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기(동국대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미선이와 효순이의 넋을 위로하고 소파 개정을 요구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시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촛불시위의 성격과 계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수구냉전세력들이 촛불시위에 대한 폄하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촛불시위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는 대형교회의 "고명한"(?) 목사님들의 주도아래 촛불시위 반대 기도회(?)가 열려, 미국과 주한미군의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를 바로 잡으려는 것
 
그러나 촛불시위는 계속되어야 한다. 오히려 이제 새로운 불꽃이 되어 타올라야 한다. 친미는 되고 반미는 안 된다는 주장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기도 하지만, 촛불시위는 반미나 친미의 문제가 아니다. 또 그것은 일부에서 이야기하듯이 반미감정이나 반미주의와 같은 감정이나 무슨 이념의 문제도 치부되어서도 안 된다. 비정상적인 것을 바로 잡고, 수십년 동안의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우리 사회와 우리 국민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미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수호자와 지원자라는 미몽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미국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시대착오적인 패권주의를 보면서, 미국이 남북의 통일을 방해하고 우리 민족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촛불시위는 당당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이기도 한다. 한미관계가 지금처럼 종속과 굴종의 관계이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자각과 자기반성이이기도 하다. 또 이것은 숭미사대주의에 젖어 살아온 이 땅의 정치인들과 관료들, 얼빠진 학자들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반전평화운동으로 승화시켜야
 
이제 촛불시위는 단순히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는 행사나 소파개정을 요구하는 항의집회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반전평화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에 반대하고 국가테러리즘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힘의 외교를 강조하는 부시의 등장 이후, 미국의 안하무인식 행동과 패권주의적 정책은 세계 도처에서 갈등과 충돌을 빚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적 약속과 조약들을 하루아침에 뒤엎어버리는 만행을 마다하지 않고, 약소국에 대한 침략과 전쟁을 일삼고 있다.
 
잘나가던 남북관계마저 곳곳에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고, 북한을 벼량끝으로 몰아세워 한반도를 핵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한반도에는 다시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미국은 명색이 동맹국이라는 한국의 의사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북한에 대해 군사적 선제공격을 감행하겠다는 태세다.
     
미국의 오만을 꾸짖자
 
미국은 세계평화를 파괴하는 무법자가 되어 버렸다. NPT(핵확산방지조약)과 START(전략핵군축조약)의 전략적 기반이 되는 ABM(요격미사일제한)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전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MD(미사일방어)계획을 강행하고 있다.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수십년간에 걸친 인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 있다. 자국의 에너지업체들의 이익을 위해, 전세계가 수년간에 걸쳐 공들어 합의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를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전세계를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할 CTBT(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와 BWC(생물무기금지협약) 강화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했다. 미군만은 기소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면서, 전쟁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국제상설형사재판소 설립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뿐 아니다. 테러에 대한 응징을 핑계로, 수십년 동안의 내전으로 피폐한 세계 최빈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해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군사적 행동을 감행했다. 9.11테러로 죽은 희생자보다도 더 많은 민간인들이 미군의 오폭으로 죽어갔다.

그 결과 21세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잠재국으로 지목해온 중국의 동서 양쪽에 미군을 합법적으로 주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에너지 보고인 카스피해지역을 통제하고 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운반할 파이프라인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대량파괴무기를 구실 삼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있다. 카스피해에 이어 이라크의 석유 장악이 목적이다. 세계 에너지원의 장악은 미국의 21세기 패권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평화적일수록 더욱 힘이 있다
 
이 고삐 풀린 망아지를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횡포에 전세계가 숨죽이고 있다. 강대국들조차 방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맞선 반전평화의 불꽃이 바로 조그만 이 땅에서 점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냉전의 마지막 섬으로 남아 있던 이 분단의 땅에서,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미국의 강압적 일방주의정책에 대한 항의가 시작되고 있음은 매우 극적이고 역설적이다. 이제 코리아는 더 이상 대결과 갈등의 땅이 아니다. 미국의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평화의 메카가 되어야 한다. 광화문에서 시작된 촛불시위는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로 이어가야 간다. 
 
우선 북한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미국의 강압적인 대북 강경정책에 강력히 항의하자.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야 한다. 동북아를 군비경쟁과 갈등의 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의 MD정책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국제적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국제적 노력을 방해하고 있는 미국의 오만을 꾸짖자. 
 
전세계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우리의 작은 촛불에 담아 보내자. 꺼질 듯한 촛불을 가냘픈 손에 치켜들고 전세계를 향해 반전평화를 외쳐대자. 전세계가 평화의 촛불로 뒤덮이도록 하자.
 
폭력에 맞서는 촛불시위는 평화적이어야 한다. 평화적일수록 더욱 힘이 있다. 일부 단체의 독점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촛불에 한반도와 세계의 운명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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