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석(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 강사)


현재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 수식어를 사용해도 모자랄 정도로 `암울`하다. 이런 암울함이 장기간 지속되어 온 탓에 외부의 시선들은 더러는 무디어지고 무관심해져 있으며, 심지어는 식상해 하기도 한다. "북한은 왜 항상 저런 식으로 게임을 하려들까?" 그러나 여기에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근본적인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 잘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이 `진보`이며, 비판적 의견은 `보수`진영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케케묵은 흑백논리로부터 벗어날 때 진정한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암울한 상황에 빠진 북한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으로서 핵문제가 불거졌다는 논리가 존재한다. 과연 그런가. 사실 북한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 등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수십 년 동안 이슈가 되어 온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 정권의 50여 년 동안의 정책적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제국주의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의 합리적 정책 결정구조는 지난 50년 동안 전혀 제도화되지 못했다. 삼척동자만이 주장하는 `외교의 귀재` 국가라는 수식어는 이제 합리적인 분석가라면 그만 쓸 때가 되었다.

우리는 항상 사태의 다양한 측면들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다양한 정책 선택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과거가 현재를, 현재가 미래를 구속하는 법이다. 가령 남북정상회담이 내뿜었던 평화무드는 북한의 외교적 미숙함(대화파트너를 미국으로 삼은 것)과 이로 인한 한국 내 보수진영의 대대적인 공세로 완파되었다. 한국의 보수진영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항상 한국의 진보진영의 합리적 대응의 여지를 박탈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패권적 미국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지만(물론 이유의 많은 부분이다) 북한 권력의 문제해결 능력의 부재도 그보다 결코 작지 않은 이유이다. 현재 2003년 겨울을 나야할 북한 경제는 핵문제를 통해서 막무가내의 `겁쟁이 게임`(chicken game)을 즐길 정도로 결코 목가적이지 않다.

북한이 핵문제에서의 `당당한` 태도와는 달리 지난 1월초에 세계식량계획(WFP)은 올 겨울 북한인민의 1/3(약 700만 명)이 기아에 처할 것으로 예상하고 국제사회에 긴급히 구호를 요청했다.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을 담당하던 국제조직들은 이미 10여 년 동안의 구호활동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인데다 2002년 10월의 `북 핵개발계획 시인` 사태로 국제사회는 인도적 대북 지원을 중단했다. 북한인민의 생존은 이제 기로에 섰다. 이 단계에서 북한은 주민의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할 과업과 이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사상초유의 경제난·식량난에 직면하면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고난의 강행군`을 내걸었던 바가 있다. 군수공장과 핵심중공업공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장이 엔진을 멈추었으며 당시 20∼30%이었던 공장가동률은 현재까지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IMF구제금융위기` 시기의 공장가동률이 80%이었던 것으로 가정한다면 30% 정도의 공장가동율은 보여주고 있는 북한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의 실업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현재 실업자의 존재를 생물학적으로 삭제할 정도로 포악해져 있다.

따라서 50년 동안 북한의 생산력을 담당해 왔던 이들에 대한 이른바 `북한판 뉴딜 정책`을 사용하지 않는 한 2003년 북한의 겨울은 최대의 비극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 자원이 필요로 하며 이미 파산된 북한의 재정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원과 원조가 일차적인 해결책이다. 따라서 북한은 주변정세를 안정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북한의 핵문제가 이 단계에서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한 것이다.

북한 주민의 생존을 위해서는 핵(혹은 핵문제)을 들기보다는 설득과 타협, 특히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대외관계의 평화적 해결책을 제시했어야 한다. 반전과 반핵을 외치는 세계인들에게 북핵 문제는 만에 하나 깡패국가 미국의 마수와 북한이 처한 `억울한`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이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근대국가 시스템에서 근대적 상상력에 무기력하고 현실세계를 설명하고 합리적 미래를 제시하는데 무능력한 북한의 `전통적` 리더십이 재고되어야 한다. 이것을 북한에 대한 개입이라고 볼 수 없다. 북한 내부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대내외 정책 능력을 키워내야 한다는 말이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자신의 정책적 무능력을 항상 미국의 경제제재와 계획경제의 모순으로 탓을 돌렸다. 이로써 시장적 개방이 일정에 올랐고 시장적 착취에 쿠바 국민은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즉 칼 폴라니의 언급을 빌면 `맷돌`(시장)에 대한 저항!

그렇다면 북한에서의 개혁의 정당한 방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의 생존의 틀을 파괴했던 행정 및 경제관리에서의 각종 관료주의적 병폐와 각종 사회적 부패와 불평등을 청산할 수 있는 경제 패러다임의 발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장 및 생활세계에서의 민주적 권리, 정치적 자유 등 실질적 민주주의 확장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이는 (주민들만의) `고난의 행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올 겨울 북한 경제의 상황을 감안하건대 핵문제라는 초강수를 통해서 모든 것을 풀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주민들의 생존의 문제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다.

북한에서 `핵` 겨울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은 적어도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만이라도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며 특히 올해 북한의 `핵` 겨울에 주민의 생존을 위해 식량지원을 대폭 증가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에 평화무드가 조성된다면 북한 정권의 `핵을 통한 돌파`는 선택지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