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통일연대 자주교류위원장)


작년 12월26일 평양에서는 북의 언어학회와 역사학회 연합으로 국호의 영문 표기와 관련한 토론회를 갖고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호소문에서는 남측에 이와 관련한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하였다. 한편 작년 월드컵, 아시안 게임, 대선 등에서 KOREA보다는 COREA라는 명칭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호 명칭과 관련한 서명 운동 및 입법 청원까지 벌이고 있는 듯 하다.

국호를 바꾸는 문제는 대단히 신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섣부른 접근보다는 이와 관련한 사실관계 및 정황을 차분하게 검토해 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사안과 관련해서는 크게 아는 바 없다. 그러나 여러 단위에서 촉발되고 있는 논의가 보다 건설적인 논의로 진전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그 동안 조사한 바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사실 관계

1) 북측의 주장

"국호의 영문 표기는 1250년대부터 1800년대 말까지 국제 사회에서 유럽의 어느 어종이나 관계없이 COREA로 공인하여 표기"해왔고 "우리나라 봉건 정부도 국호를 다른 나라들과의 외사 문건들과 조약문들에 COREA로 표기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조선 중앙방송 1.9, 연합뉴스에서)  

구체적으로 1902년 1차 영일동맹 당시 C로 표기되었다가 1905년 카스라-태프트 협정 이후에는 K로 표기되었고, 동일한 맥락에서 20세기 초엽까지도 각국에서 조선해 또는 동해로 표기되어 왔으나 일제 강점 이후 일본해로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안경상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조선말역사연구실장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90년대 이후 이에 대한 연구가 추진되어 왔으나 역사적 사실 확인에만 머물렀다"고 밝히고 있다. 

2) 국호 영문 표기 변경을 주장하거나 일본 조작설을 강조하는 견해들

- 이광훈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고려를 카울리(Kauly), 13세기 중엽 로마 교황의 특사로 몽골을 방문했던 프랑스인 G 뤼브리키의 여행기에는 중국의 동쪽에 카울레(Caule)라는 나라가 있다고 적혀 있다고 소개한 뒤 국호 영문 표기 변경 논의에 대해 적극적이다.

- 96년 7.23 국회통일외무위원회 회의록에는 1875년 7.15 뉴욕 헤럴드지에 조선(Corea)의 여왕이란 설명과 함께 고종, 명성황후 초상화가 소개되어 있고, 1895년 호주학술진흥학회가 발간한 소책자의 우리나라 소개 명칭(COREA)이며, 1890년 7.19 지어진 영국대사관 건물의 초석에도 C로 표기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안수길 교수도 인터넷 기고에서 1890년 7.19에 지어진 영국대사관 건물의 초석에 영어로 C로 표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 1884년 대일본제국 정부 대장성 인쇄국에 의뢰하여 제작된 우표에 C로 표기되었다가 11년 뒤 발간된 우표에는 K로 통일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 1768년 출판된 브리태니커 사전 초판에는 동해가 SEA OF COREA로 표기되어 있다.

3) 2)에 대한 반론

- 고지도 전문가인 국립중앙박물관 오상학 학예연구사는 1840년 작성된 독일 슈페르트 제독의 외교 문서와 1861년 만들어진 중국수로지 등 이미 19세기 이전 서향 문헌에서 Korea로 표기된 사례가 여럿 있으며 독립신문도 Korea를 썼고, 조선총독부의 정확한 영문 표기는 `Government-General of Tyosen`이며 일본은 조선을 `Chosen`으로 표기했다고 지적하며 C가 K로 바뀌는 과정은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영어가 세계어로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 미국 남가주대학 동아시아도서관의 조이스 김 학예연구사는 동아시아 지도자료실의 고지도(17~19세기)에 나와 있는 한국의 영문 표기 역시 K와 C가 동시에 쓰이고 있고, 엘로드사가 발행한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출판된 영어 문헌 색인`도 동일하다고 지적한다.

- 원로 해양학자 한상복 교수는 대한제국의 영문 국호, 독립신문의 영문 제호, 3.1운동 때 발표된 독립선언서의 영문 제목, 하와이에서 발행된 독립 국채의 영문 명칭, 미주 독립운동단체의 영문 국호 모두 K라고 지적한다. 단 상해 임시정부는 C로 표기했다.

