대항 논리를 개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냉철하게 지적해야 한다. `속도조절론`, `일방적 퍼주기`라는 수구세력의 논리를 대중의 목소리로 비판할 수 있도록 통일운동단체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운동방식과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상회담에 대한 이해의 부족

한편 6.15 선언 이후 통일운동단체 사이에서 일시적인 혼란이 있었던 것은 6.15 선언의 배경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6.15 선언을 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통일운동단체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폄하하기에 바빴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반대가 남북정상회담을 폄하하는 분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과거에 7.4 공동성명이나 남북 기본합의서도 남북의 정권 사이에 합의한 것이지만 온겨레의 통일의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운동단체들이 이를 지지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조금만 충실했다면 정상회담을 폄하하는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정상회담이 우리의 민족문제를 우리 스스로 힘으로 풀어나가는 계기라는 인식을 하였다면 정상회담을 폄하하지 않고 6.15 선언을 합의하고 돌아오는 대통령을 환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나 91년에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교해도 그 배경이 달라 보인다. 7.4 성명은 미국 중국 사이의 데땅뜨, 남북기본합의서는 세계사의 탈냉전이라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6.15 공동선언은 남북이 주체적으로 민족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동북아질서를 새롭게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이처럼 6.15 공동선언을 민족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6.15 선언 이후 혼란에 빠졌고, 그 결과 대중적 통일운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역량을 모으지 못했다.

6.15 선언 이후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지난 시기와는 그 배경이 좀 달라 보인다. 한국 현대사에서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된 것은 세 차례다. 첫 번째는 4.19 직후 학생들과 혁신계에 의해서 통일운동이 활발해 진 때이다. 두 번째는 87년 6월항쟁 직후이다. 88년부터 학생운동, 종교계, 재야단체에서 통일운동을 다시 활발해졌다. 세 번째가 바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이다.

앞의 두 경우는 4.19 혁명과 6월항쟁이라는 민주화운동의 결과 국민들의 민주의식이 성숙해져서 통일운동이 발전했다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의 경우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앞의 두 경우와 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통일운동의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통일운동은 통일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운동에서 대중의 힘으로 실질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즉 남북정상회담으로 달라진 정세에 맞게 통일운동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통일운동은 무엇보다도 통일운동단체 중심의 통일운동에서 국민들의 참여를 높이는 운동으로 발전해야한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방향에 따라서 국민의 뜻을 모으고 참여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6.15 선언 2항에 대한 실용적 접근 부족

6.15 선언에서 아직까지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2항이다. 수구세력들이 2항을 빌미로 해서 6.15 선언을 반대하는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런데 통일운동단체들은 2항이 연방제의 수용이라는 자의적인 해석에 머물렀다. 2항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통해서 통일을 이루는 방안에 대한 활발한 국민적 논의를 벌이지 못했다.

남북의 두 정상이 서명한 6.15 남북공동선언에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합제안` 은 남측의 역대 정부가 주장한 `남북연합`과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의 첫 단계인 `국가연합`을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남북연합이란 노태우 정부 시절에 통일로 가는 중간단계로서 설정한 개념으로 외교권과 군사권을 지방정부가 갖는 국가연합과 동일한 개념이다. 다만 국가연합이 두 개의 한국을 추구하는 분단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남북연합`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이번에 처음 사용한 개념인데 1991년 김일성 주석이 언급한 `느슨한 연방제`와 유사한 개념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느슨한 연방제와 다른 점은 양쪽 정부의 정치, 군사, 외교권을 그대로 두고 민족통일기구를 세우겠다는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남측 정부가 주장해온 남북연합에서도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북이 정치, 군사, 외교권을 양쪽 정부에게 그대로 두고 민족통일기구를 세우겠다는 것은 남북연합안에서 제기한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를 구성하는 것과 많은 공통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남북연합의 각종 기구와 민족통일기구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해서 실용적인 논의를 전개했을 필요가 있다. 또 정상회담, 남북장관급회담과 남북군사회담으로 진행되는 남북간의 대화채널이 남북연합에서 언급하고 있는 남북각료회의로 발전할 가능성, 내년 봄 서울에서 예정되어 있는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남북연합안의 남북정상회의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민족통일기구를 이야기하고 있는 북측의 방안과 동일성과 차이성이 무엇인지도 언급한다면 2항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은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통일운동진영은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 역시 이와 같이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1년은 또 한번 우리 민족이 화해와 통일의 길로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해가 될 것이다. 통일운동단체들은 6.15 선언과 2000년 통일운동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평가해야 2001년을 대중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하는 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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