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원(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월 10일 이북은 "정부성명" 형식으로 핵확산금지조약(핵무기전파방지조약; NPT)을 탈퇴한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작년 미국 특사 제임스 켈리의 평양방문 이후 10월 17일 미국이 터뜨렸던 이른바 "북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이 새로운 국면이 어떤 배경과 전개과정을 통해 이르게 되었으며 앞으로 북-미 핵대결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1. 왜 NPT탈퇴 선언을 했나?

"핵소동"의 전개과정

작금의 NPT탈퇴 선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북은 왜 탈퇴선언을 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미국이 조작했던 핵소동의 전개과정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년 하반기 북의 주동적인 조치로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며 발전해가고 있었고,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동북아시아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러던 시점인 10월 3일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특사는 북에 대해 우라늄을 농축하여 핵폭탄을 만들 계획이 있음을 시인하라고 협박하였다. 이에 대해 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존재하고 대북 핵선제공격이 공식화되어 있는 한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으로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을 미국은 북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한 것이라고 세계여론을 오도해나가기 시작하였고 제네바 합의의 위반이라고 책임을 북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에 대해 북은 10월 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국이 안보상 우려사안을 해결하고 싶으면 <북미불가침조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명시되어 있는 12월분부터 중유공급 중단을 결정하자 북에서는 <핵동결해제선언>과 함께 국제원자력기구의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를 요구하였고 12월 22일 그것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에 대해 미국은 1월 6일 국제원자력기구 결의문을 통해 재가동된 핵시설의 원상회복과 필요한 안전조치의 이행을 북에 촉구했다.

북의 거침없는 공세적 행보에 당황한 미국은 "공식적인 안전보장"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국무장관 파월을 통해서, 또 대북정책감독그룹회의(TCOG)에서 한미일 합의사항으로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북의 대답은 NPT탈퇴였다.

미국은 이미 "대북 핵선제공격의 공식화"로 NPT위반

한국 정부가 "북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의 체제를 문서로 보장"하는 중재안을 마련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리하여 국무장관 파월은 북에 대해 공식적인 안전보장(formal assurance)을 해주는 방안을 시사했으며 1월 6일-7일 열린 TCOG회의에서도 이런 방안이 논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한-미-일이 북이 먼저 핵포기를 해야한다고 조건을 달았고, 미국 역시 "대화는 할 수 있지만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데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측의 요구사안이 서로에게 동시에 받아들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에 대한 선(先)핵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일방적인 무장해제 요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는 할 수 있지만 협상은 없다"라는 입장 역시 북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할 "불량국가"이며 "불량국가와는 대화는 할 수 있지만 보상을 해줄 수는 없다"라는 미국의 일방적이고 패권적인 대북 적대입장의 표현이다.

부시 정권의 이러한 대북 적대정책은 부시 행정부 등장 초기부터 제네바 합의를 백지화하려는 시도로 드러났었다. 2002년 들어서는 급기야 핵태세검토보고서, 국가안보전략 등에서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공식화하였다. 또한 핵태세검토보고서에 의하면 북의 지하전략시설들을 타격할 수 있는 소형핵무기의 개발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핵무장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공격협박을 하지 않을 것이 약속된 핵확산금지조약의 명백한 위반이다. 또한 핵공격협박을 하지 않겠다고 확약한 1993년 북미공동성명과 이것을 계승한 1994년 제네바합의의 위반이기도 하다. 한편 미국은 2001년 하반기 이미 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조약) 역시 탈퇴하면서 미사일방어체제(MD)구축에 열을 올리며 북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처럼 북을 고립시키고 압살하려는 기본입장에서 군사적 준비를 착착 갖추면서 나아가 제네바 합의 위반의 책임을 북에 뒤집어씌우려는 행각들을 벌이며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말을 한다면 북에 입장에서 그것이 곧이 들리겠는가?

북의 입장에서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미국의 현재 전력상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되는 대로, 미사일방어체제 등의 군사기술적 준비를 완비하는 한편 전쟁의 빌미를 축적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보자는 속셈을 미국이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의 원인제공 역시 미국이 했다고 볼 수 있다.

