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 커다란 일 두 가지를 치뤘다. 하나는 6월 남북정상회담이고 다른 하나는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수상이다. 이 두 가지 대사(大事)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용기`다. 김 대통령의 평양행 자체가 하나의 용기였고 노벨위원회도 수상 이유에서 김 대통령의 인생역정을 용기에 비유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으며", "김 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라고 한껏 추켜세웠다. 또한 노벨위원회는 수상 이유에서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자 한 김 대통령의 용기를 언급하면서, "시인의 말처럼,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라고 김 대통령을 첫번째 물방울에 비유, 그의 용기를 칭송했다.

그러나 올해 김 대통령을 빛내준 이러한 용기가 최근 왠지 `용렬`(庸劣)하게 비쳐질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또 한번의 진정한 용기를 내야할 때 자꾸 실기(失機)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차 노르웨이를 방문중이던 김 대통령은 "내년 봄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보다 한 단계 높은 합의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때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또는 군축 등 가시적인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 방안들이 논의될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 과제는 분명 해결되어야 하지만 당장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남북미를 둘러싼 첨예한 이해관계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김 대통령의 남북간 평화협정체결과 이를 위한 4자회담 방안은 북측과 그 입장이 다르며 미국과도 일치하지 않고 있음은, 최근 한 토론회 석상에서 전직 외무장관도 밝힌 바 있다.

과연 지금 시기 6.15공동선언보다 한 단계 높은 합의가 꼭 필요한가? 다섯개 항으로 된 6.15합의는 실질적인 통일강령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것만 잘 지켜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은 가능하다. 과거에 통일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남북공동성명(1972)이 있었고 또 화해와 불가침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1991)도 있었다. 이들 합의만 잘 지켰어도 남북의 불신과 적대적 관계는 오래전에 청산되었을 것이라고 김 대통령은 누차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6.15선언보다 한 단계 높은 합의를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6.15합의를 잘 지키는데 있다. 6.15합의의 큰 정신은 남북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남쪽에서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바로 국가보안법과 주적(主敵)개념 문제이다.

최근 김 대통령이 용렬하게 비쳐짐은 이들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명확한 표명없이 `한 단계 높은 합의`와 같은 다소 수사학적인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니 용기를 발휘할 수가 없다.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하니 진정한 용기라 할 수 없다.

화해와 협력의 당사자인 북측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 되었어야 할 법이다. 인권 대통령과 국가보안법! 화해시대와 국가보안법!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지난 13일 민주화운동 원로 15명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긴급호소문을 김 대통령에게 보냈다. 호소문은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회라며 `김 대통령이 의지와 결단, 강한 지도력을 발휘해 국보법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한 `2000년 국방백서`에서 언급된 주적개념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북측의 각종 법과 간행물에 따르면 `남한은 북한의 주적`이라는 주적개념은 북측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도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명시적으로 밝히거나 채택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미국은 북측에 대해 `불량국가(Rogue States)`에서 `우려대상국(States of Concern)`으로 표현을 바꿨지만, 불량국가든 우려대상국이든 모두가 주적과는 다른 개념이다.

`새로운` 한 단계 높은 합의를 이루기에 앞서 `기존의` 6.15합의를 지켜야 한다. 남쪽에서의 그 구체적인 실천은 국가보안법과 주적개념 등의 폐지이다. `북한은 변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양보하는가`라는 일부 견해는 억견(臆見)일 뿐이다. 6.15선언은 민족의 앞길을 남북이 합의한 것이다. 남과 북은 합의한 내용을 누구라 할 것 없이 먼저 그리고 성실히 지키면 된다.

물론 이들 문제에는 북측이라는 상대방이 있고, 정치적으로 야당이라는 반대편도 있고 또 같은 당내에도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족적 공감과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룬 6.15선언을 이행하지 못하고 또 남쪽의 근본문제마저 풀지 못한다면, 김 대통령의 평양행 용기도 첫 번째 물방울의 용감함도 한낱 용렬함에 그칠지 모른다.

이제 김 대통령의 또 한번의 용기가 필요할 때다. 용기는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천임을 김 대통령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보여준 바 있다. 통일시대를 맞아 국가보안법, 주적개념 등 북측을 적대관계로 규정하는 제도와 용어를 폐지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내년 봄 서울에 올 수 있는 화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 단계 높은 합의도 가능하다. 모두가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으로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것만이 6.15합의를 지키는 것이자 노벨평화상을 값나가게 하는 진정한 `용기`일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