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1. 노무현 후보의 당선과 대북정책 :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치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되었다. 노무현 후보의 승리요인에 대한 이러저러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번 선거결과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 뭐라 해도 `시대변화`라는 컨셉일 것이다. 21세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는 노무현 후보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기존의 것을 과감히 깨트리는 `변화`의 시대 흐름을 요구했던 것이고 이는 근소한 차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안정을 원하는 유권자를 압도했다.

시대변화로 압축되는 이번 대선의 의미는 따라서 대북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과거 반세기 이상 지속해온 대결과 반목 그리고 민족파괴적 현상을 청산하고 이제 탈냉전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그리고 대북정책 기조를 국민들은 노무현 후보 당선을 통해 승인해 준 것이다. 적대와 대결의 남북관계 대신 화해와 협력의 공존관계를 지향하고 종속과 추종의 한미관계가 아니라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파트너쉽을 요구하며, 강경과 봉쇄의 대북정책이 아닌 평화와 대화의 대북정책이 이제 공인된 시대가치로 표출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대선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대북정책 및 북핵문제 해법은 다른 정책분야보다 훨씬 차별성을 갖는 것이었다. 햇볕정책 비판과 상호주의 원칙을 내세운 이회창 후보는 북핵해결을 위해 현금지원 중단 등 대북 제재를 줄곧 주장한 반면 노무현 후보는 햇볕정책의 계승을 기조로 하면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내세웠고 북핵문제에서도 대북 강경과 압박이 아니라 경협을 병행추진하면서 남북관계의 지속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선거 직전에 터져 나온 북한의 핵동결 해제가 과거 같으면 신북풍으로 불릴 만큼 노무현 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지만 정작 선거결과는 우리 시민사회가 이제 몇 가지 돌발사안 때문에 쉽사리 대북 강경정책에 손을 들어주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미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냉전시기의 무조건적 한미동맹 우선주의 대신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한미관계를 요구하는 시민적 요구가 오히려 시대적 대세임이 입증되었다. 결국 이번 대선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통해 대북정책에서 평화와 화해의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변화의 화두임을 명징하게 나타낸 것이다.

2. 대북정책의 일관된 리더쉽이 필요

대선결과를 통해 강경과 대결의 대북정책 대신 평화와 화해의 대북정책이 국민적 동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곧바로 대북정책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정책들과 달리 대북정책은 정책내용만으로 그 정책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즉 대북정책의 내용이 아무리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실제 대북정책의 성공에는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부 이래로 공식적인 대북정책의 내용이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공통적으로 명시하고 있었음을 감안하고 김영삼 정부 시기와 김대중 정부 시기의 대조적인 남북관계 결과를 고려해보면 대북정책의 성과가 비단 정책의 기조와 내용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역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실제 대북정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선언된 정책이 아니라 실제 대북정책의 추진과정과 거기에서 제기되는 이슈와 돌발상황에 대통령이 대북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갔는가가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노무현 당선자가 대북정책과 관련해 명심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바로 평화와 화해의 대북정책 원칙을 일관된 리더쉽으로 끝까지 유지해내는 것이어야 한다. 즉 대통령이 향후 대북정책에 관한 리더쉽을 어떻게 행사하는가가 대북정책의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하며 이는 곧 이른바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이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기조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사실상 평화와 화해의 대북정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관건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북정책 추진과정은 정책 이외의 다양한 변수요인들에 의해 매우 다양하고 유동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되며 여기에서 대통령은 대북정책 기조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나아가 북한뿐 아니라 미국과 남한 시민사회를 자신의 대북정책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결국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과 위기국면에서 대통령이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북한과 미국, 남한 시민사회를 조정하면서 이끌어 가야 하는 리더쉽의 문제가 사실은 대북정책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3. 몇가지 제언

평화와 화해의 시대변화를 충실히 수용하고 어떤 돌발상황에서도 대북정책의 리더쉽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함이 노무현 당선자의 첫째 가는 과제라고 한다면 그 연장선에서 몇가지 각론적인 과제 또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무현 당선자가 후보 시절 주장했던 이른바 `햇볕정책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대원칙과 관련된 것들이다. 즉 햇볕정책의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으로 국민의 정부 기간동안 드러났던 문제점 및 보완사항들을 이제 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모아 차분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잖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점은 존재했다. 햇볕정책이 결과한 최대의 문제점은 바로 남남갈등의 첨예화이다. 과거 역대 정부와 비교할 때 대북관과 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이 확산되고 첨예화된 것은 분명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이다.

