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노무현 16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의 꽃은 취임사다.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국정목표와 이를 실천할 국정과제를 제시하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라는 제목의 취임사를 발표했다. 특히 최대 관심사인 대북정책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평화번영정책`으로 정식화하면서, 전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과 차별화를 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미래는 한반도에 갇혀 있을 수 없다면서 `우리 앞에는 동북아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언명했다. 진정한 동북아 시대를 열자면 먼저 한반도에 평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면서, 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증진과 공동번영을 목표로 하는 `평화번영정책` 4대원칙을 제시했다.

4대원칙은 ▲대화해결 ▲신뢰와 호혜 ▲남북 당사자 중시의 국제협력 ▲국민적 참여와 초당적 협력 등으로 요약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처럼 4대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번영정책`을 채택한 것은 전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되 그동안 비판받았던 추진방식을 `투명성과 참여` 확대차원으로 바꾸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이제 첫출발을 하는 노무현 정부와 그리고 이제 막 정리된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뭐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정철학을 제시해야 할 취임사 어디에도 `민족`과 `통일` 그리고 `6.15 공동선언`과 관련된 내용이나 그 단어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심각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노무현 판(版) 대북정책이자 통일정책이라 할 `평화번영정책` 내용의 어디에도 `민족`이나 `통일`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평화정책이 되는 셈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 남북간 문제는 `통일문제`이지 `평화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대북정책은 평화정책이 아닌 통일정책이 되어야 한다. 평화문제는 북미간의 문제일 뿐이다. 이른바 `북핵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문제로서, 주요하게는 북미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그 알맹이는 까먹는 즉 민족문제와 통일정책을 피해간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이는 하루 전날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사로 발표한 `위대한 국민에의 헌사(獻辭)`와 비교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와 개성공단의 건설이 남북을 하나의 `민족경제`로 연결하는 힘찬 출발이 될 것이며,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다가, 서로 안심할 수 있을 때에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길로 가야 할 것`이며, `민족의 분단은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우리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하며, 특히 말미에서 `갈라진 우리 민족에게 평화와 통일의 축복이 있으소서`라며 끝맺고 있다.

물론 `민족`을 말로만 수백번 강조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민족`을 한번도 꺼내지 않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이든 북이든 특히 최고 지도자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태어난 이상 운명적으로 `민족`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더 나아가 `평화번영정책`이라는 대북정책.통일정책에서 `민족`과 `통일`이라는 단어조차 빠져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은 시작이다. 얼마든지 보완할 수도 고칠 수도 있다. `민족`과 `통일`을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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