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부시의 국정연설

작년 10월 이후 고조된 한반도 긴장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29일 국정연설을 통해 이라크와 이란 및 북한을 `무법정권(outlaw regimes)`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의 심각한 위협을 종식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연합할 것이지만, 미국의 결정이 다른 나라들의 결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어떤 것이든 부시 자신은 미국인의 안보와 자유를 위해 `방어`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여기서 `방어`라는 개념이 중요한데, 미국은 이미 `핵태세검토보고서`와 `국가안보전략`에서 미국의 `방어`를 위해 핵선제공격까지 입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방어`는 핵선제공격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이는 다른 나라의 반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독자적으로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나라들과 함께 북한의 핵개발이 단지 (북한의) 고립과 경제적 침체만을 불러올 것`이라며 경제 제제와 봉쇄 의지를 천명하였다. 이미 북한이 `경제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천명은 북미 관계가 전면적인 대결로 치닫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부시의 국정연설은 선제공격선언이자 붕괴선언이며 경제봉쇄선언이었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핵 선제공격 작전명령

그러나 정세의 긴장고조 원인이 부시의 국정연설만이 아니라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첫째로 <워싱턴 타임스>의 1월 31일 보도에 의하면 부시 대통령이 생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대응책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비밀문서에 서명했다. 지난해 9월 14일 그런 내용을 규정한 `국가안보를 위한 대통령 작전명령`(NSPD)을 승인했으며 이로써 지난 수십년 계속돼온 미국의 모호한 핵 정책이 종말을 고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작전명령에는 "미국은 본토와 해외주둔 미군, 우방과 동맹국에 대한 (대량 살상무기) 사용에 대응해 잠재적으로 핵무기를 포함한 압도적 무력으로 대응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 11일 대량 살상무기에 대응하는 국가전략으로 일반에 알려진 작전명령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사용됐지만 핵무기에 관한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물론 미국과 군사적 행보를 같이하고 있는 영국의 제프 훈 국방장관의 "후세인은 올바른 상황속에서 우리가 기꺼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BBC 방송 인터넷 판)는 발언을 비추어보았을 때 이 작전명령은 당면해서는 이라크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핵태세검토보고서`와 `국가안보전략`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문서에서는 이라크와 이란은 물론 북한까지도 핵선제공격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라크 다음엔 북한`이라며 "이라크 문제를 처리한 다음 유엔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대량파괴무기를 거래하는 기업체들과 개인들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중앙일보 북한네트 2003. 1. 30)

이라크 다음에 북한이 미국과 영국의 군사 공격 대상이 될 것이며, 이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미국의 작전명령은 북한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 "미국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발언이나 지난해 12월 5일 있었던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한반도에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우발 계획을 논의했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1월 16일 이 준 국방장관은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이 안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우리 군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우려`하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아니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에도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는 한국 국방장관의 발언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까지도 의심하게 만들만큼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반도의 병력 증강 방침

둘째, 미국의 한반도 병력 증강 방침이 현실화되고 점이다.
2월 3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의 보도에 의하면 미 국방부는 미 태평양군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한반도 주변 지역에 병력을 증강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은 불변"이며 "병력 증강이 곧 군사행동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고 미국 관리들은 이야기하고 있으나 "태평양사의 이번 요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핵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더 이상 외교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신호"(미국 CBS방송 1월 31일)라는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병력 증강 방침이 최근 보도되었지만 이미 한미 군 당국자간에 면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어 그 엄중성을 더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작년 12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우발 계획`을 논의한 바 있으며, 한국의 국방부가 `국방백서` 대신해서 1월 27일 발표한 `1998∼2002 국방정책`에 따르면 `현재 미군 3만 7천여명이 한국에 주둔중이고 전쟁이 발생하면 신속한 입체기동전을 수행할 수 있는 지상전력, 입체적인 해상 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항모 전투단, 적지종심타격 및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중전력, 일본 오키나와 및 미 본토의 해병기동군을 포함한 69만 전력이 증원`된다는 것이다. 증원 전력은 `한미 연합사의 요청과 미 합참의 지시에 의해 전개돼 한반도 전장에 투입`된다고 한다.(연합뉴스 2003.12.27) 미국과 긴밀하게 군사 논의를 진행해야하는 한미 공조의 틀 속에서 위와 같은 `국방정책`이 한국 군 당국이 독자적으로 작성할 수 없는 일이다.

다양한 군사적 움직임

이 외에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군 당국과 정보 당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2월 3일자)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의 준군사조직인 특수작전그룹(SOG)이 북한에 잠입해 핵시설이나 핵무기를 파괴하기 위한 비밀훈련을 실시했다. 에너지부의 핵무기 전문가들이 SOG 요원들에게 적국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방법을 놓고 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이다.(홍콩 성도일보 1월 28일자) 성도일보는 미국이 북한 핵위기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대화가 실패할 경우 SOG가 출동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비밀훈련은 지난해 5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국방부와 CIA에 대해 핵무기 입수직전 단계에 있는 불량국가들을 선제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비밀 명령서에 서명한 것과 관련하여 단지 `만약을 대비한 훈련`이 아니라 `실질 상황에 대비한 훈련`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의 군사적 움직임이 갖는 한반도 정세의 엄중성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최근 한반도 정세는 1994년의 전쟁위기를 방불케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994년에도 항공모함과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로 인해 정세가 초긴장되었던 경험이 있는데, 최근의 상황은 1994년 전쟁위기의 재연이라고 하기에 충분할 만큼 위험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의 병력 증강 방침이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이 내세우는 병력 증강의 이유는 명확치가 못하다.

