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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문예인 심영.신불출 행적 비교
연합뉴스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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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3.02.1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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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선영기자 = 방영중인 SBS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남로당 간부 심 영과 신불출은 월북 이후 북한의 문예발전에 크게 기여한 핵심적 예술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남로당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북에서 일시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정치와 인연을 끊은채 문예활동에만 전심전력한 결과 비교적 무난한 삶을 유지했다고 한 탈북 문예인이 전했다.

북한 백과사전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대백과사전` 제15권(2000)에 따르면, 서울 출신인 심 영은 광복전 학비난으로 서울 배제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연극배우로 활약하면서 `춘향전` 등에 출연했다.

북으로 들어간 뒤 심 영은 북한의 첫 예술영화인 `내고향`(1949),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 `정찰병`(1953), `벗들이여 우리 함께 가자`(1960), `두만강`(1960), `다시 찾은 이름`(1963) 등 우수작으로 평가된 영화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는 또 대표적 영화제작사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연기과장, 조선영화인동맹 위원장, 평양 연극영화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특히 그는 영화에서 지주역, 미군 사단장역, 완고한 중국인 반일부대장역 등 부정적 이미지의 `악질` 역을 맡아 개성있는 연기로 북한 주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연기를 참 잘한다"는 평가를 여러차례 받았다고 탈북 문예인들은 전했다.

그 공로로 당시로는 흔치 않았던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심 영은 60년대 말 남로당과 인연이 있는 문예인들이 처벌될 때 일시 평남도 안주로 추방되기도 했으나 곧 평양으로 소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망날짜는 1971년 7월 24일로 확인됐다.

심 영과 달리 신불출의 행적에 대해서는 70년대 이후 발행된 북한 출판물에 기록된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 출판된 일부 자료에 따르면, 신불출은 월북 후 1957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중앙위원, 1961년 국립만담연구소 소장, 66년 중앙방송위원회 만담가로 활동했다.

중앙방송위원회 극작가로 활동했던 장해성씨는 "신불출의 만담은 당대에 유명해 두터운 책자로도 발행됐다"며 특히 서울의 전력난을 풍자한 `서울의 전기세`, 미국을 비난한 `승냥이` 만담은 주민들 사이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고 증언했다.

장씨는 또 신불출이 "한설야 당시 문예총 위원장의 생일축하 좌석에서 한설야를 치켜세우는 발언을 해 60년대 말 지방으로 추방됐다"며 당시 보고를 받은 김일성 주석은 "아주 사상성이 없다"고 신불출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신불출은 70년대초 평양으로 복귀했으나 뇌출혈 때문에 만담가로서의 활동을 전혀 못한채 곧 사망했다고 장씨는 밝혔다.

장씨는 "유명인사에 대한 복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가가 중요한데, 심 영과 달리 신불출에 대한 김 위원장의 평가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 때문에 신불출의 월북 행적에 관한 공식기록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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