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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1민족대회,평화로서 평화를 찾는 노력은 계속된다-정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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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3.03.0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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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곤(2003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준) 공동정책팀장)


이번 3.1민족대회는 `평화 만들기` 기회

평화를 이루는 방법, 그리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민간단체가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통일운동을 하는 모든 민간단체의 화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월 1일부터 3일 사이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진행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3.1민족대회)는 남과 북의 민간단체에게 주어진 또 한번의 `평화 만들기` 기회였다.   

2003년 1월 24일 평양 고려호텔. 이곳에서 3.1절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기념하자는 약속이 이루어졌다. 남측은 남북 실무접촉을 앞두고서 3.1절 기념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문제에 대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남측이 고민하던 문제는 평양에서 느껴지는 강한 긴장감이었다.

그 긴장은 북미사이의 제네바합의 위반 공방이 빚어낸 군사적 대결 가능성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북측은 남측이 알고 있던 그대로 이 긴장이 미국에 의해 조성되고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었다. 남측은 3.1절 공동행사 제안을 망설였다. 그러니까 남측의 기억 속에는 평화를 이루는 남과 북의 방법상의 차이문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이번의 경우에도 그 문제가 장애가 될 수 있었다.

그 기억은 2002년 초입에 `새해맞이남북공동모임`을 준비하면서 처했던 어려움에 대한 것이었다. 그 해에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북한은 악의 축` 발언은 북미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는데, 마침 발언 당사자인 미국 대통령의 방한일정과 `새해맞이남북공동모임`의 개최시기가 비슷하여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당시 남측은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고 있을 때일수록 남과 북의 민간인들이 모여 민속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아주 우애 깊은 행사를 치른다면 현재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는 평화로서 평화를 지키는 원칙이기도 했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식, 즉 대결을 종식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라는 사고방식을 뒤집어 보는 발상의 전환이기도 했는데, 이것이 참 기특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북은 그렇지 않았다. 북은 남측이 같은 민족으로 당연히 자신들을 도와주어야 하며 함께 미국에 항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행사는 무산되고 말았다. 남과 북의 민간행사가 미국에 대한 항의 집회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정부가 참석자 일부를 불허하고 북이 이를 이유로 행사 불참을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3.1민족대회, 북측의 우호속에 남북 종단이 함께 치러

그런 우려가 깊었던 탓일까, 3.1민족대회는 그 날의 평양과 2월 9일의 북경 그리고 2월 26일의 금강산 등 예외적으로 세 차례의 사전 실무접촉을 거치면서 성사되었다. 또한 이번 행사는 남과 북의 종단이 주관하는 것으로 하였다.

이는 3.1운동이 종교계 지도자들이 앞장 서 이룬 쾌거라는 당시의 역사에 기초하는 동시에, 그간 7대 종단이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를 구성하여 매년 3.1절에 행사를 진행해온 3.1운동 계승의 역사를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3.1대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북측 종교인들이 남측 종교행사에 참가하기로 하였는데 이로서 3.1대회가 남북 종교인들의 교류라는 새로운 역사의 개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3.1민족대회는 대회 개최의 발표와 동시에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올해의 3.1절은 보수와 진보단체가 시청 앞 광장과 종묘공원에서 각각의 정치행사를 계획하고 있어 남남간 견해차의 대두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보수단체는 반핵을 주제로 북을 성토하고자 집회를 계획하고 있었고 이는 재미교포를 포함하여 구조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 일부 반영되어 있기도 했다. 진보단체는 진보단체 나름으로 미군에 의해 희생된 어린 여중생의 죽음을 상기시키면서 미국과 한국의 대등한 관계를 촉구하고 있었다. 바로 이 와중에 3.1절 남북공동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3.1민족대회는 남북공동행사, 남북교류행사의 역사에서 새로운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이 행사를 종교인들이 주관한다는 남과 북의 합의가 주는 의미가 컸던 때문이었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던 종교인들에 대해 북측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오지 않았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이 행사를 종교인들이 주도하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였다.

