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에 있어 선거는 전쟁이다. 그래서 선거전(選擧戰)이라 불린다. 선거때면 후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오직 당선만을 위해서 뛴다. 시쳇말로 총칼만 안들었지, 설전(舌戰)에서 금권, 그리고 조직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걸고 대판 붙는다. 고전적 의미에서 승전(勝戰)을 위해서는 필요충분조건이 맞아야 한다. 즉, 아방이 타방을 제압할 만한 세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라면, 타방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충분조건`이라 한다.

◆ 대선전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이상기류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평소의 그답지 않은 액션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층과 젊은 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행태인지, 반미기류가 한창인 광화문 촛불시위에 한때 나가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대의 수구우익 논객인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조갑제 편집장은 그의 개인 홈페이지(http://www.chogabje.com)에서 `스탠스를 잃은 이회창`이라는 칼럼을 통해 이회창 후보를 혹독한 비판과 함께 경고를 하고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조 편집장은 `한국의 우파 세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였던 이회창 후보의 최근 선거운동 행태가 일대 혼란에 빠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면서, 이회창 후보가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 부시 대통령이 사과를 했음에도 또 다시 사과를 요구하고 주한미군 지위협정 재개정도 요구함으로써 반미운동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우파들의 눈에는 이회창 후보가 좌파와 맞서 싸우는 지도자가 아니라 우파를 배신하고 좌파에게 아부하거나 투항한 지도자로 보이는 모양이다`고 꾸짖었다.

◆ 더 나아가 조 편집장은 이회창 후보가 이번 선거에 정치적 생명뿐 아니라 물리적 생명까지 걸어야 할 입장이라고 전제한 후 `모든 조건이 유리한 입장에 섰던 그가 이번에도 또 지면 우파에서는 이념적으로 우파를 배신함으로써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두 번이나 놓쳐 괴로운 10년을 자신들에게 안겨다 준 사람으로 규정하여 매장시키려 들 것이다`고 겁준 후 `자신의 입각점인 우파이념에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젊은 좌파의 표를 구걸한 결과가 패배로 나타난다면 이회창 후보는 참으로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 혹독한 비판이자 끔직한 경고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를 두고 `수구우익세력 내의 적전분열(敵前分裂)`이라니, `승세 반전을 위한 고단수 처방`이라는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전자로 보기에는 의도적으로 대권(大權)을 그리 쉽게 내놓겠냐는 의구심이 들고, 그렇다고 후자로 보기에도 `인간의 얼굴을 한 비판`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편으로는 조 편집장의 대(對) 이회창 경고에는 왠지 음험한 분위기와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개 비판이 고전적 의미에서만 본다면 전쟁에서 자멸로 가는 `충분조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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