그러나 남남갈등은 정치적 결과물이라는 측면 외에도 탈냉전 시대의 도래와 아직도 잔존하는 냉전적 유제라는 과도기적인 한반도 상황이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화해의 대북관과 대결의 대북관이 상호 논리싸움으로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향후 형성될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가 과거처럼 대결과 적대의 구도를 유지할 것인가 혹은 화해협력과 경쟁의 새로운 구도로 변화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무현 당선자는 우리 사회의 분열현상 중 하나인 남남갈등의 해소를 위해 장기적으로 북미관계와 북일관계 정상화를 도우면서 이를 통해 한반도 주변정세와 동북아 질서가 적대와 대결이 아닌 화해와 협력의 안정된 구도로 정착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노 당선자가 밝힌 남북의 화해협력을 넘어선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과제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이다.

햇볕정책이 야기한 또 하나의 문제는 이른바 대북정책의 과잉 정치화(over-politicization) 현상이다. 본질적으로 대북정책은 특정 정치지도자나 특정 정권의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미래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국가정책`이어야 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기 대북정책은 여당이나 야당 모두에게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기 위한 정략적 의도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었고 이로 인해 초당적인 협력을 결과하기보다는 첨예한 정쟁의 도구로 쓰이는 문제점을 노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정상회담 합의 발표를 한 여당이나 대선기간 중 4000억 대북지원설 등을 정치쟁점화한 야당 모두 대북정책의 과잉정치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노무현 당선자는 민족의 미래와 관련된 대북정책이 자칫 국내정치적 정쟁의 도구로 평가절하되지 않게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행여라도 대북정책을 대내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역으로 국내정치적 갈등의 결과로 대북정책을 쉽사리 변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야당 역시 대북정책의 과잉정치화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지막으로 햇볕정책은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한미갈등의 함수관계를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함을 하나의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대북정책과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정부의 발언권이 증대되고 자율성이 늘어난 것은 분명 성과이지만 미국의 대북정책과의 불일치로 인해 초래된 일정한 한미간 불협화음은 새롭게 해결해야할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사이의 혼선은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했다. 또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표출된 시민사회의 새로운 한미관계 정립 요구는 이제 노무현 당선자가 새롭게 풀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대북정책의 방향과 관련된 한미갈등 뿐 아니라 건설적인 우호동맹관계로서 한미관계 재정립을 놓고도 노무현 당선자는 새로운 `솔로몬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 강화되는 남북공조와 약화되는 한미공조 사이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현명한 대미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4. 멋진 출발을 기대하며

북핵 사태로 북미간 첨예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면서도 예정된 남북대화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이 지금 한반도의 현실이고 보면 이제 미국의 대북정책 여하에 따라 한국의 대북정책이 휘둘리고 나아가 정상적인 남북관계마저 위협받게 되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정상회담 이후 어렵게 구축해 놓은 남북당국간 대화의 틀을 더욱 발전시키고 보다 안정화, 정례화 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국가이익과 한반도의 민족이익을 관철시키는 중요한 통로이며 나아가 동북아 정세의 마지막 불안정 요인인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필수불가결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의 정책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입장에서 우리의 정책을 내세우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노무현 당선자는 자신의 승리를 있게 한 유권자의 시대변화 요구를 충실히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의 첫 과제는 바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국정부의 주도권 강화일 것이다.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들이 이제는 그의 대북정책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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