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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 넓은 졸업식장에 당신은 없었습니다" - 김소중양심수 남편 하영옥씨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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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3.02.21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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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9년 8월 소위 `민족 민주 혁명당` 사건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된 하영옥씨의 부인 김소중씨는 남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김소중씨의 탄원서 보기 :  탄 원 서

하영옥씨가 구속되던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큰 아이 정연이는 아빠가 참석하지 못한 채 졸업식을 치러야 했다.

하영옥씨의 부인 김소중씨가 자신의 애절한 심경을 담은 글을 보내와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 주)


▶20일 탑골공원에서 진행된 460회 목요집회에서 하영옥씨
부인 김소중씨가 둘째 딸인 혁춘(7세)이와 함께 탄원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나의 당신! 보셔요!
 
어느 덧 세월은 흐르고 흘러 3년하고도 반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당신없이 보내야 할 8년이 아직 반도 더 남아 있지만... 어쨌든, 살아 있으니 느릿느릿 더디게 8년을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막막하고 서럽고 힘겨웠던 시간들이었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살아 있음이 어찌나 무겁고 아파오던 지 남모를 눈물을 많이도 흘렸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엾고 지친 모습들로만 가득 차 있는 듯 하였습니다. 당신과 아이들을 놔 두고 홀로 죽음의 문전까지 다녀오기도 하였지요. 그랬어요. 늘어질대로 늘어지고 지칠대로 지쳐 버려 그어떤 충격도 흡수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오히려 커다란 사고에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 하더군요. 아빠도 없이 엄마가 당한 교통사고로 어린 아이들이 받았을, 그리고 당신이 겪었을 고통은 아마 말로 표현하기 어렵겠지요. 다섯살짜리 혁춘이가 "우리 엄마가 죽을 뻔 했다. 기도해 달라"고 하여 혁춘이가 다니던 선교원의 목사님께서 그 눈망울이 발길을 잡아 문병을 오셨었다 했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당신의 말이 생각이 났어요. "가장 바닥에선 위만 보인다"고 했었지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죽을 수도 있었던 커다란 사고를 겪고 나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겁 많고 눈물 많고 사소한 작은 일까지도 당신없인 할 수 없었던 나에게도 조금씩 힘이 생겼습니다. 당신의 팔을 빌리지 않고는 곤한 잠을 청할 수 없었던 내가 오히려 곁에 사람을 두고는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되었지요. 어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내려는 노력의 영향이겠지요.

그래서 일까요?
정연이와 혁춘이는 아빠와 엄마없이 식사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더 이상은 어색해 하지 않습니다. 또래의 아이들처럼 응석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무엇을 해달라 사달라 조르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고집을 피우지도 않습니다. 휴일에도 왜 나가느냐 언제 오느냐고 묻지 않고 다만, 잘 다녀오시라 안녕히 다녀오셨냐는 인사를 할 뿐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대견함과 가슴아픔입니다.

그렇게 자란 정연이가 오늘 초등학교 졸업식을 하였습니다.
당신없는 빈자리를 대신하여 선물을 사들고 먼곳까지 와 주신 선배와 동지들... 그 사랑이 깊고 커서 우리 모두 행복하고 기뻤답니다.

하지만, 당신!
아무리 메우려 하고 채우려 해도 그 넓은 졸업식장에 당신은 없었습니다. 그 어디를 둘러 보아도 당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올 수가 없었습니다. 또 휑하니 가슴을 한줄기 바람이 훑고 지나갑니다. `바보같이...` 하면서도 눈물이 핑 돌고 말았습니다.

편지로 축하를 대신할 수밖에 없는 당신, 그래서 오늘 하루 내내 그 어느 때보다 애달팠을 당신입니다. 정연이가 대표로 나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미안함을 함께 느꼈겠지요. 마음은 벌써 이곳으로 달려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미소를 머금으며 바라보고 꽃다발을 안겨 주고 사진도 찍어 주었겠구요. 꿈속에라도 만나자던 당신의 말이 귀에서 맴돌고 있어요.
나 오늘 밤! 그런 당신을 조용히 불러 봅니다.

며칠 전,
너무나 아득하여 웬지 당신이 영영 나와지지가 않을 듯 하여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로는 4년 반 밖에 안남았다 하면서도 앞으로 더 많이 남은 세월을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 체증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그 남은 시간동안 우리 아이들의 또다른 입학과 졸업이 있는데... 혁춘이는 초등학교에 가면 아빠가 나온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누가 묻지 않아도 학교 가면 아빠가 나와서  같이 살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데...

예쁘고 착한 우리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아빠없는 가여운 아이들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요? 언제쯤이면 우리 아이들이 당신 손을 붙잡고 해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요? 아빠와 무엇을 하고 싶다가 아닌 무엇을 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요?

지금까지는 당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힘으로 살아 왔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우린 잘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가슴이 시린 건 당신이 아이들과 같이 하지 못했던 시간들은 되돌려지지 않고 고스란히 상처로 남고 만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일생동안 아빠가 절실하게 필요할 시기에, 인격을 형성하고 배움을 줄 때에 아빠의 부재로 하여 아이들에게 생긴 공백은 어느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땅이 꺼지는 한숨을 토해 냅니다.

하지만 당신!
이제 더이상 한숨만 쉬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지만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고 알아지면서 나역시 당신의 동지들을 자연스럽게 나의 동지로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내곁으로 올때쯤이면 난 아주 강해져 있을 거예요. 잘 살아내고 있을 거예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누구보다 당당하고 꿋꿋하게 당신이 감옥 문을 박차고 나올 때까지 살아갈 거예요.

2003. 2.19   당신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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