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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사일 화물선 나포와 미국의 반확산정책 - 서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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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2.15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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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미국 코넬대학 정치학과 국제정치학 교수)



예멘이 주문한 미사일을 선적한 화물선이 공해 상에서 나포, 억류된 이번 사태는 부시 행정부의 반확산정책이 실행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탄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북 미사일이 아닌 미의 일방적인 군사력 행사

상대국가가 아무런 적대적 군사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군사력을 동원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일방적 군사주의를 극적으로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군사주의가 한반도에 미치는 위험성도 보여 주고 있다.  이제 미국의 군사전략은 보복능력에 기초한 억제전략에서 선제공격전략으로 확실히 넘어갔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예멘이 주문한 북한의 미사일을 선적한 화물선 서산호를 스페인 군함 두 척이 강제로 정선시키고 나포한 후 이를 미군에 넘겨주었다가 예멘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힌 미국이 화물선을 풀어 주었다는 것이 사건의 요체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북의 미사일 수출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미사일을 선적한 화물선을 군함이 군사력을 행사하며 공해에서 나포한 것은 전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 당시에도 케네디 대통령이 해상봉쇄라는 조치를 취했지만 소련제 핵미사일 부품들은 선적한 선박을 정선, 나포, 억류하는 직접적 군사력 사용사태까지 가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북 미사일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일방적 군사력 행사에 있다.  미사일과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공해이건 타국의 영토이건 상관없이, 상대방이 공격을 하건 공격을 할 의사가 있건 상관없이 미국은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수출한다는 것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된 사실이다.  북한은 80년대 초 스커드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이후 이집트, 이란, 예멘은 물론 파키스탄 등의 국가들에 미사일을 팔아 짭짤한 외화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은 이번에 문제가 된 예멘에 미사일을 수출했다는 이유로 지난 8월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추가한 적이 있다.  북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미국 등과의 협상에서도 미사일 수출행위를 부인한 적이 없다.
 
이러한 미사일 수출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지 국제법을 위반한 범법행위는 아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공식적으로 시인을 했듯이 북의 미사일 수출은 전적으로 합법적인 행위이다.  미사일 수출을 규제하는 국제조약은 사거리 300km 이상의 미사일 이전을 금지하는 미사일기술통제기구가 유일한데 북은 조인국이 아니므로 이 통제기구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외에는 미사일 수출을 금지하거나 미사일 선적 선박의 공해통과를 금지하는 국제법이 없다. 

무기수출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인 필자는 따라서 미국과 이북 정부가 협상을 통해 북의 미사일 수출을 제한할 장치를 만들 것을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이북 정부와 미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해결책 타결직전까지 갔었으나 이러한 평화적 해결책을 지금까지 반대하고 있는 것은 부시 행정부이다.
 
부시 행정부는 말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얘기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평화적 해결에 반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국제법까지도 위반했다.  이번과 같이 공해 상에서 화물선을 나포, 억류하는 것은 국제해양법에서 금지되어 있는 행위이며, 특히 군사력을 동원하여 위협사격을 하고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민간선박을 제압한 행위는 `군사적 도발`이라고도 볼 수 있는 위험한 행위이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미국이 한국에 수출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선적한 화물선을 북한 해군이 공포를 쏘고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공해에서 나포했다면 미국은 이를 군사적 도발이라고 즉각 응징에 나섰을 것이다.  30여년 전 공해도 아닌 북의 영해에서 정보수집을 하던 푸에블로호가 나포됐을 당시 미국은 핵무기를 동원한 응징을 운운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 제110조를 화물선 나포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공해 상에서 군함이 임검과 수색을 할 수 있는 경우를 해적행위와 노예무역, 무국적선으로 제한하고 있는 바 이번에 문제가 된 화물선이 국기를 마스트에 게양하지 않은 무국적선이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워싱톤포스트지는 이 화물선이 캄보디아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고, 에이피 통신 등도 승무원들이 이 화물선이 캄보디아 국적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이번 작전에 관해 캄보디아 정부와 협의를 했고 나포에 대한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미국 정부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미군은 이 함정이 북 남포항을 떠날 때부터 줄곧 이를 추적해 오지 않았는가.  미국은 이 화물선의 국적과 출항지뿐만 아니라 화물선에 선적된 화물까지도 환히 알고 있으면서도 군사력을 이용한 나포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이번 사태와 비슷한 경우로 지난 1999년 6월 25일 북한의 구월산호가 인도 칸들라항에 정박했다가 억류된 적이 있다.  인도는 구월산호에 실린 미사일 부품이 교전상태에 있는 파키스탄 행이라는 이유로 억류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도가 관할권을 갖고 있는 영해 상에서 일어난 국가고유의 주권행사였으므로 공해 상에서 일어난 이번 나포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푸에블로 사건도 영해 상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화물선 나포사태는 부시 행정부의 공세적 반확산정책이 실행된 것
 
미 해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무리수를 쓰면서도 나포에 나선 것은 부시 행정부가 지난 5월 채택한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정책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물선을 나포한 12월10일 백악관이 공개한 `대량살상무기 퇴치 국가전략`은 화물선 통행 저지(interdiction)를 반확산정책의 중요한 도구의 하나로 적시하고 있다. 

