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2,235억 원의 돈을 국민 몰래 북한에 건네주었다는 문제를 둘러싼 시비로 서울은 온통 시끄럽다. 한심한 일이다.

우선,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뒷거래로 돈이 오고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시비가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협상에서 뒷거래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삼킬 때, 서독이 동독을 흡수할 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주변제국을 끌어드릴 때, 모두 막대한 금액의 현금 혹은 기타 이권을 포함한 뒷거래가 있었다.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동족끼리 분단이후 첫 정상회담을 여는데 뒷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남북간의 동족관계를 그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은 그 동안 남북을 통치한 위정자들과 그들을 선출하거나 지지해준 한국민 전체의 책임이지, 그런 환경에서 그런 방법으로라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사람들의 책임이랄 수는 없다.
 
둘째로 그 돈이 막대한 금액이란 시비가 있다. 2억불이 큰돈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1년에 외국에서 사들이는 양주 값이 근 2억불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북한에 건네 준 2억불이 그리 큰돈이라 할 수는 없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수상을 만나 대소수교를 따내기 위해 20억불을 줬다. 사후조치로 그 형식을 차관으로 꾸몄지만, 무기형식으로 상환 받는 것도 여의치 않아 탕감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독은 분단시절에 이미 동독에 몇백 억을 퍼주었으며, 소련군을 동독에서 내보내기 위해 40억불의 대소원조를 약속했었다. 

셋째로 왜 비밀로 거래했느냐는 시비가 있다. 이 또한 부당한 시비이다. 한국에는 실질적으로 헌법보다 상위에 군림하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그 법대로라면 정상회담은 물론 모든 남북회담과 접촉은 범법행위이다. 그런 마당에 남북간의 고차원적인 거래를 공개적으로 이행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넷째로 왜 한푼도 안 주었다고 잡아뗐느냐는 시비가 있다. 주고도 안 주었다고 잡아떼는 것은 거짓말이며 거짓말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현행법의 제약으로 정상회담을 위해 북에 공개적으로 돈을 건넬 수 없기 때문에 비밀리에 건네준 것인데, 그것을 따져 묻는다고 어떻게 선뜻 그대로 시인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경우의 거짓말은 부도덕의 소이가 아니라 상황의 강요에 의한 부득이한 결과이다.

말이야 바른 대로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그 결과로 그런 대로 이산가족상봉도 몇 차례 실시되고 남북간에 당국자회담도 진행되어 여러 가지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도 추진되고 있는 마당에,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돈 2억불을 북에 건네준 것을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따지고 떠드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이 문제는 원래 지난 대선기간 중 당리당략에 눈먼 한나라당에서 대여 공격전략의 일환으로 제기한 여러 가지 의혹중의 하나로 튀어나왔다. 이때 한나라당이 노린 것은 첫째로 대북화해와 남북대화 자체를 반대하고 그 성과를 깎아 내리자는 것이었다. 둘째로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한나라당의 뿌리깊은 적대감과 불신감을 널리 확산시키자는 것이었다. 셋째로 그렇게 함으로써 대선에 이기고 재집권의 꿈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김대중 정부와 그 대북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끈질긴 "물고늘어지기" 작전으로 일관해 오던 한나라당에 대해 식상한 국민들은 작년 12월 대선에서 마침내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그래도 "물고늘어지기"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당선무효 소송과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패소하거나 소를 취하하는 창피를 당하였다. 이에 당황한 한나라당이 마지막 승부수로 또 다시 들고 나와 떠들어대는 것이 바로 대북 송금문제 인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88년 올림픽을 유치할 때나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할 때도 뒷거래가 있었다고 듣고 있다. 심지어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배경에 대해서도 뒷거래가 있었다고 의심하는 외국 국가원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내막을 들춰내고 사법처리 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겠는가?

아니면 우리로서는 잘된 결과이니 굳이 따질 것 없이 조용히 넘어가 버리는 것이 잘하는 일이겠는가? 아버지가 비열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어머니를 꼬셔서 결혼했다해서 그 결과로 태어난 자식이 그 부모에게 그 내막을 다 밝히고 잘못했으면 사법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 집안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 문제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폭로하고 따지고 들어 전국을 벌집처럼 쑤셔놓은 것은 결국 한국민 전체의 정치적 미숙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니 그 진실은, 한나라당의 당략을 만족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적어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밝혀져야 할 것이다.

다만 모처럼 화해.협력의 물꼬가 트인 남북관계의 장래를 생각하는 동시에 이제 며칠후면 들어설 새 정부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기왕에 불거진 문제를 대승적으로 풀어가는 슬기를 정치권과 국민이 다 같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측과 일반 국민들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필요하다면 쓴 것도 삼킬 용의가 있어야 한다.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지만 주판만 잘 놓는 것이 반드시 장사 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정부가 탈냉전시대의 대북 협력사업을 합법적이고 공개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냉전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전향적으로 개폐하는데 있어서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이 서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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