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통일뉴스 논설위원)



제 나라 안에서 무고한 두 여중생이 주둔군 차량에 의해 깔려 죽었는데도 그 미군 혐의자에 대한 재판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화해적 조치들을 실행하고자 동족끼리 만나는 일조차 외국군대의 허락을 얻지 않고는 불가능한 나라.
  
두 여중생 압사 사건이 보여주는 현실

최근에 일어난 두 사건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더는 참을 수 없는 민족적 분노를 치솟게 하고 있다. 식민지에서나 있을 법한 사태들이 명색이 주권국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치욕스런 현실이 그러하다. 이는 그 동안 50여년의 통일운동사에서 왜 `외세배격`의 문제가 그토록 강조되어 왔는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6월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두 여중생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재야운동진영에서는 줄기차게 미군당국에 대한 책임문제를 제기하면서 유사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로 `불평등한 소파` 개정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미군 당국은 `공무 중 일어난 사고`라며 재판권 이양을 거부한 채 주한미군 군사법원을 통해 관제병과 운전병에게 무죄 평결을 내려 출국시켜 버렸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사건에 대한 책임추궁이나 그 어떤 재발방지를 위한 요구도 없이 경찰을 동원해 미국 대사관과 미군부대 등 미군 관련 시설에 대한 경비 강화에 몰두했다. 법무부 장관도 "소파 개정은 어렵다. 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의 경우 미군이 모두 무죄 평결을 받았다"는 발언으로 미군의 주장을 대변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격렬한 `반미시위`로 나타난 민족적 분노에 떠밀려 부시는 마지못해 주한 미대사를 통한 간접사과 형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재발방지를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소파 개정 문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처럼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현실상황 인식은 원천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일시적 사태종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즉 우리의 민족자주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남한에 잔류하고 있는 미국민의 안전과 주한미군의 장래 등에 미칠 영향과 관련한 방편일 뿐이다. 

미군이 제동 건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검증 작업`

또 하나는 남북간의 합의에 따라 실시하기로 한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검증 작업`이 유엔군사령부 대표라는 미군의 제동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지 못했다.
 
남과 북은 합의에 따라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의 연결을 위한 비무장지대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하였고 이제 그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지뢰 제거 이후 상호 검증작업을 위한 양측 실무요원의 명단을 교환해야 했다. 이 때 유엔군사령부는 군사정전위원회 규정을 내세워 유엔사의 허가사항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북측은 지난 9월 남북간에 체결된 남북군사보장합의서의 "남북 관리구역들에서 제기되는 모든 군사 실무적 문제들은 남과 북이 협의 처리한다"는 규정을 들어 "남북간에 상호 명단을 통보하면 된다"며 유엔사령부의 명단 제출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유엔사령부측은 "비무장지대 관할권은 주한유엔사령관에게 있으므로 북측은 반드시 유엔사로 검증단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뢰 제거 검증은 무산된 채 3주 동안 지뢰 제거 작업이 중지되었다가 다시 남북간 합의로 재개되었다. 그렇지만 미군 장성(유엔사 대표)은 여전히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 작업을 포함, 남북 인원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사전에 유엔군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어 앞으로 원활하게 실행되어가야 할 남북간 합의사항들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여기서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내세워 이와 같이 우리민족끼리의 합의사항 실천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지만 유엔군사령부는 이미 해체되어야 했던 유명무실한 냉전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이른바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6.25전쟁 때 참전했던 16개 나라들 중 다른 나라들은 1967년 태국군을 마지막으로 이미 다 철수했는데 오직 미군만 잔류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당시 유엔군은 공군의 98%, 해군의 83.3%, 지상군의 88%가 미군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유엔군`이라는 이름의 미군일 뿐이다.

그나마도 1975년 11월 유엔총회 결의에 따라 유엔군사령부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당시 제30차 유엔총회에는 남측 주장을 반영한 자유진영측안과 북측 주장을 반영한 공산측안이 함께 제출되어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남측안(찬성 59, 반대 51, 기권 29)과 북측안(찬성 54, 반대 43, 기권 42)이 동시 통과되는 유엔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 때 북측의 결의안은 `유엔사령부의 해체` `주한외국군의 철수`를 담고 있었고 남측의 결의안에도 1976년 1월1일자로 유엔사의 해체 날짜가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미군은 지금껏 유엔군사령부를 존속시켜 모처럼 남북이 민족화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족공조만이 유일한 대응방도

이와 같이 최근 우리를 격분시키고 있는 두 사건을 통해서, 미국은 분명히 남북간의 민족화해를 원치 않고 있다는 것과 미국에 의해 우리의 자주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에 대한 이 같은 미국의 식민지적 횡포에 대해 오늘의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 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족공조의 길만이 이 엄중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한다.
 
반세기 동안이나 분단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외세와의 공조 때문이었고, 민족화해와 통일은 민족공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외세와의 공조는 냉전시대의 산물이고 민족공조는 민족화해 시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따라서 민족공조만이 내외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냉전시대의 반통일적 유물들을 극복해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치욕적인 두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기간에도 일정 정도의 민족공조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여러 형태의 남북대화가 무리없이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11월 8일에는 남북경협위 3차 회의가 평양에서 열려 합의사항들을 이끌어 냈고, 그 결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측량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들을 통해서 통일은 우리 민족스스로, 우리 민족끼리, 민족화해와 통일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걸림돌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내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지 어느 누가 한 순간에 그냥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계기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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