정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북은 "북을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문서로 확약할 수도 있다"는 미국의 변화된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며,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라는 초강수를 쓰며 미국의 확실한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미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북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 이후에도 미국은 "평화적 해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북을 붕괴시켜야할 불량국가로 보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 그 단적인 표현이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라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대북 적대적 입장은 북의 붕괴를 최종목표로 하면서 저강도적인 정책으로는 "북한붕괴 시나리오"의 가동, 북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핵무기 개발과 군사적 포위를 위한 미사일방어체제구축 등의 고강도 정책 등으로 나타났으며 아직까지 공식 폐기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계획서"에 나와있는 "카드"들은 한 번쯤 다 써볼 것이다. 그 "계획서"란 지금 부시 행정부의 각료로 들어가 있는 자들이 1998년, 1999년에 썼던 보고서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1999년 아미티지 보고서에 의하면 북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외교적 접근을 해야하지만 그것이 실패할 경우 북의 미사일 수출 선박을 나포한다든지 해안을 봉쇄하는 수단을 써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한 군사적 선제타격의 방법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적어놓고 있다. 그런데 불법행위로 규탄을 받으며 유야무야 끝나긴 했지만 미국은 작년 12월 초 실제로 북의 미사일 수출 선박 <서산호>를 일시 나포하였다.

물론 소위 "맞춤형 봉쇄정책(tailored containment)"을 언론에 흘려보았다가 행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발뺌하기도 했듯이 "계획서"에 있는 그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공식적으로 포기되지 않는 이상 북의 NPT탈퇴 이후 정세는 더욱 대결이 첨예화되는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를 사주하여 NPT탈퇴문제를 유엔안보리에 상정할 예정이며 북의 유엔주재대사는 유엔이 경제제재를 결의하면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이다. 이렇게 되면 될수록 `군사적 선제공격`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3.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렇듯 2003년 북-미 대격돌이 이미 "열전" 직전의 치열한 단계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남측의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단 현 정부의 "평화적 해결" 노력은 미국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다행스러운 것은 노무현 당선자의 "중재안" 역시 평화적 해결 기조 위에서 북의 안전 보장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 역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 가능성을 확률 0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가 확고하게 민족자주와 민족공조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북의 선 핵포기"를 주장하거나 북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비난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모습들이다. 군수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21세기 세계제패전략의 관철을 위해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 된 이후 전쟁을 이어가야 하는데 제1 후보가 이북이다. 이것은 북이 핵개발할 의사가 있건 없건, 핵개발의 능력이 있건 없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건 유지하건 필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년 10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이북의 조치들은 미국의 세계적인 차원의 전쟁계획 특히 대북 핵선제공격 계획을 무력화시켜 자신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남과 북 전민족의 생존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전략임을 이해해야 한다.

작년 10월 25일 <조선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밝힌 이북의 요구는 ▲자주권인정 ▲불가침 확약 ▲경제발전에 장애 조성하지 않기로 요약된다. 이것은 내용적으로 보면 ▲북의 자주권존중 ▲핵공격 협박 중지 ▲자주적 평화통일 지지라는 북의 3대 요구가 담긴 93년 북미공동성명 혹은 정치·경제관계의 정상화라는 내용이 담긴 94년 제네바 합의, 한반도 평화체제를 모색하기로 약속했던 2000년 북미공동꼬뮤니케와  비교해볼 때 대동소이하거나 혹은 완화된 측면이 있다.

이는 현재 조건에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북-미 사이의 합의가 미국에 의해 번번이 깨졌기 때문에 북은 의회의 비준이 필요한 "조약"형태를 요구함으로써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이 내건 최소한의 요구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말로만 "불가침을 보장할 수도 있다"며 시간을 끌어보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측의 우리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북핵문제의 근원인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시키고 전쟁확률을 0으로 만들기 위해서 북에서 제안한 "북미불가침조약"체결을 촉구하는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벌여야 한다. 이것이 핵문제를 푸는 진정한 해법이다.<끝>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