2. 평가

1) 13세기 중엽 고려가 서양 세계에 알려지면서 스페인, 포르투칼, 이태리, 프랑스 등 라틴 문화권을 중심으로 COREE, COREA 등으로 알려진 것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바이다. 그리고 여러 객관 사실에 비추어 보면 19세기말까지 C와 K가 동시에 쓰여진 것도 사실이다.  핵심은 일본의 조직적인 개입 여부와 영어가 세계어로 되는 과정에 대한 평가이다. 

2) 일본의 개입을 주장하는 견해는 북측의 1차 영일동맹에서 카스라-태프트 협정 과정에서 영문 표기가 바뀌었다는 주장, 1884년 일본에 의해 발행된 우표의 영문 표기가 C였다가 11년 후에는 K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위 안수길의 견해는 라틴어권에서는 C로 쓰고 독일이나 영어권에서는 K로 썼는 데 영국대사관 초석에도 C로 되어 있으므로 일본 개입 이전의 영문 표기는 C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오상학, 조이스 김, 한상복 등의 주장에 따르면 19세말 C와 K가 병존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인 듯 하다.

문제는 그에 따른 평가인 데 C와 K가 병존하다가(대체로 C가 우세했는 데) 일본이 개입하면서 C가 사라지고 왜 K로 단일화되었는가이다. 이에 대해 위 오상학은 이는 영어가 세계화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다른 견해들은 일본의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논거로 중요한 지적은 동해 명칭과 관련된 부분이다. 동해 명칭은 19세기 후반까지 외국의 자료는 물론 심지어 일본의 자료조차 `조선해`로 통용되어 왔고, 영문 표기로는 역사적으로 `Mer de Coree, Sea of Coree, Chosun Sea of Corea` 등으로 표기되어 왔다고 한다.

그런데 1893년 발행된 일본수산잡지에는 "이미 일본해란 공칭을 가진 이상 그 해상 주권은 우리가 점유한 게 아니겠는가? 국권상 결코 겸연쩍어할 필요가 없으며 그 해상 주권은 먼저 습관상 현재 어로를 하고 있는지 유무에 따라 실적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어선을 이 해상에서 종횡무진케 하고 어업에 힘써 이익을 챙기는 것을 습관화하려고 그 실적을 천하공중에 인식시켜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훗날 이 해상의 주권과 관련해 다른 나라와 논쟁을 벌였을 때 실적을 표명하는 논거가 약해지므로 국권상 불리하게 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이들 또한 깊이 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적고 있다. 일본 수산잡지가 이런 정도라면 일본 정부가 명칭 문제를 그저 영어의 세계화 추세에 맞게 K로 단일화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우습지 않을까?

3) 다음으로 영어가 세계어로 단일화되는 과정에 대한 평가이다. 국호 영문 표기가 K로 정착되는 과정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제 잔재 청산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또 다른 관점에서 COREA를 외치는 정서가 있다. 이는 올림픽, 대통령선거, 아시안 게임 등을 거치면서 생겨난 젊은 층의 역동적인 새로운 문화와도 관련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촛불시위 등으로 표출된 반미, 민족주의와도 일정한 상관성이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북의 호소문에서는 "우리 나라 국호의 영문 표기는 강성한 고구려에 이어 통일국가로 그 이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고려를 어원으로 하여 수세기동안 `COREA`로 통용되고 인정되어 왔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위 조선신보 인터뷰에서 안경상은 아시안 게임 당시 남측 응원단의 `COREA` 표기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일제 조작설을 반박했던 위 한상범도 "KOREA보다는 COREA가 원조 표기이고 K를 잘 쓰지 않는 라틴계 언어 국가에 친숙할 수 있다. COREA는 또한 상해 임시정부가 썼던 국호이기도 하므로 살릴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고, 박성래 교수(외대 사학)도 "KOREA보다 좀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COREA를 사용하는 것은 찬성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Forza Corea`(`힘내자 코리아`의 이탈리아어)라는 구호에 대해 붉은 악마 관계자는 "로고에 Corea를 쓴 것은 Korea보다는 Corea가 한국을 더 잘 나타낸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forza 구호가 애초 이탈리아 말이므로 코리아도 이탈리아어 표기인 Corea를 따른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3. 글을 맺으며

나라 이름은 예민한 정치적 사안이다. 따라서 이를 함부로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라 이름은 그 나라,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서와 취향, 지향과 의지를 잘 담아내는 진취적이면서도 친숙한 것이면 좋을 것이다.

남북 행사에서 자연스럽게 단일기가 펄럭이고 촛불시위에서 신세대 취향에 맞는 아리랑 노랫가락이 불려지는 것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이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월드컵 당시 윤도현의 `오 필승 꼬레아`가 유난히 정겹게 느껴졌던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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