이 문서는 핵무기나 화학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을 반확산, 비확산, 사후 관리능력 등 세 가지로 분류하여 포괄적인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능동적으로 막겠다는 반확산 대책에는 "대량살상무기 원료나 기술, 전문가의 이동을 방지할 능력"을 제고할 필요가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능력을 interdiction으로 표현한 바 이는 군사용어에서 포격과 폭격을 동원해서 상대방의 행동을 저지한다는 행위로써 나포나 억류보다도 훨씬 강력한 군사행위이다.  뿐만 아니라 반확산의 일환으로 "대량살상무기가 목적지에 이동하는 동안 이를 방해, 무용화, 파괴한다"는 "능동적 방어"를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방어"수단을 제시하고 있는 `국가전략`은 지난 5월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안보 대통령명령 (NSPD) 17호`와 `본토안보 대통령명령 4호`의 내용 중 일부를 공개한 것으로써 공개되지 않은 명령서에는 보다 공격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워싱톤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비밀 대통령명령은 대량살상무기나 장거리미사일 확보에 근접한 (close to acquiring) 국가나 테러리스트 조직에 대한 "선제공격"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선제공격의 정식채택은 냉전시기 내내 핵무기의 선제공격은 자제하면서 막대한 보복공격의 능력만으로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억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변화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핵태세검토`에서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고려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작년에 발표된 `4개년 국방검토`에서도 중동과 한반도 등 양대전장에서 동시에 승리를 거둘 군사력을 유지할 것임을 천명하고 이러한 군사력에는 "적국의 영토를 점령하거나 정권변화의 조건을 만들 능력"이 포함될 것이라며 공세적인 전략을 밝힌 바 있다.  단지 지금까지의 문서들은 미국이나 동맹국이 공격을 받은 경우에 대한 대응책으로써 "공세적 방어"를 채택했는데 비해 이번에는 적국의 구체적인 군사행위가 없어도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점에서 전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번에 확인된 `국가안보 대통령명령 17`은 적국이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공격은커녕 공격을 위한 군대이동 등의 준비작업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즉 적국으로 `찍힌" 국가가 미사일 개발만 하더라도 또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운영만 해도 선제공격 하겠다는 노골적인 일방적 군사주의의 천명이며, 이번 화물선 나포사태는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공세적 반확산정책이 실행에 옮겨졌음을 선언한 것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 명령서의 비밀 부록이 북한을 이란, 시리아, 리비아와 함께 반확산정책의 중심대상이라고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령서에서 지적한 국가 중 미사일과 핵 능력에 있어 북한이 가장 앞서 있다는 점에서 북은 미국의 "방지", "능동적 방어" 및 "선제공격" 등의 집중포화를 맞는 목표가 될 가능성이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것이다.  부시정부의 이러한 군사전략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지금까지 북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동결시켜온 제네바합의가 파탄으로 몰려가고 북의 미사일이 국제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그나마 다음과 같은 요소들은 반확산정책의 실행이 즉시 한반도 전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즉 이번 서산호 나포사태에서 미국이 자국의 해군을 직접 동원하는 대신 스페인 해군을 앞에 내세우는 데서 드러난 것과 같이 아직은 직접 북과 대결국면을 만들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미 해군이 직접 나포작전에 나서서 군사력을 행사했다면 북은 이를 군사적 도발로 간주하고 대응할 수도 있었으나 미국은 이러한 위기상황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한국은 북미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중재해야

현재 미국 외교, 군사정책은 모두 이라크로 통한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사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될 때까지는 미국의 군사력을 분산시킬 위기상황이 한반도에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전위대 노릇을 했던 스페인의 분노와 반발을 무시하고 서산호를 즉각적으로 풀어준 것은 국제법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기보다는 대 이라크 전에 필수적인 우방인 예멘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한반도는 잠시 숨 쉴 여유를 벌은 셈이다. 

그러나 이 여유는 짧고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길다.  이라크 문제가 어떠한 식으로든 정리가 되고 나면, 특히 미국이 대 이라크전에서 쉽게 승리를 거둔다면 부시 행정부는 이 여세를 몰아 북을 거세게 몰아 부칠 것이다.  핵무기와 미사일은 선제공격을 해서라도 파괴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있는 한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 앞에 있는 등불이다. 

한민족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한반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는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 자주적으로 대응하여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민족의 중지를 모아야 할 긴급한 위기상황이다.  미국과 북한 양자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양자가 위기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중재하는 한국의 외교역량과 지혜가 각별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미국도 북한도 핵무기와 미사일을 버리고 평화의 길로 나가도록 압박할 수 있는 국제시민사회의 역량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이러한 한반도 위기를 평화적으로 풀어 갈 것이냐, 전쟁위기로 몰아갈 것이냐를 가르는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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