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격변의 한 해가 지나고 2003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고 2003년 통일의 큰 화두를 잡아보는 것은 새해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지난 2002년은 그 어느 해보다 자주와 반전평화, 화해의 큰 물결이 휘몰아친 한 해였다고 하겠다.
 
6월 효순·미선 양의 장갑차 사망 사건 이후 불타오르던 반전·소파개정·반미운동은 새해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 지역의 항의운동이 인터넷상의 광화문 촛불시위 제안으로 이어지더니 시청, 광화문앞 사거리는 제2의 6월항쟁으로 재현되었다. 지난 월드컵의 열기와 더불어 광장의 문화가 되살아난 한 해이기도 하였다.

봇물 터지듯 강대해진 운동은 보수우익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소파개정 운동에 동참하도록 강제했다. 또한 80년대 소수 학생운동의 지사(志士)식 치열함이 아니라 인터넷과 촛불시위, 각계각층의 참여에서 보여지는 열린 개방성과 광장의 문화가 돋보였다.

또 하나는 북핵을 둘러싼 공방과 반전평화의 움직임이다. 재작년 9.11 테러 이후 부시 정권은 일방적 강압적 패권공세를 벌이더니, 급기야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10월 북한에 특사로 파견된 켈리 차관보는 `북핵 개발 시인` 이라는 핵폭탄(?)을 터뜨리고 이후 북·미간은 `선핵포기 후대화`와 `선 적대포기`로 맞서더니 급기야는 북한의 핵시설 가동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엄청난 반북 공세와 전쟁불사 분위기가 팽배했을 상황에서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햇볕정책과 반전평화를 지지했으며, 미국의 일방적 공세를 거부하였다. 결국 12.19일의 대선에서 평화와 진보를 지양하는 세력이 분단과 수구를 지양하는 세력을 이김으로써 도도한 통일의 흐름을 느끼게 하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6.15민족통일대축전(6.14-15), 8.15민족통일대회(8.14-16), 여성, 학생 등 부문별 교류 등 남북간의 교류와 화해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경의선, 동해선의 도로와 철로가 이어져 남북간의 육로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참가와 열풍은 `남북은 하나다`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돌이켜보면,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세력의 분열로 유실된 민주화와 통일, 개혁의 흐름이 21세기를 맞이하여 새롭게 혁신되어 큰 흐름으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이 차지하는 압도적 규정력은 남한의 자주성이 발휘됨에 따라 더욱 쇠약해져 가고 있다. 중, 러, 일 등 주변의 분위기도 화해의 분위기가 완연해서 미국의 일방적 주장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의 부상과 함께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도 축소되고 있다. 세대적으로도 독재정권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당당한 자주 선언은 미국에 압도당한 늙은 세대의 통일운동의 칙칙함에 비해 눈부시기만 하다. 정치·경제·외교 모든 측면에서 자주와 평화·화해의 분위기가 우세해가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첫 날 첫 새벽, 북핵문제는 여전히 세계적 뉴스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주와 반전을 외치는 광화문 촛불시위는 이어졌다. 그러나 새해의 통일운동은 이러한 낙관적 요인만이 아니라 곳곳에 지뢰밭 투성이의 위협요인들이 여전히 잠복해있다.
 
미국은 여전히 `선핵포기 후 대화`를 외치며 북과의 협상에 임하려 하지 않고 있다. 세계 유일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패권주의적 태도가 쉽게 고쳐질 리 만무하며, 그동안 부시정권의 스타일로 볼 때 더욱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심각한 고비고비를 넘어가야 할 것이다.
 
타오르던 반미·반전 촛불시위도 내외의 암초를 만나 비틀거리고 있다. 신임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북핵문제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것과 촛불시위 자제를 요청했다. 주말의 촛불시위는 매우 소수화된 채 그나마도 두 흐름으로 나누어졌다.

상황이 이럴진데 올해 통일의 한 해를 더욱 열어제끼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민중의 자주적 역량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통일을 이루는 것은 외세도 정권도 한 두 사람의 영웅도 아니고, 우리 민족, 민중, 국민 전체의 자주적 역량이 모아져서 거대한 흐름을 이어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의 압도적 패권에 절망할 수도 없고 대통령 당선자에게 실망할 것도 없다. 민중의 거대한 흐름이 역사를 이루어나간다는 가장 평범한 진리를 지난 한 해 우리는 보았다. 이 길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정세는 엄중하기만 하다. 더욱 더 압도적인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나가야만 이 세상을 움직여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내부의 힘을 더욱 단결시키고, 우리 내의 다양성이 분열이 아닌 화합의 목소리가 되도록 조율하고 모아내는데 힘을 쓸 일이다.

새해는 평화의 대명사인 양들의 해이기도 하다. 통일을 외치고 반전평화를 외치고 남북의 화해와 화합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울려 퍼지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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