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도, 남쪽도 내 조국이다"

`북한 조선화 최고 화가전`을 준비한 신동훈(55세) 조선미술협회 회장의 말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휴일 오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신관 전시회장을 찾았다. 그는 수더분한 웃음으로 전시회를 찾은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가 준비한 이번 전시는 1999년에 이어 서울에서의 두 번째 전시회이다. 99년 당시에는 `북한 미술가 6인전`을 처음으로 열어 많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미국 이민생활 29년째를 맞고 있는 그는 지난 88년, 화상(畵商)으로서 북한 미술을 접하게 되면서 북한 미술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전 고양시장인 신동영씨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보여드린다는 마음으로 직접 작품 사진도 찍고 준비를 다했다"는 그의 말에 북한 미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말을 많이 아끼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신동훈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처음 북쪽 미술을 접하고는 순수하고 우리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는 미술이라고 느꼈다"는 신동훈 회장.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북한의 미술은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지.

■ 북한 그림을 지난 88년부터 접했다. 남쪽미술을 접촉하다 북경에서 처음 북쪽 미술을 접하고는 순수하고 우리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는 미술이라고 느꼈다. 앞으로 남쪽 사람들에게 많이 어필될 것으로 믿는다. 보고 좋으니까.

□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조선미술협회에 대해 소개하면.

■ 88~99년까지는 미국에서 화랑을 하면서 화상의 입장에서 북한 그림들을 접하다가 2001년도에 제가 중심이 돼서 미국사회 원로와 북한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조선미술협회를 하고 있다.
새스코 화랑은 88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뉴욕을 중심으로 워싱턴, 샌프란스코, 로스엔젤스, 시카코 등 미국 전역을, 그리고 서울, 평양, 북경 등을 돌아가면서 전시회를 갖고 있다.

□ 평양에서도 전시를 했나.

■ 미국에 있는 분들 작품으로 한 두 번 전시했다. 앞으로 전시를 많이 할려고 준비하고 있지만 준비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때를 기다리고 있다.

□ 명함에 적힌 思是高(새스코)에 담긴 뜻이 있나.

■ 영어 새스코와 비슷하게 들리는 중국어 중 뜻이 좋아 정했다. `생각하고 지혜로우면 으뜸이다`라는 뜻이다. 중국과 일본은 아무래도 한자 문화권이니까 한자로 써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 이번 전시 작품은 어떻게 준비했나.

■ 이를 위해 수십번 평양을 오갔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해서 평양에서 수집한 작품들로, 거의 구입한 것이며 빌려온 것도 있다. 작년에만 4번 평양에 들어갔다 왔다. 미국에서도 전시를 했다. 이번 전시회를 끝내고 또 곧 평양에 들어갈 계획이다.

□ 북한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북쪽도 내 조국이고, 남쪽도 내 조국"이라는
신동훈 회장.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같은 우리 민족이니까 문제가 거의 없었다. 이념을 가지고 얘기할 일이 없고 가끔 토론을 많이 하지만 듣는 입장이었고... 한반도가 평화롭게 살길 바라고 있다. 북쪽도 내 조국이고, 남쪽도 내 조국이다. 최근 정세가 불안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라크와 다르다고 본다. 

□ 신뢰가 많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었을텐데.

■ 정치는 권모술수가 필요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고 꾸준히 하니 북에서도 인정을 해주고 신뢰가 쌓이게 된 것이다. 주체적인 것을 인정하면서 교류를 하는 게 좋을 듯하다.

□ 여러번 평양을 방문했는데 북에 대한 소감은.

■ 지나보면 즐겁지만 어렵다. 그쪽이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우니까 안타깝다. 그들이 추구하는 건 주체적으로 모든 걸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잘 해결되게끔 해서 평화롭고 윤택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작품을 팔아 많이 벌어 좀 갔다 주고 싶다.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참 탄탄하다.

김영삼 정권때보다 대북사업에 들어간 돈보다 적은 액수를 가지고 최근 4천억원 대북 지원설에 대해 말이 많은데 그래서는 안된다. 부실기업으로 몇 조씩 없어져도 생색만 내는데...

□ 이번 전시에 대해 설명한다면.

■ 지난 99년에 처음 전시를 한데 이어 두 번째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조선화단의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도 최고 작품을 준비했다.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남쪽(분들)에게 보여드린다는 마음으로 직접 작품 사진도 찍고 준비를 다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할 것이다.

□ 조선화 전시는 지난해 남북민간이 공동으로 서울에서 치룬 8.15행사에서도 전시가 된 적이 있다.

■ 정치적 목적없이 미술쪽만 전문적으로 했고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손수 체험하고 상처받아가면서 또는 보람도 얻어가면서 준비를 했기 때문에 8.15행사의 전시와는 다르다고 본다.

□ 북한 작품들에 대한 가격대가 형성돼 있나.

■ 여기 화단보다 절반에서 심지어는 1/4 가격대로 맞췄다. (가격대는 대략 2백만원에서 천만원 사이라고 말한 그는 북한 그림을 아끼는 분들에게는 그 마음이 더해져 절충도 가능할 수 있다는 귀뜀을 했다.) 조선화가 장래에는 크게 인기를 끌 것이므로 소장가치도 높다고 본다. 

□ 관람객들의 평가는.

■ 조선화의 장르가 완전히 완성됐고 독특하기 때문에 대부분 불만이 없다. 너무 좋으니까. 북쪽은 북종화를 중심으로 채묵화를 살려 우리 미술을 조선화의 이름으로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북쪽의 산수가 엄중하고 장엄한데 그것이 그림에 나타나 거친 듯 하면서도...

▶인민예술가 선우 영씨의 `해칠보의 립석`을 설명해 주고 있는 신 회장.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 선우영 선생과 많이 교류를 해서 개인적으로 가깝다. 작품으로서는 김상직 선생의 작품을 좋아한다. (이번 전시된 작품에서는) 특히 `백산의 수리개`와 `王號` 등이다.

□ 주로 생활은 어디서 하나.

■ 29년째 가족들과 모두 미국에 살고 있으며 일년중 반은 미국에 있고 반은 평양, 북경 등을 돌아다니고 있다.

□ 나이는.

■ 29살이다.(웃음) 방랑생활을 해서 마음이 젊어 29살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48년생이다.

□ 마지막으로 자주 가본 평양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 평양에 가면 보통 일주일 정도를 묵는데 떼를 써서 2주일 정도를 체류한다. 일단 가면 사진을 많이 찍었다. 거리풍경, 사람들과 아이들 모습 등. 데이트를 하는 청춘남녀에게 무슨 사이냐고 물어 빈축을 사기도 하고 선죽교 아래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렵게 사는 주민들을 보고 북경 공항에 앉아 울기도 많이 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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