미국은 한반도 전력 증강 결정을 `미국의 위성정찰을 통해 북한 영변 핵발전소에서 8천개의 폐연료봉이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 능력이 있는 공장으로 옮겨지는 것을 탐지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으나, 한국 정부는 `그같은 정보를 들은 바 없다`면서 `구체적인 사실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영변 핵시설 주변에서 트럭의 이동이 인공위성에 의해 목격됐더라도 그 트럭 안에 정확히 폐연료봉이 적재돼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 당국자의 말은 폐연료봉의 이동 자체가 사실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즉 미국은 `핵개발 계획 시인설`과 마찬가지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토대로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가 어렵다.

또한 부시의 국정 연설에서  밝힌 경제 제재 및 봉쇄가 실질적으로 취해진다면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또 다른 군사적 대응 행동을 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미국은 북한의 군사적 대응에 한층 더 위험한 군사적 움직임을 하게 될 것이고……. 한반도는 그야말로 군사적 충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최근 군사적 움직임이 정세에서 갖는 또 하나의 엄중성은 6·15 공동선언 이행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공동선언이 나온 이후 남과 북은 당국자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민간급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왔다. 공동선언 발표 3주기를 맞는 올해는 경의선 철도의 개통, 금강산 육로 관광의 실시, 이산가족 면회소의 착공 등 굵직한 사안들을 해결하는 시기이다.

민간급 또한 3월 1일 서울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를 개최하기로 합의 하는 등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불변의 통일이정표로 삼고 민족자주와 존엄, 민족공조, 반전평화를 위한 운동을 적극 벌려 나가며 접촉과 대화, 협력과 왕래를 통하여 각계 단체들사이의 연대연합을 더욱 강화`할 것을 결의하였다. 특히 최근의 남북관계 발전은 북한과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의 `통과 승인권`을 놓고 옥신각신했던 상황을 딛고 이룩된 것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리가 2001년 가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한반도에 내려진 비상경계령의 발동으로 남북 관계가 정체되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최근의 군사적 움직임 또한 2001년 가을의 상황이 재판될 수 있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기에 남과 북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열망하는 우리 민족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긴장이 첨예화되고 6·15 공동선언의 이행에 장해 요인이 형성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법은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과연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위한 과제

최근의 상황은 미국의 침략적 한반도 정책과 북-미 사이의 상호 불신이 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즉 북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침략적 한반도 정책에 의해 북미 관계 정상화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북미 불가침 조약 체결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철회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표면상의 이유로 내세우며 북한을 미국 중심의 세계 구도 속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대북 고립·압살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 정권의 붕괴까지 기획하고 있다. 이렇듯 북미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으며 현재까지 오고 있으며 이러한 평행선은 북미 상호간의 불신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북미 양측이 서로 믿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선행 조치를 요구한다면 한반도의 평화 실현은 요원하다. 따라서 최근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종식하고 `북한 핵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방도로는 북미 양자의 동시행동에 의한 일괄타결 방식밖에는 없다. 즉 서로가 믿지 못하고 먼저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동시에 상대방의 요구에 화답하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그 다음에 구체적인 양자간 대화를 통해 일괄타결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상호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이다. 북한은 이미 NPT 조약을 탈퇴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미국이 원한다면 핵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별도의 검증을 통해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제는 미국이 답할 차례이다. 그 답은 "우리는 북한과 포괄적인 협상을 진행할 용의가 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면 우리는 중단했던 중유 공급을 재개할 것이며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북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고 보장할 용의가 있다.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북미 사이에 진솔한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것이다.

그 후 고위급회담을 진행할 수도 있으며, 미국 대통령의 특사를 평양에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위급 회담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않겠다는 미국에 대한 북한의 보증,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고 보장하겠다는 미국의 보증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이러한 신뢰에 기반하여 관계정상화를 위한 북미 사이의 정치협상을 본격적으로 재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하며, 한반도 평화를 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겠다.

셋째, 한국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 한국 정권은 지금까지 주장해 왔던 북한의 핵계획 포기를 전제로 한 평화적 중재안을 버리고 북미 사이의 전제조건없는 대화와 협상을 촉구해야 한다. 또한 북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일괄타결을 중재안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북미 사이의 일괄타결과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곧 민족의 공멸을 의미한다. 전쟁의 참화를 막아내고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의 생존권의 문제이다. 엄중하게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막는 유일한 길은 북미 사이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불미 불가침 조약 체결의 필요성과 당위성의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