또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종교인들이 주관하는 행사인 만큼 이번 대회가 평화로서 평화를 이루는 대회, 평화만을 얘기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대회, 남북 화합의 대회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3.1대회는 보수와 진보의 별개 행사로 자칫 남남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올해의 3.1절을 남북화해와 남남화해의 날로 만드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이는 대회주최측에게는 어렵고도 어려운 실험이자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였다.   

3월 1일 오전 9시 10분, 장재언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105명의 북측 대표단이 서해 직항로로 인천에 도착함으로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는 시작되었다.

북측, `외세에 의한 전쟁위협`과 `민족공조` 강조
남측은 `한반도 평화위기`, `민족단합` 강조

3월 1일 오후 4시, 예정된 3.1절 기념식이 늦어지고 있었다. 평화를 이루는 방법의 차이 문제는 첫 공식행사를 앞두고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은 북측이 서울의 모든 행사장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조절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화해와 협력"이라는 남북의 합의 틀을 유지하려고 했던 남측에 비해 북은 계속 그 합의 틀을 정치 합의 틀로까지 키우려고 하는데서 문제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북측이 함께 하자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외세에 의한 전쟁위협`과 `민족공조`였고, 이에 대해 남측이 제시한 표현은 `한반도 평화위기`, `민족단합`이었다. 사실 이 두 가지 의미 차이는 큰 것이었다. 이것을 단지 어휘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이 두 가지에는 위기의 책임 문제와 문제해결의 방도문제에 관해 입장표명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측이 이 문제에 대해 "한반도 평화위기"와 "민족단합"이라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이유는 위기의 책임문제에 있어서나 대응방법에 있어서 남측 내부의 견해가 다양한 데다가 북측과 함께 하는 대회에서는 특히 특정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불가하기 때문이었다.

북은 "민족공조해야지요"라고 말하고, 남측 또한 "그래야지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것이 공동의 문서로 나타나는 순간 `국제공조` 혹은 `한미공조`와 정치대립선상에 위치 짓게 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문제는 남과 북의 입장차이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입장을 맞추어야 할 것이 있고 또 아직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남북민간대화 틀의 규정이다.

북은 적어도 행사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오전까지는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 남측의 요구를 모른 체 하며 막무가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본대회에서의 연설이나 특히 
남측의 모든 관계자들이 화해와 일치의 장, 평화로서 평화를 이루는 장이 되리라, 철두철미 믿고 있었던 3.1대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종교모임에서까지 북은 자신의 주장을 폈던 것이다.

북측은 이번에 서울을 오면서 결코 마음이 편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쟁의 긴장이 감도는 평양을 떠나오면서 그들 마음속이 어떠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행사를 남측의 7대 종단이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남갈등의 증폭 요인이 될 수 있는 북측의 태도에 대해, 절제될 수 있는 수준에서의 비판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6.15 공동선언의 당사자 원칙 실천기회

3.1민족대회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로 표현되었던 6.15 공동선언의 당사자 원칙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가는 또 한번의 소중한 기회였다. 이번 대회는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될수록 북이 미국과의 대결을 예비하는 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남북사이의 화해와 협력으로 더 나서는 방식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것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북민간의 공동행사를 상시적으로 개최하고 구조화할 수 있는 가 하는 문제이다. 적어도 남북 민간공동사업의 상시적인 실시는 국제사회에 우리의 평화 만들기 방식을 제안하고 동의 받는 근거로 될 수 있기에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이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고 있고 이를 국제사회가 인정하게 된다면 어떤 세력도 북한의 위협을 한반도 긴장의 이유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대회는 북이 3.1절 기념행사의 중심으로 남측의 종단을 인정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 남측 민간단체와의 행사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전개하는 장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일각의 의혹을 해소시키지는 못했다. 

다른 한편에서, 이번 대회는 민간단체가 특정 계기를 통한 행사만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식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을 또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군사와 외교, 안보에 관한 주제를 민간이 어떻게 포괄하면서 평화운동의 틀을 확장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절실한 주제이다.

북측이 아시안 게임에 참여한 것이나 북의 고구려 유물이 서울에서 장기간 전시되는 것은 하나의 예가 될 터이지만 동북아 민간 평화네트워크의 형성과 공식부분에의 의견개진 구조에 북을 참여시키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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