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법칙에 `먹이사슬`(food chain)이라는 말이 있다. 생물계의 먹이관계를 그 생물의 식성에 따라 계통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먹이사슬로 인해 생태계가 유지.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국제사회에서도 이른바 `압박사슬`이 연출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압박하고 그 미국을 북한이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압박의 차원이 다르다. 미국의 對이라크 압박은 전쟁을 하기 위한 수순이고 북한의 대미압박은 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 이라크는 지난 7일 유엔에 대량살상무기(WMD) 실태보고서를 제출했다. 미국이 이 보고서에 대해 주요 내용이 누락됐다며 이라크를 압박하자, 이라크는 "우리는 더 이상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래도 안믿고 저래도 안믿으니 이라크로서는 `배 째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유엔 사찰단의 이라크 현지 조사 결과에 상관없이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이미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분명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 북한은 지난 12일 `핵시설 가동 선언` 뒤 열흘만인 22일 5MWe급 원자로의 봉인 해제 및 감시카메라 훼손에 이어 8천여개의 폐연료봉이 보관된 저장시설의 봉인까지 전격 제거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는 북미관계가 제네바합의 체결 직전인 1994년과 같은 위기국면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초강수를 두고 온통 대이라크 공격에 관심을 쏟고 있는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쳐다보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지적한다. 즉 북한의 대미압박은 협상을 하자는 신호인 것이다.

◆ 사실 북한의 이같은 조치는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핵시설 가동 선언을 한 12일경은 미사일을 실은 북한 서산호가 미국측에 나포됐다가 풀려난 다음날이며 또한 중유를 실은 배가 북한을 향해 떠나야 하는 날이었다. 이런 날에 `자존심` 강한 북한이 기세 싸움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은 이러한 초강수 조치를 뒷받침하듯 최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강조하면서 배수지진을 치고 있다.

◆ 인간사회는 자연세계와 다르다. 자연법칙인 먹이사슬이 끊기면 생태계는 파괴된다. 따라서 자연계의 먹이사슬은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북한-미국-이라크간의 압박사슬은 모두가 미국측 `일방주의`의 산물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압박하고 있고, 또 북한의 대화요구를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있다. 따라서 이 압박사슬은 끊어져야 한다. 미국은 일방주의를 철회해서 대이라크 전쟁수순을 중지하고 또 대북협상에 임해야 한다. 역사는 이 압박사슬이 언제고 먹이사슬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종종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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