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16대 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흔히들 이번 선거를 두고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 첫 지도자를 뽑는다느니, 민족의 명운이 달려있다느니 한다. 정치권의 과장법을 고려한다해도, 이번 대선 역시 역대 대선만큼 중요하고 또 의미도 작지 않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의미를 `통일 대통령`을 뽑는 첫 번째 선거로 규정하고자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대선에서는 `통일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마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른바 `북핵문제`와 `반미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 조치 해제선언에 이은 핵시설 가동과 `여중생 미군장갑차 사망사건` 등이 다른 이슈들을 제치고 메가톤급 태풍으로 떠오른 것이다. 남한의 역대 선거에서 북한문제와 미국문제가 이처럼 당당하게 이슈화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 가장 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때문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한 국민의 의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온 것은 다름아닌 대북관이다. 북한을 냉전시대의 `적`이 아니라 통일시대의 `동지`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남이 불편할 때 동족인 북이 편안할 수 없고 북이 불편할 때 동족인 남이 편안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6.15 선언 이후 북한변수가 남한 정치에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일찍이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대선에서는 기존 선거판의 단골 메뉴였던 대북관련 사건이나 색깔논쟁이 아직 터지고 있지 않다. 모두가 기억하듯이, 1987년 대선때의 `KAL 858기 폭파사건`, 1992년 대선때의 `중부지역당 사건`, 1996년 4.11총선때의 `판문점 병력투입사건` 그리고 1997년 대선때의 이른바 `총풍사건` 등은 선거 판세를 초반에 결정짓곤 했다. 또한 선거 막바지인데도 후보들간의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비교적 자제되고 있으며, 표출된 이념논쟁도 색깔논쟁으로까지는 아직 번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통일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한 국가와 사회의 발전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지역간, 계급간, 이념간, 세대간, 성별간, 빈부간, 학벌간 갈등 등 모순관계가 많다. 그러나 그 어떤 모순도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민족모순만큼 시급하거나 크지는 않다. 민족모순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모순들은 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사회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인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말이다.

둘째, 각 후보들은 나름대로 `경제 대통령`, `정치 대통령`, `외교 대통령`, `문화 대통령`, `교육 대통령`, `체육 대통령` 등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 물론 `통일 대통령`이 이 모든 영역보다 우월하거나 또 모든 걸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 최대의 모순인 `특수한` 분단구조에서 살아오면서 통일이라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식을 유지해 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어떤 영역보다 `통일`분야를 앞자리에 내세운다면, 그는 민족의 앞길에 대해 몇 번쯤은 고민하고 또 정책의 우선순위를 가릴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각 후보들은 대부분의 정책공약이 엇비슷하지만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게다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번 대선에서는 `북핵문제`와 `반미문제`가 승부를 가를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차별적인 각 후보들의 `북한문제`와 `미국문제`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은 곧바로 `통일 대통령`을 뽑는 전략적 행위로 된다.

그렇다면 이제 `통일 대통령`의 기준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소속 정당의 정체성과 정책공약, 후보의 정치역정 등 모든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란 당선을 위해서라면 시냇가가 없는데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공약을 늘어놓는 존재인지라, 선거때만 되면 유권자는 헷갈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에겐 귀중한 잣대가 있다.

먼저,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입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보다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합의한 6.15 공동선언에 대한 입장이 더 중요하다. 대선 후보들이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가부 판단을 명확히 하는데 비해,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의외로 소극적이거나 단편적인 경우가 많다.

6.15 공동선언에 대한 입장 표명은 곧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받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그 정신은 `민족화해`와 `민족공조`이다. 갈라진 남북이 서로 화해를 하고, 또 남북 민족이 외세에 대해 공조를 하자는 것이다. 이보다 통일에 대한 원칙과 방법을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다음으로, 정책의 일관성 여부다. 특히 정치철학이 없는 후보는 선거때만 되면 유권자의 표심을 얻고자 기존의 정책을 180도 바꾸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닦는다. 이번 대선때도 그런 경향이 나타났다.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인해 추모 촛불시위와 반미열풍이 전국을 강타할 때, 어느 후보는 진보층과 젊은 층에 잘 보이기 위해 이러한 반미기류에 편승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표심을 붙잡기 위한 임기응변적인 `말 바꾸기`라기보다 `사상적 널뛰기`라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처럼 때만 되면 사상적 널뛰기를 하는 것은 `통일 대통령` 기준에 있어 결정적인 하자로 된다. 정치적 실패는 국민들에게 근심을 안겨 주고 경제적 실패는 추운 겨울을 맞게 하지만, 사상적 실패는 민족을 긴장과 전쟁으로 내몰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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